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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 소년 Dec 08. 2024

아빠의 직장에 따라가다

방학 첫 주가 한창이던 날, 공부도, 숙제도, 선생님도 없는 세상에서 눈을 떴다. 적어도 나에겐 초현실적인 순간이었다. 방학때만 되면 아이들이 부모님 직장에 따라가는 일이 흔한데, 아빠는 계속해서 어제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아빠 동료의 딸이 회사에 와서 수학과 영어 문제집 5권을 책상 위에 턱 내려놓고 앉았다는 것이다.


아빠는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입이 떡 벌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퇴근할 때까지 문제집을 다 풀고, 채점하고, 두 번 다시 보고, 답을 앞에서부터 뒤로, 뒤에서부터 앞으로 또 보더라고!"

우리 부모님은 턱이 빠진 채 ("마틸다 같은 아이가 진짜로 존재하다니!") 얼어 있었고, 그런 와중에 난 냉동고 맨 아래 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엄마, 내 아이스크림 어디 있어? 엄마, 마, 엄마, 엄마! 내 아이스크림 어디 있냐고!”  
부모님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만 계셨다. 이런 불경스러운 상황이 연출되다니,  내 문제집들을 전부 부숴버려 때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직장에 '심리학적 연구'를 위해  따라가겠다고 자청했다.

마틴 플레이스

원래 회사는 다들 어두운 정장을 입고, 빳빳한 지폐로 가득 찬 서류 가방을 들며, 이사회실에서 고위험 거래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깨졌다. 시드니의 금융 중심지인 마틴 플레이스는 프라다 정장을 차려입은 잘생긴 사람들이 행진하는 곳이었다. (저 분들은 할리우드로 안가셨지?) 빅토리아 시대의 샌드스건물들이 벽처럼 늘어서 있었고, 그 옆에는 GPO(호주의 첫 번째 우체국) 시계탑이 서 있었다. 아빠의 평범한 흰색 셔츠와 쿠팡에서 산 내 ROKA 티셔츠는 그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이질적인 존재였다(그래도 아빠 사랑해요!). 그렇게 아빠의 직장으로 향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나와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은 샹들리에를 지나, 책상 칸막이의 미로를 지나갔다.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해 책상의 반이 비어 있었다. 큰 키에 환한 미소, 품격 있는 호주식 억양을 가진 신사숙녀들과 악수를 나눴다.


"크리스, 정말 귀여운 아이를 두셨네요!"


매끈한 책상 위에 문제집과 전쟁과 평화 책을 내려놓았다. LG 38인치 울트라 와이드 커브드 모니터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리고 허먼 밀러 회전의자에 내 몸을 푹 맡겼다. 쿠션이 몸에 딱 맞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자를 360도로 돌리고 싶은 충동 또한 참을 수 없었다. 창문 너머로는 청록색 항구 풍경이 반짝였다. 동생들이 찡그린 얼굴로 아파트를 떠들썩하게 흔들던 집과 달리, 방해받지 않고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은 따분했지만, 레고 웹사이트를 뒤지고, 최신 게임 업데이트를 검색하며 인터넷 서핑에 빠져들었다. 1분이 1초처럼 빠르게 흘러갔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배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Grace 호텔 로비에 있는 Vapiano에서 미트러버 피자와 볼로네이즈 파스타, 갓 짜낸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식사 후에는 크리미 하고 진한 Bulla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식과 함께 ‘트림’ 소리가 나오는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러갔고, 레고는 매력을 잃어갔다. 충격적이다. 한때 지루함의 피난처였던 유튜브도 이젠 힘을 잃어버린 것 같았. 시간이 흐를수록 시계추는 더 무거워졌고, 발이 저려왔으며, 티셔츠와 등이 달라붙어 불편해졌다. 뿔테 안경은 계속 코 끝으로 미끄러졌고,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루한 일을 제쳐두고 사무실 정리를 시도해 보았다. 우선 빈 커피잔부터 치우기로 했다. 직원들 책상마다 어김없이 1~2개씩의 빈 컵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동료들 책상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컵 좀 치워드릴까요?"


양손에 컵을 들고 키친으로 가 싱크대에 넣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전쟁과 평화 책을 펼쳤다. 코를 움켜쥐고  눈썹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자, 왕자님, 이제 제노바와 루카는 보나파르트 가문이 차지한 영지에 불과하답니다.”  
그리고 !
안타깝게도 아빠는 갈라진 목소리로 네덜란드 동료와 회의 중이었다. 레오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흉내 내며 떠드는 동안, 아빠는 회의 내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결국 책을 내려놓고, 지루함에 빠져들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8살의 나 양 세는 중

"양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고, 양 두 마리가 울타리를 넘고, 양 세 마리가 울타리를 넘고... 뉴질랜드엔 왜 양이 많은 거지?”  


존엄성바닥으로 떨어지고, 지루함을 견디다  머리카락을 뜯기 시작했다. 내가 어른이었다면 점심시간 전에 벌써 사표를 냈을 것 같다! 아빠는 말을 이어가셨다.
“... 거시경제 요인... 무형 자산... 할당량 충족...”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은 뭔지 모를 생각들로 뒤엉킨 전쟁터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갤럭시 워치가 5번 진동을 했다. 번개처럼 물건들을 내 블랙 라코스테 가방에   쓸어 담고, Opal 카드(호주의 교통카드)를 준비했다. 가방을 싸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경험이 될 줄은 몰랐다! 


