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 올레길 (3코스)

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by 밤안개

나는 걷는다. 2


나는 걷는다.

해안을 따라 걸어가고, 산에 오르고

도로를 끼고 나아가면

아름다운 숲 정원이 나온다.


나는 걷는다.

스페인에서도, 터키, 그리스에서도

나는 배낭 하나 둘러메고 걸었다.

우이동 산길, 북한산 둘레길

사하라 사막도 똑같다.

나는 걷는다.

다리가 나를 버텨주고, 땅이 나를 받아주는 한

나는 걷는다.


아버지는 평생 수유리 집에서

우이동 회사를 오갔지만 끝내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하고 땅에 묻혔다.

나는 안다. 아버지 무덤에는 다리가 없다.


나는 걷는다. 나는 걸어야 한다.

아버지가 가지 못했던 길들을

나는 걸어야 한다.

아버지는 수유리와 우이동만

오갔지만, 나는 걸어 나갈 것이다.

지구의 서에서 동까지

지구의 남에서 북까지

두 다리가 나를 지탱해 줄 때까지

땅이 나를 안아 줄 때까지


나는 걷는다. 나는 걷는다.

아버지 다리가 되어 나는 걷는다.

(2025. 8. 7)



2025년 8월 7일 목요일

06시 14분, 길을 나섭니다. 예보 상으로 제주는 오늘 종일 비입니다. 우의를 챙기고, 샌들을 신고, 생수 3개, 오메기떡 3개를 가지고 길을 나섭니다. 길이 도보자의 설레는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기를 기대합니다. 협재 바다 앞에는 일군(一軍)의 라이딩족들이 쉬고 있네요. 그들은 달리고, 저는 걷습니다. 날씨가 우리 모두를 도와주길 기도합니다.


올레 3코스는 길이 A, B 2개 코스로 나누어집니다. A코스는 온평포구를 출발하여 내륙으로 들어가서 2개의 오름을 통과하는 20.9km의 6~7시간이 소요되는 코스인 반면 B코스는 해안가로만 쭉 따라가는 14.6km의 4~5시간이 걸리는 비교적 평범한 코스입니다. 도보자는 오늘 B코스를 선택했습니다.


09시 44분, 올레 2코스 종점, 3코스 시작점인 온평포구에 도착했습니다. 잔뜩 찌푸린 날씨의 성산구간(온평~표선)을 걷기 시작합니다. 입추라 그런 지 제법 바람이 시원합니다. 출발한 지 50m 지점에서 A, B코스가 서로 갈라지는 곳을 만납니다. 계획대로 직진해서 B코스로 나아갑니다.


길은 온평도댓불(옛날등대)에서 용머리동산을 거쳐 좁은 숲길 '연듸모루숲길'로 들어섭니다. 표지판이 없으면 전혀 찾을 수 없는 길입니다. 인적 없는 숲길을 들어서자 산 꿩이 푸드덕하고 날아갑니다. 그늘진 길은 다시 밝은 길로 나오고, 좁은 길로 들어섭니다. 곳곳에 밭이 있고, 색색 나방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갈래 길이 나오면 어느 한 방향으로 여지없이 리본이 있습니다. 하우스에는 물 댄 소리가 나고, 샌들 안으로 조그만 자갈이 들어왔습니다. 샌들은 압박하는 것이 없어서 발을 길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만 조그만 자갈이 들어오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도보자를 멈추게 하는 것은 거대한 장애가 아니라 조그만 돌멩이입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작은 돌멩이 때문에 멈춰 섰던가요. 툭툭 털어내면 될 것을... 리본을 따라 계속 걸어 나갑니다.


아름다운 신산 해변도로로 이어집니다. 주변에 코코클럽이라는 리조트가 8월 2일 오픈했네요. 규모나 건물의 모양이 이 조그만 시골 마음에 비하면 어마어마합니다. 저기는 어떤 사람들이 머물까요?


'신산리에 들어온 이들은 모두 성공한다.'는 설화가 있는 닭 모양의 조각상을 지나갑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여기 지형이 닭을 닮은 ‘금계포란형’이라고 하며, 이 마을을 칭송합니다. 돌이켜보면 닭이야 말로 풍요와 부를 가져다주는 친근한 가축인 것 같습니다. 해안 길은 상당히 길게 이어져 있는데 파도가 해안의 바위를 부딪치는 소리와 풍경이 도보자를 설레게 합니다. 곳곳에 카페가 있고, 마을 연인들이 서로 마음을 고백했다는 장소도 보입니다. 신산 환해장성, 신산포구, 신산리 마을카페가 이어져 있습니다. 책에서는 여기서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데, 도보자의 눈에는 띄지 않습니다.


신산리 마을카페 앞에서 스탬프를 찍고 갑니다. 배가 고프지만 스킵하고 발길을 서두릅니다. 길은 ‘주어동포구’에서 ‘삼달리’를 지나갑니다. 반갑게도 여기서 길을 걷는 올레 꾼을 처음 만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부엔까미노" 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젊은 연인이 무척 아름다워 보입니다.


'신풍·신천바다목장'을 지나갑니다. 물빛 바다와 풀빛 초장이 어우러진 목장이라고 표지판에는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직 파도소리만 들리고, 주변은 모두 물과 풀뿐입니다. 그 안에 길이 있습니다.

엄마소는 송아지를 핥으면서 계속 울었나 봅니다. 눈 주위가 시꺼멓습니다.


길은 바다목장을 지나 해안의 암벽 길을 따라 들어갔다가는 일반도로로 다시 나옵니다. 11.9km를 쉼 없이 걸어왔습니다. 재미있는 다리 앞에서 잠깐 멈춥니다. '배고픈 다리'라고 명명되어 있는 이 다리는 고픈 배처럼 밑으로 푹 꺼져서 그렇게 불린다고 하네요.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흘러, 바다로 이어지는 하천의 꼬리 부분에 놓아진 다리입니다.


14시 04분, 표선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출발지 온평포구에서 쉼 없이 4시간 20분, 14.6km를 걸어왔습니다.


14시 16분, 표선 돌담칼국수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보말죽칼국수를 먹습니다. 아마 죽과 국수를 융합한 신상인 듯싶습니다. 오늘의 첫 끼니네요. 3코스는 2코스보다는 수월했습니다. 몸이 비로소 길이 갈 바를 어느 정도 익혔나 봅니다. 뜬구름 없이 길을 걷다가 온평초등학교를 지났는데 '온평'이라는 말을 '온전히 평안하다'라는 말로 해석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 '배고픈 다리'라 명명한 다리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4.3이 생각나고, 육지로부터 차별받아온 제주사람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고유명사 하나에도 삶의 애환이 느껴집니다.

올레3코스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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