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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Oct 11. 2024

저 병명이 뭐예요?

리도카인과의 전쟁

한바탕 검사전쟁이 지나고 어느덧 입원 7일 차. 내가 일주일씩이나 이 병원에 갇혀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입원 일주일 내내 병명을 명확하게 찾지 못할 줄도 몰랐다.


“저 병명이 뭐에요?” 이른 아침 회진을 온 교수님께 나는 물었고 교수님께서는 확진을 내릴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괴롭기만 한 채로 살아야 하는걸까.


교수님께서는 새로운 치료, 펜타닐 패취 중단, 척추 MRI 처방을 내주시고 돌아가셨다. 그날 오후부터 바로 새로운 치료가 시작되었는데 *리도카인 성분의 약물을 계속해서 정맥으로 투여하는 치료였다. 리도카인 성분은 편두통(두통) 완화 적응증이 있기 때문에 적용해 본 치료 방법이었다. 리도카인의 첫인상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약에 취해 한참을 자고 있을 때 온갖 기계와 함께 등장한 약물은 내게 두려움을 주기 딱 좋았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일단 내 몸에 부착되어 있던 펜타닐 패취를 모두 제거해 가셨고 정맥 라인에 낮은 용량의 리도카인과 N/S를 연결했다. 약물 주입 30분 즈음이 되었을까 오심과 동시에 호흡곤란이 왔다. 그즈음 라운딩을 하던 간호사 선생님께 “가슴이 답답해요.”라고 말씀을 드렸고 나는 그대로 베드에 쓰러지듯 누웠다. 내 몸에 연결된 모니터에서 계속해서 알림음이 멈추지 않고 울렸다. 잠시 후 *EKG 기계를 끌고 선생님께서 오셨다. 계속해서 모니터에서는 시끄러운 알림음이 울렸다.


다행히 EKG상으로는 큰 이상은 없었고 빈맥만이 관찰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셨다. 계속해서 모니터에서는 sinus tachycardia(동빈맥)를 알리는 소리가 병실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EKG 상으로는 문제가 없었기에 계속해서 투약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는 오심이 문제였다. 그에 나는 저녁 루틴으로 맞는 맥페란을 당겨서 맞기로 했고 다행히도 오심이 사그라들었다. 그 이후 별 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들어가는 용량을 0.5에서 1.0으로 증량했다. 이렇게 힘든 약물을 계속해서 내 몸에 넣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약물을 증량한다고 했을 때는 속상해서 눈물을 왕창 쏟았다. 온갖 기계가 달려있던 탓에 화장실 한 번 가는 것조차 벅찼는데 계속해서 약물이 들어가니 화장실을 1시간에 3번 이상은 가야 했다. 몸도 아파죽겠는데 이렇게 왔다 갔다 해야 하는게 너무도 짜증이 났다.



게다가 타 병원 외래 때문에 외출이 예정되어 있던 내게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네받았을 때에는 조금 과장해서 내가 쏟은 눈물을 모아 연못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쏟았다. 제발 한 번만 나가게 해달라고 주치의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약에 취한 탓인지 심신이 지쳐있던 탓이었는지 그렇게 끊임없이 눈물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외래 예정이었던 타 병원 교수님께서 격려의 카톡을 보내주셨고, 회진을 온 교수님께서도 나를 토닥여주시며 위로를 해주셨는데 이에 나는 정말 단순하게도 웃음을 되찾았다. 그 당시 눈치는 챘지만 후에 들어보니 교수님들끼리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 상황을 전달했다고 했다. 어쩌면 불투명한 날들의 연속으로 그 당시의 나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 날 아침 맥페란을 맞으며 밥 대신 사온 샐러드를 겨우 넘겼는데 다 먹기가 무섭게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어지럽고 정신이 없어서 눈물이 났다. 울기 시작하니 또다시 모니터에서는 알림이 울렸고 너무 화가 나서 나는 연결된 모니터를 떼어버렸다. 더 이상 온전한 정신으로 치료를 받는 게 불가능했다. 때마침 라운딩을 돌고 있던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울고 있던 날 발견하시고 증상을 확인해 주신 후 모니터를 다시 연결해 주셨다. 모니터를 연결하자마자 빈맥을 알리는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고 쉴 새 없이 심박수가 올라갔다.


“선생님 저 리도카인 못 맞겠어요. 그만 맞을래요. 너무 어지럽고 힘들어요.”
이 말을 한 후 나는 그대로 엎어졌다. 온 세상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리도카인 중단과 EKG 처방을 또다시 내셨다.


“환자분~ 리도카인 잠시 중단할게요.”

이 이후로 나는 명확한 기억이 없다. 이후에 휠체어채로 MRI실로 끌려갔고 내 앞에 온 응급환자들 덕에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 MRI촬영을 했다. MRI 검사 결과 어떠한 이상도 없었다. 사실 그건 예상한 결과였다. 이상이 있을 거였으면 진작 발견이 되지 않았을까.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입원 기간 내 예정되어 있던 검사와 치료는 마무리되어가는 듯했다. 중단되었던 리도카인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편두통 예방주사인 앰겔러티 처방도 함께 났다. 팔, 다리를 펼 수 없을 정도의 통증으로 다시 패취를 적용했는데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팔, 다리가 온전히 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대로 팔,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을까봐 너무 무서워서 나는 계속해서 팔,다리를 주무르고 온전히 펴지지 않는 다리를 끌고 어떻게든 걷기를 반복했다.



남은 입원 기간 동안은 더 이상은 화가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패취와 리도카인이 함께 적용되니 어지러움은 극에 달했고 이에 리도카인 용량을 다시 감량했다. 남은 리도카인만 맞고 리도카인을 아예 중단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렇게도 기쁠 수가 없었다. 회진을 온 교수님께서는 추가적인 검사는 외래를 통해 하자고 하셨고 이어서 퇴원 결정이 났다.


큰 소득 없이 또 이렇게 병원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애초에 나는 병명을 찾으러 들어온 게 아니었고 약을 조절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대폭 줄인 진통제에 의의를 두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렇게 시도해 볼 수 있다는 환경이 주어지는 게 어쩌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웃는 모습으로 퇴원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지 않겠는가. 그래도 궁금한건 어쩔 수 없다. 제 병명 대체 뭐예요 교수님.


집에 가서도 어찌 되었든 힘들었던 치료를 끝내고 집에 편안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던 것 같다. 퇴원 다음 날부터 컨디션이 지구 끝까지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치면 지는 거다.
꼭 완주해 낼 것이다.
-2021년 6월 10일 일기 中



*리도카인 : 국소 마취제이자 항부정맥제

*EKG(Electrocardiogram) :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분석해 파장 형태로 기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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