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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Oct 18. 2024

괜찮아? 힘내.

힘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나요

본격적인 투병이 시작될 즈음 나는 친구들에게 내 상태를 알렸다. 친구들의 걱정을 사려는 것보다는 내가 그들에게 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알리는 것이었기에 나는 덤덤히 내 상태를 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잘 뛰던 내가 아프다는 소식은 친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내 목적과는 다르게 걱정을 사는 레퍼토리로 이어져서 나는 그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간절했던 만큼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몸을 내가 이겨내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곤 했다. 아니 바닥의 더 밑 지하로. 무슨 짓을 해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던 내 몸을 스스로 지켜보는 것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고 팔아넘겼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도 들게 했고, 이후로의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 심지어는 존재하지도 않는 전생의 나까지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냥 나 스스로를 미워할 수 있는 만큼 미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동굴로 들어가길 자처할 때마다 내 손을 잡아 양지바른 곳으로 끌어내어 준 사람들이 있었는데, 친구들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벅찬 날들을 보낼 때 내 손을 놓지 않고 잡아주던 친구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자신의 일인 것 마냥 슬픔을 나눠 들어주고 좋은 소식이 있다면 나보다 2배로 좋아해 주고 내가 무언가 하고 싶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하자고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던 친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친구들 앞에서 나는 늘 더 잘 살아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뭐, 내가 다짐한 대로 인생이 살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무너져만 가던 내 몸 앞에서 그 다짐을 깨부수길 반복했다. 잘 살고자 한 다짐은 오히려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전에는 이만큼 하면 정말 잘한 축에 속했는데, 이제는 이 이상으로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나는 잘 걷다가도 주저앉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목표한 만큼 해내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죄책감에 하루종일 울곤 했다.






“율, 괜찮아?”

통증 앞에 내가 하루, 이틀 연락이 없으면 받던 카톡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저 괜찮냐는 말을 보면 늘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져 내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정말 하루도 괜찮은 날이 없었다. SNS로만 볼 수 있던 친구들은 매일을 살아내길 바빴는데, 나는 매일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핫플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친구들과 내 병을 더 잘 봐줄 수 있는 병원과 잘 듣는 약을 찾아다니던 나. 이미 졸업한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아가는 친구들과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것조차 벅찼던 나. 매일매일 비교를 하다 보니 끝이 없었다. 그리고 비교 끝에 나는 매번 비참함을 느끼기 일쑤였다.


컨디션이 다른 날에 비해 따라줘서 약속을 잡아 나가면 내 몸은 배터리가 수명을 다해 방전되어 버린 휴대폰 마냥 전원이 꺼지곤 했는데, 그때도 친구들은 내게 괜찮냐는 말을 건넸다.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나는 늘 괜찮다는 말을 더 많이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한 번 외출을 하고 오면 일주일을 내리 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곤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 며칠을 내리 밖에서 노는 게 가능할 정도로 체력이 좋았던 내가 너무 그리웠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내리는 답은 ‘아니’였는데, 더 이상 괜찮았던 시절의 내 몸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그러한 답을 내렸던 것 같다.


매일 밤 나는 과거의 활기찬 내 영상을 보며 웃다 울길 반복했다. 분명 나인데 몸 상태가 내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이질감까지 들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긴 꿈인 거였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났는데 건강했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냥 누군가 나타나서 지금까지 몰카였습니다!라고 외쳐줬으면 좋겠다. 정말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 모든 게 거짓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는 종종 그러한 생각을 하곤 했다.





“힘내.”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제일 무난한 말로는 힘내라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이 말이 내 눈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당장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는데 힘을 어떻게 더 내라는 거지? 그나마 있던 힘도 모조리 빠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학교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당장에 졸업을 한다고 한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몸이 낫지 않으면 더 이상의 인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렇게 통증이 나를 괴롭히는 것 하나로도 너무 힘든데, 앞으로의 나는 이 통증을 이겨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해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는 현실이 내겐 허황된 꿈을 좇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젠 진짜 지쳤다.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사는 게 너무 고통이다.

왜 나만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파. 괴로워.
-2021년 5월 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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