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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황금 동산

          

2017년 5월. 나이지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정미소가 모여있는 아바칼리키시를 향했습니다. 정미소가 몰려 있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창고 건물로 안내를 받았죠. 창고는 블록 벽과 함석판을 덧댄 지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대략 30평쯤 되는 창고 건물 한쪽에는 나무 탁자가 놓였고, 탁자를 빙 둘러서 정미소 주인, 전문가, 지역 관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선풍기가 바람을 뿌렸습니다.    


그들에 대한 첫인상은 ‘호의’였습니다. 그다음은 ‘열의’였고요. 그들은 겸손하지만 신중한 표정과 태도로 자신들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해 나갔습니다.  에본지주 아바칼리키시는 나이지리아에서 쌀 생산이 가장 많은 지역이며, 이곳서 생산되는 쌀의 수확량에 따라 나이지리아 쌀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기후변화와 뒤떨어진 기술로 인해 쌀의 수확량이 들쭉날쭉하고 그나마 생산된 쌀도 도정하는 과정에서 조각이나 버리는 양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조각나서 버리는 쌀만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하면서 한국의 기술로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발전된 정미기계를 지원해 주고,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 달라고도 했지요.


누구든지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정미소 주인, 전문가, 지역 관료의 열의가 담긴 설명과 친절함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입니다. 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하여 한국정부(농림축산식품부)에 연락을 할 작정까지 했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마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니  너른 광장이 나오며 앞이 탁 트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벼를 찌고, 찐 벼를 넓게 펴서 말리는 인부가 있었다. 도정과정에서 쌀이 워낙 잘 쪼개지다 보니, 벼를 도정하기 전 한번 쪄서 말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쌀알이 단단해져서 덜 쪼개지고, 쌀의 맛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다가 신기한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벼를 찌는 곳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얕트막한 동산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저건 뭐지?’     


장엄하고, 아름답고, 이국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산 위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노란색 흙 같은 것을 쟁반에 담아 흩뿌렸습니다. 건조한 바람이 휙 불자, 먼지가 비산 하면서 태양광을 산란시켰다. 황금빛이 동산을 휘돌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고,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만큼 지났을까. 이마에서 솟은 땀방울이 눈을 아리게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안내인에게 물었지요. “저건 무엇이지요?” 안내인은 잠시 언덕을 응시하더니, 느릿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 황금 동산은 인고(忍苦)의 동산입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들은 키워야 하는 미망인들의 생명줄이기도 하지요. 남자도 변변한 일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만 남은 여인네가 할 수 있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과 같이 굶어 죽게 됩니다. 엄마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일거리를 찾다가, 정미소에서 버린 쌀겨에 눈을 돌렸습니다. 쌀겨 속에 숨어있는 조각난 쌀알이 동아줄처럼 보였을 테지요. 엄마들은 이에 매달렸고, 배고픈 아이를 먹여 살리겠다는 그녀들의 간절함에 정미소 주인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각난 쌀알갱이를 찾기 위해 시작된 행렬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쌀겨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산의 탄생입니다. 오늘도 미망인들은 동산에 올라가서, 쌀겨가 가득 찬 부대를 풀어헤치고 있었습니다. 쌀겨를 바람에 후후 불어 날리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조각난 쌀’, 아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양식을 찾아내어 주워 담습니다.  미망인들의 얼굴에는 삶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안도감이 서려 있는 듯 보였습니다. 쌀겨로 이루어진 이 동산은 그녀들에게는 생명을 이어주는 황금 동산과 다름이 없습니다. 

  

문득 제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망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일터를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숟가락에 담길 식량을 빼앗아 버리는 짓입니다. 

     

'나는 도대체 여기에 무엇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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