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일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나 보다.
분명 주고 주스에서 그만두고 더 이상 일은 안 하겠다고 한 지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아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어찌 된 영문인가.
어쨌든 남은 3개월이라도 혹시라도 일 할 수 있나 싶어 또 여기저기 구직 사이트를 찾았다.
일단 무조건 면접을 보자라는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따지고 지원했던 처음과 달리
이번엔 트레인을 타고 걷고 30분 이상이 걸리는 데도 가리지 않았다.
또 운 좋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캐나다에서도 카페 경력이 많아 이제 이력서 통과는 너무나 쉬운 지경이 된 것 같다.
간단하게 구두 면접을 보고 내 남은 비자기간을 걸려 하면서도 커피 만드는 것을 시연해달랬다.
할 줄 안다거나 자격증이 있다 해도 막상 시켜보면 못하는 지원자가 많아서 면접 때는 항상 필수라 하였다.
첫 기계라 행동이 어색한 거 빼고는 능수능란하게 라떼를 만들었다.
매니저는 교육시킬 게 별로 없다며 좋아했다. 그러곤 혹시라도 같이 일하게 되면 비자 끝나는 8월까지는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이미 주고 주스에서는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먼저 상대방이 약속을 어긴 상처가 컸나.
왠지 모르게 절대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까지 더해지면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상황을 봐서 바뀔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걸 그랬나?
다른 사람이 채용이 된 거 같았고 막상 떨어지니 후회가 됐다.
한 달 후에 채용사이트를 다시 가봤더니 똑같은 공고가 또 올라왔다.
나도 결국엔 비자를 꽉 채워 8월에 돌아오긴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떡밥을 던졌을 때 그냥 물걸 그랬다. 사실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고 금방 그만두는 친구들도 많이 봤고, 개인 사정이란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님을 알기에, 일단 알겠다고 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사정하는 고용주의 입장 또한 겪어본 일이라 일단 나 좋자고 그런 약속은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후로 완전히 캐나다에서 더 이상 구직활동에 대한 미련을 놓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쉬울지 몰라도 나에겐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일을 못하면 해고하는 게 맞지만 공과사의 구분이 확실하고 본인이 이익만 추구해서 정 없이 구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다른 룸메이트들은 일을 한번 구하면 꾸준히 잘했는데 나는 이상하게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많았고
무려 6명의 사장님 밑에서 일을 했다. 친구들은 누가 그렇게 일을 금방 구할 수 있냐며 오히려 대단하다고 좋게 포장해서 이야기해줬지만 당시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치고 하얗게 불태운 추억이라 생각할 수 있지
그때는 한국에서 겪어 본 적 없는 일들과 상황에 참 어찌할 바를 몰랐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져
자존감이 가장 바닥을 찍었을 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다행이고 대견스럽기는 해도 더 이상 그런 개고생은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