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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Oct 28. 2022

지난해의 내가 올해의 나에게

2020년을 지나 2021년의 내가 되어

 2020년 근무에 대한 성과상여금이 나왔다. ‘내 모든 스트레스와, 두통과, 이석증 그리고 우울증 및 그 모든 것을 감당해 준 지갑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셀프 시상식이라도 열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무 많은 업무를 몰아준 게 미안하셨던 걸까, 아니면 그 업무들과 사람 스트레스로 나자빠진 (막내 아닌) 막내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을까.

 가장 좋은 등급의 성과금을 받았고, 그래서 당장의 나는 기뻤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이렇게 돈으로, 나의 고생을 치하해 주기 전에 조금 더 ‘일할 맛 나는’ 환경을 만들어 주실 순 없었는가. 누가 보면 배부른 소리다 하겠지만, 어쩌겠어 뭐. 난 진짜로 배가 부른 놈인가 보지.


 2와 0이 두 번 만나 동글동글 귀여워 보이는 2020년은 정말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시작된 전 세계적 팬데믹이 아니었대도, 내 인생의 팬데믹이 나를 아주 떼굴떼굴 굴리다 떠나간 한 해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시절을 설명하려고만 하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마음과 말과 글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아서 어렵다. 가볍게 읽고 지나갈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다르게, 그 시절은 지금도 나에게는 너무나 무거울 뿐이라서.




 그때는 정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누구나 다 지나가는 때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세상에 살면서 안 힘든 사람 아무도 없다고. 그 말이 참 맞는데, 그래서 그 말에 또 처 맞았다. 남들이 힘들다고, 내 힘듦을 몰라줘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어딘가를 꾸욱- 누르면 다른 한쪽이 뿌욱- 하고 튀어나오기 마련인 것을, 그때의 나는 왜 그걸 모르고 그렇게 미련했을까.

 너무 섣부른 판단으로 휴직을 선택한 건 아니었을까 결정을 내리고도 고민이 많았지만, 달리는 폭주기관차에서 뛰어내리고 나니 그 선택이 옳았음이 보였다. 아무도 하차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열차라면 뛰어내려서라도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지. 뛰어내리다 생긴 생채기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 믿으며.


 어쨌든, 아무튼 등등으로 대표되는 접속사로 이야기를 환기해 보자면, 그래서 이 이야기의 시작점 즈음에 나는 휴직 중이었고, 지난날의 (개)고생에 대한 성과금을 받았고, 그래서 무엇이든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마음과 몸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을지라도, 그 상처를 덮어줄 반창고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으니까.

 엄청난 액수는 아니라도 월급보다는 많은 금액을 받은 만큼 후회 없이 잘 쓰고 싶었는데, 그래서 더 고민이 되었다. 이 돈으로 뭘 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했던 라식이나 라섹을 할까, 아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야금야금 쓸까, 그것도 아니면 아이패*나 그림 그리는 툴 같은 걸 사서 다른 걸 준비해 볼까.




 그러다 문득, 정말 문득,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네가...? 진짜...? 혼자서...?’ 처음엔 막 신나서 달려 나가다가 갑자기 물음표의 갈고리에 콱 잡혀 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살펴보자면, 타고나길 집순이로 태어나서, 서른둘이 되도록 자취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밤엔 무서워서 혼자 잘 나가지도 않는 족속인데 그런 내가, 그래 바로 그 ‘내’가 동네 원룸도 아니고 제주도에 한 달이나 혼자 살러 간다고?


  아무리 봐도 미친 짓이었지만, 그래도 그냥 물건을 사는 데 이 아까운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던 내 마음속에 그때부터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대한 로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거인 거 같다고, 지금이 아니면 못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사실은 그때 이미 끝난 거였던 듯하다.


 그렇게,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이 이미 끝인 제주도 한 달 생존기가
시작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나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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