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비뉴에 위치한 드빌 카페에 유명하다던 누텔라 라떼를 마시러 갔다.
창가에 앉아 혼자 멍을 때리며 마시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이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느냐 물었다.
가방을 치워주고는 앉으라고 했다.
그렇게 처음 피터를 만났다.
처음엔 자리가 없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눈치 빠른 피터가 자긴 항상 이 자리에 앉는다고 하면서
다짜고짜 나에게 본인 소개를 했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심심한데 잘됐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꽤나 긴 대화를 하게 되었다.
피터는 독일계 캐나다인으로 직장을 다닌다고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매너 있고 깔끔한 외모를 가진 미드에서나 나올 만한 훤칠한 외국인이었다.
그러다 저녁쯤이 되니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운동을 가야 한다고 했다.
잘 가라며 만나서 반가웠다고 하는 찰나 피터가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바로 앞에 있는 페어몬트 호텔의 건축 양식이 굉장히 멋있는데 안 가봤으면
소개해주고 싶다며 다음에 만날 이유까지 친절 하게 말해 주었다.
얼씨구!
이렇게 외국인과의 로맨스가 생기나?
피터는 가끔 안부를 묻고 괜찮으면 한 시간 정도 커피 마실 수 있냐고 물었다.
나도 일 가기 전에 쉬는 시간이 있으니 그 사이에 잠깐 만나서 커피만 마시고 헤어지곤 했다.
이렇게 짧게 자주 만나다 보니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 날 피터가 오늘 밤 할 거 없음 클럽이나 가자고 문자가 왔다. 마침할 게 없었다.
집 앞에서 15분만 걸으면 있는 클럽이고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알겠다고 했다.
나한테 이쁘게 차려입고 오라고 했지만 당연히 그런 옷은 없으므로 그냥 심플하게 입고 갔다.
편의점 앞에서 만난 피터가 날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에 적잖이 충격이었나 보다.
그래도 멜버른 클럽에서 안경 끼고 앞머리 까고 운동복 입었던 것보단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했는데..
화장도 했고.. 구두라도 신고 오지란 말에 구두가 없단 말을 하니 민망할 정도로 놀라워했다.
“How is that possible?"
뭘 Possible까지 따지나.. Why so serious? 그의 말을 무시하고 클럽으로 향했다.
캐나다 모든 클럽엔 시큐리티가 신분증을 검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 서로의 나이를 몰랐다.
피터는 키가 크고 마른 편에 속하지만 운동을 즐겨해서 그런지 잔 근육이 많으면서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래서 한 40대 초중반일 거라 생각했고 외국인들은 원래 노안이니
그것을 감안하면 한 30대 후반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다.
어차피 클럽에 가면 체크를 하니 그때 자연스럽게 알면 되겠구나 싶었다.
피터가 몇 살인지 힐끔 쳐다봤다.
51 years old.
순간 내가 숫자를 잘못 봤나 싶었다. 화면엔 51이라는 숫자가 떠있었다.
게다가 외국 나이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52세나 생일이 안 지났으면 53세일 수도 있다.
헐 너무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자기 관리가 굉장히 투철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란 말인가??
생각보다 많은 나이에 갑자기 내가 친구처럼 대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친구라고 생각하기에도 이건 너무 차이가 나는데 어떤 respect를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지만,
정작 피터는 내 나이를 알고도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외국사람들은 나이를 정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캐나다 클럽 와보니 똑같다. 멜버른이나 서울이나 여기나 마찬가지. 아는 노래도 없어서 지루했다.
피터가 샷을 몇 잔 사주고 내가 너무 지루해 보였는지 집에 가자고 했다.
역시 딱 놀건 놀고 말건 마는 피터, 쿨하게 그럼 다음에 보자 하고 가버린다.
이것이 외국 갬성인가.
피터가 에드먼턴으로 출장 갈 일이 있는데 안 가봤지만 하루 만에 다시 돌아와도 괜찮다면 따라가도 좋다고 제안도 해주었다. 물론 일한다고 가지 않았지만 동양 여자애 한 명 이것저것 구경시켜준다고 애쓰는 피터에게 고마웠고 그런 식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생겨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