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2025년 6월 27일 서울서 제주 섬에 들어온 후 7월 중순부터 열흘간 우간다 선교를 다녀오고, 7월 29일 몸이 불편한 처가 어른들을 모시고 다시 섬으로 오면서 8월 1일부터 제주 올레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8월 섬(島)은 육지에 있을 때보다 더 더웠습니다. 올레 4코스, 5코스를 걸을 때 비를 흠뻑 맞으며 두 차례 우의를 입고 폭우 속을 뚫고 간 적도 있긴 하지만 올여름 제주는 거의 비가 안 와서 더운 것 빼고는 걷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후 9월 1일부터 열흘 정도 이탈리아 중부지역을 아내와 여행한 후 9월 14일 10-1코스인 가파도를 다시 걷기 시작해서 어제 14-1코스까지 6개 코스를 걸었습니다.
올레길 걷기는 일주일 내내 했던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총 4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걸었습니다. 올레 길은 총 27코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00-1, 00-A' 이런 코스들이 있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약간 헷갈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 저도 그랬습니다.
설명을 좀 해보면,
예를 들어, 7코스가 있고, 7-1코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2개의 코스입니다. 처음 7코스가 있었고, 나중에 7-1코스가 추가로 생긴 것입니다. 3-A와 3-B는 같은 3코스인데 A로 가는 길은 20km의 좀 긴 코스고, B는 14.6km의 짧은 코스입니다. 이 두 가지 길은 모두 3코스 이므로 1개의 코스인 것입니다. 오늘 걷는 15코스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15-A는 15.5km로 코스 중간에 내륙 쪽으로 좀 들어가는 길로 되어 있고, 15-B는 13km로 해안을 끼고 걷는 길로 되어 있습니다. 도보자는 오늘 해안을 끼고도는 짧은 15-B코스로 걸을 예정입니다.
2025년 9월 25일 수요일
오늘 협재는 파도가 잔잔합니다. 어제 한림장에 생선을 사러 갔는데 지난번 떨이로 한 바구니에 만원 하던 열기생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어보니 그동안 파도가 거칠어 조업이 안 됐다고 하네요. '파도가 잔잔한 걸 보니 다음번 장에서 그 떨이생선을 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큼지막한 생선이 만원에 5-6마리 담아 있는 걸 보면, 하나에 2천 원 꼴입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만이 받는 특혜입니다. 다음번 오일장에서 만나보길 기대합니다.
오늘은 어제까지 가던 길의 반대방향, 제주시 방면으로 버스를 탑니다. 버스도착 5분 전이네요. “오늘도 이 길 위에 축복이 있기를, 부엔까미노!”
07시 15분, 한림항(비양도행 도선대합실) 앞에 서있습니다. 1950년도 한림항 인근에서 태어난 고성기시인의 詩碑를 소리 내 읽고, 올레 15코스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15분 정도 배로 갈 수 있는 비양도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다시 섬(島)을 걷습니다.
도보자는 한림 항 인근 대수포구를 지나갑니다. 바다, 섬, 둑방 모든 사물은 정지되어 있고, 풍향 바람개비만 부지런히 돌아갑니다. 사람도 멈춰 있어서 여유롭고 좋습니다.
'바람개비여, 바람개비여, 내 너 하나도 안 부럽구나, 난 내 맘대로 거닐 테니, 너도 네 맘대로 돌려무나. 구름처럼 바람처럼 마냥 흘러가는 인생, 꼭 붙어 마냥 돌기만 하는 너, 너 하나쯤 하나도, 정말로 하나도 안 부럽구나!'
수원리를 지나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집 앞마당에는 감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정겹고, 땀내 나는 수원농로입니다.
A, B코스의 분기점에 와 있습니다. 도보자는 왼쪽 B코스 바랑길로 갑니다. 바랑은 바다의 제주어입니다. 바다를 향해 걸어 나갑니다.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이 기름진 채소밭을 만들었습니다. 구름아래 채소들은 기분 좋게 성장합니다. 뒤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왼쪽 바다, 오른쪽 한라산이 보입니다. 가을은 이 안에서 점점 익어갑니다.
