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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Oct 30. 2022

종달리 746, 조용히 혼자가 되어 보는

인생은 타이밍, 지금 나는

 종달리는 다녀본 제주도 중에 가장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그런 종달리에도 SNS에서 핫한 곳이 있다는 말에 찾아본 어느 카페는 예쁜 인테리어와 특별한 메뉴들로 이미 많은 인증글이 올라와 있었다. 핫플에는 사람이 몰려들기 마련. 혼자 하는 여행이 누군가의 자리를 뺏는 것도, 그 자리에 앉아 신경을 쓰는 스스로도 싫었던 나는, 그래서 되도록 핫플은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카페를 일정에 넣은 건, 거기서 판다는 디저트가 많이 궁금했고 종달리에서 가보고픈 다른 장소들과의 거리도 가까웠기 때문이었다.(어쩌면 제2의 릴로를 찾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친절한 사장님과 특별한 메뉴들, 잘 꾸며진 내부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진을 찍어 올렸는지 알 것만 같은 포토 스팟들을 보며, 나 또한 자리에 앉아 슬그머니 카페 내부를 몇 장 찍어보았다.


 이 정도면 나름 조용하리라 예상한 시간에 들렀지만, 아뿔싸. 내가 핫플을 만만히 봐도 너어무 만만히 봤나 보다. 조금만 더 늦게 들어갔다면 앉을 자리도 없어 그냥 나왔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 카페 안.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제법 가까운 좌석 사이의 거리와, 많은 대화들 틈에 끼인 혼여족은 왠지 나뿐인 것 같았다.


 커다란 창 앞에 앉은 상대방을 열심히 찍어주며 화기애애한 손님들 바로 옆에서, 나도 요리조리 디저트를 찍어보고 맛도 보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여긴 SNS 속이 아닌데,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적당히 녹아내린 아이스 큐브 라떼를 열심히 마시곤 화장실만 들렀다 금방 카페를 나섰다.




 다른 날 종달리에서 들렀던 또 다른 카페 ‘종달리 746’은 독립서점처럼 독립출판물도 들여와 판매하고, 조용히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도록 꾸며진 곳이었다. 큰길가에서 좀 더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큰 문. 조금은 묵직한 그 문을 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울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 안. 거기서도 이따금 말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다들 책을 읽느라 차분한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따뜻한 라떼를 시키고는 신발을 벗는 좌식 자리에 올라가 앉아 내 관광전쟁의 전리품(…. 기념품이라고도 읽는다.)을 한쪽에 뉘여 놓았다. 개중에는 표지가 예쁘고 가벼워 읽어보고파서 구입한 책도 있었다. 아직은 애매한 5월 초의 봄 날씨. 따뜻한 라떼 한 입에 몸이 녹고, 별 거 아니지만 귀여운 책 내용에 마음이 녹는 게 느껴졌다.


 오랜 여행에 지쳐서인지 흐린 하늘만큼이나 유독 마음이 눅진해졌던 그날. 누군가에게 보여줄 예쁜 사진으로 남지 않았어도, 그 카페에서 보낸 1시간 남짓은 오롯이 충만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책이나 공부에 열중해서, 다른 데 시선을 보낼 여가조차 없어 보이는 게 왜 그리 좋았던지.



 나중에 누군가가 그 카페에 대해 눌러놓은 박한 별점과 ‘조용하게 얘기하기를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방문평을 보았다. 두 번째 방문 때 마주쳤던 한 무리의 20대 초반 손님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조금은 시끌시끌하게 얘기하며 놀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들이 찾아든 내 최애 카페는 그와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내가 갔던 핫플 카페로 가고, 내가 처음부터 종달리 746으로 갔다면 아마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목적지 선택으로 퍽 만족스러워했을지 모른다. 그들에겐 SNS 속 감성 넘치는 공간이, 나에겐 오랜 혼자 여행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세상에 흔한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처럼, 인생엔 뭐든 알맞은 때가 있단다. 맞. 사람이 고프고,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 나이대와 시기가 있는가 하면, 조금 버겁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침잠해서 앞으로의 길을 찾고 힘을 비축해야 하는 시기도 있다.


 카페에서 만난 그들의 시간과 달리, 지금 나의 시간은 조금 더 자신에게 파고들어야만 하는 타이밍. 그러니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이 ‘타이밍’대로 알맞은 공간과 기회를 찾아 여행을 계속하면 된다는 것. SNS에 올려진 빛나는 너의 웃음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을 나의 고요도, 모두가 필요해서 나를 찾아온, 귀중한 이 간의 손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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