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의 서재_12
2025년 9월 로마여행 중 '포로 로마노'를 설명해 주시던 가이드분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5권 읽어보기를 권유하셨습니다. 그날 당장 제주로 실물 책을 주문하고(이사하면서 상당한 양의 책을 처분한 후, 이후론 e-book으로만 보기로 작정했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후 두꺼운 <로마인 이야기> 두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기원전 40-5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천 년 전 신(神)으로까지 추앙받던 한 인물에게서 과연 어떤 삶의 지혜와 인생의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요? 1937년생, 지금도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옛 로마의 역사와 로마문화에 대해 파고들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눈에 비친 영웅의 삶을 짧게나마 글로 남깁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기원전 47년, 카이사르가 폰토스 국왕 파르나케스국왕 2세를 젤라전투에서 이기고, 원로원에 보낸 전과 보고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세 마디 말로 시작됩니다. 오늘날에도 이 문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말보로 담뱃갑 앞, 뒤에 찍힌 문장 밑에 "VENI, VIDI, VICI(베니, 비지, 비시)"라는 라틴어가 그 뜻입니다. 뛰어난 문장력을 지닌 카이사르의 카피라이터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카이사르는 한 국가의 왕이라 칭하기보다는 대륙의 일부를 총괄하는 황제가 될 인물임을 책을 읽는 내내 느끼게 됩니다. 그의 속국 지배원칙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다민족 / 다종교 / 다문화정책이 그것입니다. 지배국이 피지배국의 종교 문화를 인정해 주고, 속국의 외부침략을 방어해 주는 것까지를 지배국 로마의 역할이라고 여겼던 것이 카이사르의 생각입니다. 즉, 폴리스(도시국가)를 초월한 단계에서 태어나는 코스모폴리스(세계국가)가 장차 로마가 취해야 할 국가형태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벤나에서 리미니까지의 거리는 50km입니다. 왼쪽으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면서 남하하는 평탄한 길입니다. 라벤나에서 30km쯤 왔을 때, 루비콘강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2천 년 뒤인 오늘날에는 강의 흐름이 세 줄기로 나뉘어 있어서, 그중 어느 것이 역사상의 루비콘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강물을 혜치며 건널 수 있는 정도의 얕은 강인 것은 기원전 1세기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국가와 키살피나 속주의 경계이긴 했지만, 상징적인 국경이었습니다. 한밤중에 출발했으니까 아침 7시에는 루비콘강 앞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로마군단의 행군속도는 5km였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를 따르는 병사들은 말없이 총사령관의 등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참 후 뒤를 돌아본 카이사르는 가까이에 있는 참모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그러고는 그를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망설임을 떨쳐버리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장군의 뒤를 따르자!" 병사들도 일제히 우렁찬 함성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러고는 앞장서서 말을 달리는 카이사르를 따라, 한 덩어리가 되어 루비콘강을 건넜습니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카이사르가 50세 6개월 되던 날 아침입니다.
카이사르는 전쟁터에서 무사로써 자존심을 중히 여기는 명장이었고, 그를 따르는 병사들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조국의 아버지'(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시민들은 로물루스를 로마의 건국자 라고 부르듯, 카이사르를 로마의 두 번째 건국자라고 불렀습니다.
브루투스, 너마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은 모든 로마시민에게 슬픈 날입니다. 그들이 '神'이라 믿고, '아버지'라고 여기던 사람이 암살당했기 때문입니다. 암살범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공화정을 전복시키려는 카이사르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빼았길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좀 더 큰 세계, 좀 더 큰 꿈과 이상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카이사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키케로입니다.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인간됨을 존경하면서도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파괴하고, 독재로 가는 것을 극도로 염려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삼두정치를 지지했고,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놓일 때마다 갈팡질팡했던 인물입니다. 끝내 폼페이우스 편에 섰으나 오히려 카이사르는 그를 두둔했습니다. 카이사르는 키케로의 학식과 인격을 높이 칭송했습니다. 大人, 카이사르는 그 어느 누구보다 큰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브루투스'라는 이름은 당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먼저 카이사르의 애인 세르빌리아의 아들 마르크스 브루투스입니다. 이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아들로 알려진 우리가 암살 주동이라고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또 다른 인물은 데키우스 블루투스입니다. 마르크스는 심약한 인물인데 비해 데키우스는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졸보 마르크스 보다는 데키우스가 실제 카이사르의 암살범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보면 제1상속인이 17세의 옥타비아누스이고, 제2상속인이 이 데키우스 브루투스라는 사실입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살해한 암살범을 그가 세울 제국의 주요 요직으로 이미 내정해 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카이사르 사후 정계개편이 있었고, 이 개편된 요직에는 미리 카이사르가 정해놓은 인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카이사르는 죽어서도 인간세계의 신권(神權)을 행사하고 있었나 봅니다.
2025년 9월 4일, 포로로마노 가이드 투어를 하면서 정말 놀라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2천 년 전 죽은 어떤 사람의 무덤 앞에 수천 년 동안 그 사람을 기리고, 그 사람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화환이 아직도 줄을 서서 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거나, 폭우에 씻겨 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영웅입니다. 그는 국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면 갈리아인이 든 에스파냐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조국은 로마 문명의 우산 밑에 있는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가 공존하는 제국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인종의 인격과 품위는 말할 것도 없이 목숨마저도 가볍게 여기는 세계 지도자들, 그들에게 카이사르의 그림자라도 닮아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인격이 무너진 지도자는 어느 시대에 갖다 놓아도 '무솔리니'나 '히틀러'같은 악마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학식, 파워, 재력'에 앞서 품격 있는 인성이 사회 지도자나 지배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인드가 아닐까요? 25년 9월 3일간 로마여행은 제게 새로운 영웅을 알게 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역사 속 인물 '시이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서쪽 유럽 어딘가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카이사르 같은 영웅이 자꾸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