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의 서재_14
이 글은 2023. 2.23일 블로그에 올린 글로 여기 다시 옮겨 적습니다.
3월 독서토론회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예전에는 '수레바퀴 밑에서'였는데, 최근 번역은 '밑에서'를 '아래서'로 바꾼 듯싶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3권을 함께 정리해 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내 인생에서 꼭 버리고 싶은 책입니다. 나는 이 책을 4번 읽었는데 그때마다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2010년 7월입니다. 그 해 6월 4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는 4번째로 이 책의 첫 장을 펼쳤습니다. '굴레' 나를 둘러싼 '죽음의 굴레'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바로 유명한 다음 문장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 책을 펼치게 한 이유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Der vogel *kampft sich aus dem Ei)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데미안 123p, 전영애선생은 kamprt를 '깨고 나온다'가 아니라 좀 더 원문에 가깝게 '투쟁한다'라고 번역함.)
독서토론회에서 헤르만 헤세에 대해 이야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는 죽음을 통해 깨달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힌트를 헤르만 헤세를 통해 찾고자 한 것은 내 인생의 변곡점에 <데미안>이 늘 신호등처럼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후 이 책을 쥐게 된 것도 아마 그 이유에서일 것 입니다.
그러나 <데미안>을 다시 읽기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품게 될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고통의 몸부림을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그러나 약간 부족합니다. 종교적 관점은 다르지만 하나 더 <싯다르타>를 펼쳐 들었습니다. 3권의 책을 통해 내 인생의 방향키를 잡기를 소망합니다. 잘 짜인 형상의 굴레,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삶의 수레바퀴를 과감히 이탈하고, 자아를 깨쳐 인생의 아포리즘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善과 惡, 이분법적인 세계관
헤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세계관은 이분법적인 세계관입니다. 하나는 도덕적이고, 사랑으로 가득 찬 밝은 세계(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락과 죄악으로 유혹하는 뒷골목의 세계(惡)입니다. 아프락 삭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이 결합되어 있는 '선(善)과 악(惡)이 동시에 공존하는' 고대 모든 정령을 관할하는 신비주의 신(神)의 이름입니다.
이런 이중적인 고통생활에서 싱클레어를 구원해주는 존재가 <데미안>에서의 데미안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신학교를 퇴학당한 한스는 기계공이 되기 위해 공장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거쳐야 하는 마을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밝고 넓은 '게르버 거리'이고, 또 다른 마을은 음침한 '매의 거리'입니다. 매의 거리는 처음 들어보는 전설과 기적, 끔찍한 귀신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부처 고타마를 만나서, 고타마의 설법을 들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인과응보의 관계로 설명하는 고타마의 가르침에 세상의 영원한 순환작용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각성자라 할지라도 깨달음의 순간에 체험한 것을 말이나 가르침을 통해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 즉 삶과 인식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균열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는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기생 카말라와의 육체적인 유희를 즐기고, 카마스와미를 통해 도박에 손을 대고, 어린애 같은 인간들의 인생에 빠져 들게 됩니다.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빠져들어가 있음을 깨달은 어느 날, 그는 그를 둘러싼 욕망과 권력의 굴레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뱃사공 바주데바입니다.
3권의 책에는 주인공에게 인생의 '진리(옴)'를 깨닫게 해주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데미안(데미안), 하일러(수레바퀴 아래서), 바주데바(싯다르타)입니다. 이들은 각각 세상에서는 주인공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지만, 알을 깨는 파괴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길을 인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주는 인물 들입니다. 니체가 극복해야 될 인간의 본(本)인 '위버멘쉬'를 세상을 바꾸어주는 진정한 인간으로 설파한 것처럼, 사무엘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우리가 기다렸던 그 무엇인가의 실마리를 알게 해 주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바로 이 3명의 매파 '데미안, 하일러, 바주데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레바퀴, 새장, 굴레 우리를 둘러싼 윤회의 소용돌이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삶의 수레바퀴는 늘 틀속에 나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한스, 호기심 많고, 갈바를 몰라 방황하는 싱클레어, 사색하고 기다리고 단식을 통해 진리를 찾아 고뇌했던 싯다르타 모두 살아오면서 한번쯤 겪어보고 고민하고 힘겨워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칭찬받고 존경받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한스처럼 우울하고, 외롭고, 지쳐했던 유년기의 내가 있었습니다. 길을 몰라 헤메일 때도 있었습니다. 선(善)과 악(惡), 밝음과 어두움, 거짓 위선과 진리의 길에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방황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 밖은 어둠이므로 교회 안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고 누군가 선(線)을 그어 놓기도 했습니다. 선(線) 밖의 세계는 악이고, 선(線) 안에서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고 나 스스로 채찍질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데미안>을 만났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내 '알'은 그 범위가 어디까지고, 그 '알'을 깨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과 내가 부모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겪어야 할 고뇌의 목록들을 나열하고, 지우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이제 나이 오십에 <싯다르타>를 들었습니다. 인생의 아포리즘이 여기 담겨 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4번이나 <데미안>을 읽으면서 찾지 못했던 삶의 키(Key)가 의외로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종교적 관점에 함몰되어 문학작품을 왜곡되어 읽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헤세의 후반기 작품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제게 특별히 울림이 있었던 것은 싯다르타와 강(江)과의 대화입니다.
그리움에 애타는 탄식 소리, 깨닫는 자의 웃음소리, 분노의 외침소리와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있었으며, 이 모든 것이 수천 갈래로 얽혀서 서로 밀착하여 결합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합해져서, 그러니까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합해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합해져서 사건의 강을 이루고 있었으며, 생명의 음악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 강에, 수천 가지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가 고통의 소리에도 웃음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 두거나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특정한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 소리들을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 (싯다르타 196p)
물은 서로 상이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어디에서나 동일합니다. 내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부모의 바람, 주변의 시선, 사회적 성공에 대한 부담감 등에 내 자아를 묶어 두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강이 오로지 한 곳으로 흘러가듯, 나는 대리석에서 다비드를 찾아낸 미켈란젤로처럼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형상에서 끄집어냈음을 깨닫고, 유유히 한 방향으로 흘러가야겠습니다. 주변의 많은 소리들로부터 영혼의 세밀한 음성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유유히 나는 흘러갈 것입니다. 그 목적지는 영원한 본향(本鄕) 천국입니다.
<독서토론 후 잔상>
싯다르타란 덧없는 존재이며, 형상을 지닌 것은 모조리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자기는, 이 새로운 싯다르타는 젊고 기쁨에 찬 어린아이이다. (p145)
→ 이 문장 속에 니체사상이 읽힘. 낙타 - 사자 - 어린아이의 변화, 위버멘쉬
자아의 삶을 추구하는 한 젊음의 통과의례 기록인 이 책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모토를 앞세운 철학적 성찰로 시작된다. 이 책에서 헤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며 누구나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전영애 '데미안' 해설에서)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 (데미안이 크로머에게 협박당하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해 준 말-데미안 中)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데미안의 마지막 페이지)
* 참고 : 정여울 작가의 기획특강 영상
https://youtu.be/pfca94Gyk6Y?si=QKP3kEhLvKoP5V2t
기획특강- 지식의 기쁨 - 진정한 나를 찾아서 '데미안'_#001
https://youtu.be/7WbtX6NYEW8?si=vJzck51xPSVrYp2U
기획특강- 지식의 기쁨 - 진정한 나를 찾아서 '데미안'_#002
https://youtu.be/2Ce7exwL-JQ?si=xV3U4eYJiyue8UhV
기획특강- 지식의 기쁨 - 진정한 나를 찾아서 '데미안'_#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