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국제 캠핑장
0에서 5도로 춥지 않은 날씨에 인천 송도 국제 캠핑장이었다. 금요일 딸을 등원시키고 혜원이와 둘이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 정리하고 빌려온 만화책을 봤다. 처음 몬스터를 본건 고3 때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학 때 몇 번 다시 본 것으로 기억한다. 결혼 후엔 처음인 듯하다. 94년에 연재 시작한 작품이라고 하니, 30년이 된 만화다. 수십 년 된 만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데, 여전히 재밌었다.
쉘터에 햇빛이 들어오도록 했고 난로를 켜두어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더했다. 평일 오후는 주말보다 느긋한 느낌을 많이 준다. 포근하고 느긋한 분위기에 아웃도어에서 만화책을 읽는 시간은 매력적이었다.
혜원이와 딸이 집으로 돌아간 저녁에는 친구들이 오기로 했다. 넷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고, 모두 이전 직장 친구들이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옮긴 시기는 모두 달랐지만 셋은 지금도 같은 회사 같은 사무실에 있고, 다른 한 명은 다른 기업을 택했다. 업종은 다르지만 업무는 같아 서로의 일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오랜만에 만나 이전에 함께했던 프로젝트들, 출장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힘들었던 프로젝트는 회상해 보니 즐거웠다는 기억이 더 컸다. 당시 우리는 어렸었지만, 이젠 훌쩍 크고 있어 빠르게 지나가는 자녀들의 어린 시간을 아쉬워하고 있는 아빠들이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친구들은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은 잠에서 깨지만, 머리에 정신이 드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보통 커피를 마실 때 머리도 잠에서 완전히 깨는 편이다. 이날 아침 커피를 준비 중에 바닥에 엎었고, 그때 머리도 잠에서 완전히 깼다. 정신이 드는 방법은 카페인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나 보다. 내 드리퍼는 사용이 많이 어렵고 불편하다. 손에 익으면 쉬워지겠지 했는데 전혀 익지 않는다. 이날 아침 커피를 엎은 이유는 주전자를 만지다 옆에 있는 컵을 쳤기 때문인데, 나도 모르게 아무 상관 없는 드리퍼를 탓했다. 어지간히 드리퍼가 싫은가 보다.
밖에서 커피 마시기에 춥지 않은 날씨였다. 아직 추운 날씨에 적응이 필요한 우리 가족은, 겨울 동안 캠프 사이트에 함께 머무르진 않고 밤마다 헤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다시 만나곤 했다. 3월 말부터 다시 함께 캠핑할 예정이다. 캠프 사이트를 예약해 두었고 그날이 기다려진다. 다시 자연에서 함께 보낼 시간이 기다려진다.
커피를 옆으며 정신이 든 나는, 물이 끓기 전에 드리퍼를 다시 조립하고 필터를 깔고 새롭게 원두를 갈았다. 커피를 다시 내리기 위해 진행된 모든 과정은 빠르고 간결했다. 역시 커피를 엎으며 잠이 모두 깬 모양이다. 빠르게 준비한 덕에 물이 끓기 전에 모든 과정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에 주전자가 버너의 중앙에 위치하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 커피를 다시 준비하는 과정이 효율적이었다기보단, 비효율적인 주전자와 버너의 접점 덕에 물이 끓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었나 보다. 커피를 엎으며 잠에서 깬 머리가 커피를 마시며 다시 한번 깨어났다. 이제 정리를 시작할 생각을 했다.
캠핑 시작한 지 일 년이 안 되었지만, 캠프 사이트에 도착해서 자리를 준비하는 데는 꽤 요령이 생겼다. 효율적으로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지 않고, 빠르게 준비한다. 하지만 정리는 아직 요령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일단 정리 시작해야지 마음먹은 후 실제로 몸을 움직여 물리적인 정리를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아쉬운 마음과 귀찮은 마음이 함께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떤 것이 더 큰지는 아직 모르겠다.
잘 패킹되어 있는 짐을 꺼내는 건 조심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언로딩과 언패킹은 순서와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패킹과 로딩은 다르다. 사용한 장비가 들어갈 파우치에 맞게 접고, 공기를 빼고, 부피를 고려해야 들어간다. 그리고 그 짐들을 차에 어떻게 싣느냐에 따라 모든 짐이 적당히 적재될지, 그러지 못해 뒷자리 또는 조수석까지 짐이 가득 찰지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도 더 해야 하고, 힘도 더 써야 한다.
풀어두었던 짐들을 모두 정리한 후차에 싣고 나면 아직 조금 신기하다. 추운 겨울 밖에서 먹고 자기 위해선 많은 도구들이 필요한데, 그 모든 것들이 작은 차 한 대에 들어가고 캠프 사이트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