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의 서재_15
1년 전 제주를 마음에 품으며 생각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까? 관광지가 아닌 일상의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외롭지는 않을지? 시골생활은 처음인데, 뭔가 불편하거나 답답하진 않을까? 막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2개월 후 섬(島)을 떠나야 되는 제게 제주 1년은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은 나날이였습니다. 437km의 올레길 위에서 느꼈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바람 공기, 글 쓰며 창으로 보이는 돌담과 넝쿨,새소리... 그 어느 것 하나 마음 속에서 지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자연풍경이 아닌 제주 인물로서 제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계신 분이 한 분 있습니다. 고광민선생. 선생을 저는 서귀포중앙도서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가을이 한창 깊어가는 2025년 10월 마지막 토요일, 범상치 않은 옷차림과 산발한 머리, 기인이 따로 없습니다. '눈빛' 선생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쉼 없이 수강생을 압도하고, 거침없이 제주사람들의 삶과 풍습, 제주언어를 쏟아 냅니다. 책에는 없는 살아있는 제주인의 생활모습이 그의 입을 통해 마구 펼쳐 집니다. 2시간 동안 저는 혼(魂)이 나갈 정도로 그에게 빠져 버렸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그가 쓴 책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688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 <제주 생활사>를 펼쳐 들고 그가 평생 김삿갓처럼 떠돌며 제주 산간을 휘 젓고 다니면서 공부하고, 배운 것들을 편안한 의자에 앉아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언젠가 나도 선생처럼 세상을 방랑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보고, 듣고, 경험하며 쓰고 싶습니다. 아직도 <제주 생활사>를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그의 강의 및 함께했던 현장학습, 그가 쓴 <제주 생활사>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것들을 뽑아 여기 남기고자 합니다.
11월 1일 고광민선생과 화순리 현장학습에서 배운 '화순리 냇깅이' 이야기부터 시작해 봅니다.
화순리 냇깅이
섬에는 물이 풍족할 거 같지만 생활용수로 쓸수 있는 물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안덕면 화순리는 산 위에서 바다로 흐르는 물이 풍족한 지역입니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화순리를 '벗내'라고 하였고, 1900년대 이르러 벗내 사람들은 스스로를 '화순리'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화순리 현상종(1939년생, 남) 어르신은 지금의 화순리는 '곤물동네', '웃동네', '중동네', '알동네' 4개 동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곤물동네, 웃동네 사람들은 '곤물', 중동네 사람들은 '큰물', 알동네 사람들은 '신영물' 주변에 모여 살았습니다. '냇깅이'는 제주어로 '동남참게'를 말합니다. 화순리 창고내의 '냇깅이'들은 망종(6월 6일경)부터 하지(6월 21일경)사이 수놈들이 상류에서 '맷디(창고내 하류의 기수역)'로 내려왔습니다. 수놈들은 맷디에 있는 돌멩이나 바위 밑에 산란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수놈이 발로 돌멩이나 바위 밑에 박힌 흙모래를 파냈는데 그 바깥에 흙모래가 수북하였습니다. 화순리 사람들은 '냇깅이'가 바위 밑에 들어가서 흙모래를 치우는 모양을 '매 친다'라고 했습니다. '냇깅이'가 바위 밑에 들어가서 몸을 틀고, 그 앞에 흙모래가 수북히 쌓인 모양을 '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6월 21일경)부터 소서(7월 7일경) 사이 암놈들이 내려왔습니다. '냇깅이' 수놈이 만들어 놓은 구멍 속에는 암놈 서른, 마흔, 쉰 마리가 들어갔습니다. 소서(7월 7일경)부터 백로(9월 8일경)까지 '냇깅이'들은 '맷디'에서 산란을 하였습니다.
선생은 위 현상종 어르신의 말씀 중 '매'라는 말을 듣고 한참 그 뜻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일부다처제인 '냇깅이'는 산란을 위해 30-50마리 부인들의 보금자리를 엄청 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집이 아니라 궁궐쯤 되었겠네요. 이때 구멍을 파면서 생겨난 흙더미가 바로 '매' 였을 것입니다. 뫼산(山) 자의 그 '뫼'를 생각해 보면 금방 떠올려집니다. '이 얼마나 멋진 문학적인 표현인가요? 제주사람들 참 멋지지 않나요?'
'냇깅이'는 아내들을 위해 제 몸의 몇 십배의 궁(宮)을 만들고, 그 흔적을 산더미같이 남겨 놓았습니다. 남자들은 이렇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손 남기기를 위해 애써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탑깝게 도 화순사람들은 오랜 기간 지켜보면서 꾀를 냈습니다. 망종(6월 6일경)부터 백로(9월 8일경) 사이 야간에 내려오는 암놈들을 '발, 낚시, 맨손어법'으로 수확했습니다. 그래서 수놈은 암놈이 구멍 안쪽에서 산란하는 동안 입구 쪽에서 불침번을 섰습니다. 제 처자식을 지키려는 수놈의 본능이겠지요.
선생의 실감 난 '화순리 사람들의 삶의 언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음력 절기에 따라 순응하는 생태계의 순환이 떠올랐고, 화순사람처럼 낚시를 하는 것과 물길을 막아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날 우리는 '냇깅이'의 '냇'자도 보지 못했는데, 어쩌면 여기서 '냇깅이'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생태계의 순환이 파괴돼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놈 '냇깅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매'를 아마 영영 못 볼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불침번 '냇깅이'가 지켜야 할 것은 이제 너무 거대한 화학물질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냇깅이에게서 오염되어 가는 지구 생태계를 지키려 하는 수많은 작고, 연약한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이건 저만 드는 생각일까요?
*제주어 '냇깅이'는 '동남참게'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