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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명철 Sep 02. 2024

삶을 위한 일 vs 일하기 위한 삶

일과 삶의 주객전도

회사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가?


분명 우리가 처음에 회사에 취업을 했을때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발뻗고 누울 방 한칸의 월세와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루에 3끼를 먹기 위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여자친구(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열심히 준비해서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번다. 돈이 없는 취준생이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버는 것은 분명 살기 위해서 일을 한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사는 걸로 순서가 바뀐다. 이건 무슨 말일까? 우선 우리의 모든 일정과 컨디션은 회사에 맞춰진다. 우리가 가고 싶은 여행, 휴가가 있어도 우리는 회사 업무를 우리 휴가 일정에 맞추지 않는다. 회사 업무와 상사, 동료들의 휴가 일정에 맞춰서 우리의 여행,휴가 일정을 조정한다. 몸이 아파도 비슷하다. 우리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몸이 아파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병원을 가지 못한다. 회사 업무에 차질이 안가는 선에서 병원에 가고, 그것도 눈치가 보이면 참다참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갔다오거나 퇴근하고 다녀온다. 그 밖에도 예시는 많다. 우리가 정말 만나고 싶은 친구들, 혹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이 있다. 우리는 그 활동을 할때도 다음 날에 회사업무에 차질이 갈까 안갈까를 생각한다.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축구, 농구, 춤 등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데 내일 출근하면 피곤할까봐 망설이거나 이를 미루는 경험을 다들 한번씩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 또한 오랫동안 이런 생활을 이어왔다. 처음에 나는 분명히 삶을 위해 일을 시작했다. 돈이 없으니 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취업을 했고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은 일하기 위해 사는 삶으로 바껴있었다. 내 모든 일정, 적어도 평일은 모두 일에 맞춰서 설계가 됐다. 평일에 데이트를 하면 피곤하고 다음 날 업무에도 지장이 갈까봐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주로 주말로 잡았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회사의 일정에 맞춰서 고민을 했고 친구들과의 여행, 휴가 또한 회사의 일정에 맞춰서 고려를 했다. 회사에서 업무에 많은 에너지를 쓰니 퇴근하고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퇴근하고는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는 유튜브, 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었다.


이렇게 일을 위한 삶이 처음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간이 길어지고 내게는 큰 공허와 우울이 찾아왔다. 직장생활을 꽤 오랜기간동안 하고 생활을 유지할만큼 돈이 모이자 내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기쁨이 없고 이런 갑갑하고 답답한 삶을 살고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항유하지 못하고 직장에 맞춰서 살다보니 내 삶의 영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좁아져있었다. 내 삶에서 내가 기쁨을 느끼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있었고 내 머리 속에는 내가 하는 일, 회사만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공허와 우울이 커져서 이 사실을 알게됐을때는 내 욕망이 무엇인지, 내 기쁨이 무엇인지도 어느샌가 까먹었을만큼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러니 이 사실을 깨달아도 쉽게 회사를 떠날 수도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까먹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탐욕은 치밀하고 강력하다. 우리를 현재에 살지 못하게 한다. 분명 우리의 시작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정도 살 수 있을정도로 생활이 안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방식이 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위해 사는 삶'으로 완전 뒤바껴있는 것이다.

이 뒤바뀐 삶의 양식은 큰 문제점을 일으킨다. 갈수록 우리가 가진 자신만의 욕망, 자신만의 기쁨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한다. 자신만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줄인다. 그리고 궁극에는 자신만의 기쁨을 찾을 생각조차 못하게 되고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나'가 아니라 '회사, 업무'가 그 중심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이 시간이 길어졌을때 우리는 '나'를 잊고 사는 시간이 오래되서 회사가 싫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된다. 왜냐면 내 삶에 '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퇴임한 우리네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로 살다가 퇴직해서 자신이 아직도 회사원인줄 아는 아버지들. 회사가 없는 삶에서 적응을 못하는 우리네 아버지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아버지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조금씩 회사밖에 없는 삶으로 젖어들어가고 있고 결국은 삶에서 나는 없고 회사만 있을 것이다.




살기위해 일을 시작해서 어느정도 삶을 살아갈 수 있을정도로 돈이 모였다면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삶을 중심을 '나 자신'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짜 내 삶을 잘 살 수가 있다. 내 삶의 주인공이 '회사'이면 안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여야 된다. 이 사실을 잊지말고 지속적으로 상기하자. 회사의 권위가 강하고 자본과 탐욕 또한 강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본과 회사의 요구에 떠밀려 살 수 밖에 없다. 내 삶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두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 우리가 우리 삶의 중심이자 주인공일때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를 까먹지 말고 다시 '일하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살기 위해 일하는 삶'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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