기차가 좌우로 흔들리는 동안,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어른들의 끈기를 떠올려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가 고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장과 비교하면 학교는 놀이공원이나 다름없었다. 아빠가 돌아오실때 평화로운 집을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부모님들의 모습은 언제나 나에게 영감을 준다. 그들의 크고 작은 모든 역할은 단 하나뿐인 걸작처럼 빛난다.







When I visit my father's workplace

Well into the first week of the school holidays, I woke up, no studies, homework

and teachers, smiling upon me. At least, that was my surrealism at its best. During the school holidays, kids frequent their parents’ workplace. Just yesterday, one of my Dad’s colleagues' young daughter had walked into Dad’s workplace, plopping 5 Excel Maths and English workbooks down.

As I saw Dad, his arms were flailing, his mouth hanging open. “And by the end of the day, she solved, checked, double checked, and read through her answers! From front-to-back and back-to-front!”

My parents’ jaws were screwed open (“Matilda* lives!”) while I groped inside the bottom tub of the freezer.

“Mum, where’s my ice-cream? Mum, mum, mum, mum. Where’s my ice-cream?” My parents kept on jabbering. Declaring this profanity, twas’ the time to destroy my workbooks and studies. I volunteered to go with Dad as a ‘psychological’ study, heading for his workplace.

Martin Place


I used to believe that business was the usual sombre suits, suitcases bursting with crisp banknotes, and high-stake bank deals in boardrooms. My illusion was shattered. Martin Place, Sydney’s financial hub, was filled with a parade of Prada suits, and handsome faces (why did they not go to Hollywood?). The Victorian sandstone buildings rallied against the wall, accompanied by a GPO (The first Australian post office) clock tower. My father’s plain white shirt was the odd one out (I still love you though!) amongst the crowd, along with my Coupang ROKA shirt, as we made our way to my father’s work.

Passing through a chandelier dropped from the Phantom of the Opera, I found my way through a maze of desk dividers, half of them empty since people preferred working from home. Tall, grinning gentlemen and ladies with cultivated Australian accents shook my hand.

“Kris, what a lovely child you have!”

I plopped my workbooks and War and Peace down onto my smooth desk, complete with a LG 38” Ultra Wide Curved Monitor. I dropped myself onto a Herman Miller swivel chair, my bottom molding the cushion. I couldn’t restrain myself from rotating my chair 360 degrees. I witnessed the rippling, turquoise harbour view through the polished windows. I could see why Dad would want to work at the office, uninterrupted by my little brothers with their scrunched up faces, shaking the apartment foundations.

The workplace was boring, yet here I was, browsing through LEGO.com, searching information on the latest game updates, and internet surfing in general. Minutes, feeling like seconds, trailed behind me, until my stomach demanded attention. At Vapiano, located at the Grace Hotel lobby, I ordered a Meatlovers pizza, Bolognese pasta, and a glass of freshly squeezed lemonade. Creamy, rich Bulla vanilla ice-cream followed our feast leaving a BELCH in tip (My apologies!).

The day dragged on, even LEGO lost its charm - a realisation comparable to the Blitz. YouTube, once my shelter from boredom, lost its butane. The pendulum fell heavier, an anchor sinking with each passing minute. My feet succumbed to pins and needles, and my back, glued to my shirt, became an uncomfortable prison. My horn-rimmed glasses slipped down my nose: I had had enough. It was better to do something rather than sit in a chair all day, having abandoned my boring work: I decided to keep the place clean, starting with the empty coffee mugs, for every worker had 1 or 2 on their desks.

I walked to the desks of all of Dad’s coworkers. “Why hello! Would you like your mugs taken away?”

Balancing the mugs in my hands, I walked over to the kitchen area, putting them into the sink. I sat back down as I opened War and Peace. Pinching my nose and fluttering my eyebrows, “Well, Prince, Genoa and Lucca are now nothing more than estates taken over by the Buonaparte family.” THUD! Unfortunately, Dad, with his parched mouth, was in a team meeting, talking to a colleague from the Netherlands. As I mocked the virtuosity of Leo Tolstoy, Dad stared at me throughout the session. I placed my book down, drowning in the drowse of boredom.

When I was 8, busy counting sheep.


“One sheep over the fence, 2 sheep over the fence, 3 sheep over the fence… Why does New Zealand have so many sheep?”

My dignity was exhausted to a bare minimum. My body diverted its boredom by attempting to uproot my hair. If I was an adult, I would’ve quit before lunch! I listened to Dad’s speech: “... Macroeconomic factors… Intangible assets… Meeting the quota…” Before long, my mind had formed a battlefield of half-formed thoughts. Oh, how I longed to return to the comfort of my home! At that moment, my Galaxy watch vibrated 5 times. My lightning arms swept my belongings into my black Lacoste bag, preparing my Opal card. I never knew that packing my bag was such a pleasant experience!

As the train rocked back and forth, I couldn’t help but marvel at everyone’s resistance at work. I thought school was torture, but compared to the workplace, is an amusement park, enough for me to guarantee a seamless house upon Dad’s arrival. The steadfast resilience of working parents continues to inspire me; every role, small or big, being a master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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