한림 해안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마주 보고 있는 켄싱턴리조트 앞입니다.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객실에서 보는 뷰는 최고일 것 같은 위치네요.
귀덕리 라신동 인근 뷰입니다. 아무래도 리조트가 있어서 마사지샵(라벤더), 식당(미친 흑돈), 국숫집(Ra Shin Bi)이 눈에 띄네요. 특이하게도 옆에 해운사라는 절이 보입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쭉 걸어갑니다. 러닝 하는 사람, 바이크 타는 이들이 여유롭게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갑니다. 도보자는 오로지 두 발로 걸어 나갑니다.
출발한 지 1시간 25분, 3.5km 지점에서 간식을 먹고 갑니다. 고양이가 한 마리 냄새를 맡고 탁자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부담스럽네요. 먹을 걸 줘도 피하면서 퍼져 있습니다. 쫓아낼 수도 없고 사람이 피해야 될 듯합니다.
제주 한수풀 해녀학교를 지나갑니다.
이곳은 해녀가 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해녀 양성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해녀학교의 교육비는 무료지만, 시설유지보수비와 장비구입비용은 자부담입니다. 학교에서는 잠수복을 제공하지만 물안경, 스노클 등의 장비는 개인이 준비해야 합니다. 학교 옆에는 양식장이 있어서 직접 활어를 판매하고 있네요. 슬쩍 들어가 사진을 찍고 나옵니다.
귀덕리는 휴양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해안도로는 드라이브하기도 좋을 듯합니다. 주말 아내랑 한번 와봐야겠습니다. 귀덕2리, 귀덕1리를 통과합니다. 귀덕은 용천수가 나는 곳이고, 귀덕포구는 제주포구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안캐, 중캐, 밖캐와 같은 3판 구조를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포구입니다.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의 전설은 계절에 따라 제주에 부는 바람을 전설로 잘 엮어 놓았습니다. 고개가 끄덕거려지며, 그래, 그래 마냥 긍정의 표현이 저절 나옵니다.
아름다운 곽지해수욕장입니다. 구름은 바다 위에 머물러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도보자도 말을 한마디도 안 했네요. 우리는 소리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와! 특별한 공간, 곽지해수욕장에 있는 과물 노천탕에서 족욕을 합니다. 얼음물이네요. 단 30초도 있기 힘듭니다. 이 안에는 닥터 피시도 보이네요. 과물해변 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어 나갑니다. 바다, 모래, 바람, 야자수, 수영 중인 견까지 이국적인 해변의 모습입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최고의 현무암 해안길입니다. 단연코 올레코스 중 일등이라고 평가하고 싶은 ‘곽지잠녀의 길’입니다.
한담해안산책로는 젊은 여행객에게 핫 플레이스인 것 같습니다. 럭셔리한 브런치카페, 식당들이 있고, 연인들은 다양한 포즈로 셔터를 눌러 댑니다. 저는 그 안에서 ‘장한철’이라는 풍랑아를 발견합니다. 18세기 그는 참 굴곡 많은 삶을 살았네요.
11시 27분, 11.3km 애월초등학교 뒷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차에 쓰레기를 싣고 와서 클린하우스에서 누군가 분리수거를 하시네요. 너무 친근한 시골생활입니다. 오늘은 목요일 종이·비닐 버리는 날이네요.
11시 55분, 한림항(비양도행) 도선대합실에서 07시 15분 출발하여 4시간 40분 만에 고내리 올레여행자센터 앞에 도착했습니다.
올레 15코스는 제가 사는 협재에서 30분 정도 바운더리 안에 있는 이웃 마을을 도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를 돌면서 제주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마치 지중해 스페인, 포르투갈이나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주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제주의 재발견입니다. 제주에 와서 휴양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애월에 숙소를 정하시고, 낮에 곽지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시고, 야간에 ‘곽지잠녀의 길’을 산책하시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주의 모든 길들은 아름답고,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 측면으로 제주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점점 제주가 내 안에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진주처럼 영롱한 바다를 품은 올레 15코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