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지음 Oct 30. 2022

비자림, 햇살과 나와 숲과

산림욕이 전해준 위로의 숨결

 끝없는 무망감과 우울에 빠져 처음으로 찾았던 정신과 병원에서, 조금은 무뚝뚝한 여의사 선생님이 내게 산책을 권했던 게 떠오른다. 누가 때린 사람도 없는데, 밖에서 맞고 들어와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아이처럼 말 한마디 한 마디마다 눈물이 차오르던 때였다.


 업무 상황에서의 어려움, 인간관계에서 참아버린 스트레스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할 수만 있다면 햇살 좋은 오전에 출근이 아니라 산책과 운동을 권하고 싶다’고 얘기하셨다. 햇볕을 쬐며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마음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며 말이다.




 제주도에 뚜벅이로 여행 와서 가장 설레는 점은 돌이켜 보니 그거였다. 햇살 좋은 날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걸을 수 있다는 점. 그게 한적한 시내 거리든, 멋들어진 해변가이든 나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마음대로 걷다가 힘이 들면 또 어딘가를 찾아들어 쉬고 새롭게 길을 나서면 되었다.


 내 발걸음이 닿은 곳 중 맑은 날 찾아간 숲은 ‘비자림’이 유일했는데, 파아란 하늘과 초록빛 나무와 햇살은 다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아름다웠다. 거기에 적당한 구름까지 그림처럼 수놓아지니 누구라도 핸드폰을 높이 들지 않곤 못 배길 풍경이었다.



 비자림으로 들어가는 인원은 적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걷다 보니 중간중간 숲 속을 나 혼자 걸을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앞뒤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후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여린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거리며 흔들렸다. 코 끝에 와닿는 풀내음에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 이래서 다들 ‘산림욕’이란 걸 하는구나. 사람이 내어놓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진한 위로가 폐부로 스며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제각기 다르게 자라난 나무와 풀들이 꼭 내 존재를 긍정해 주는 것만 같아서였을까. 비가 내리는 날씨였어도 차마 나쁘다 할 수 없을 광경이었으나, 햇살이 내리쫴 준 덕에 숲이 건네는 위로는 배가 되었다.




 뭐가 그리도 지난했을까. 지난해의 나는 가만히 숨을 쉬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 숨이 가빴었는데. 오늘의 나는 그 숨결에 실려 온 바람과 풀내음 한 줌에 이토록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니. 어쩌면 그저, 모든 것에 너무 잘 연결된 세상 속에서 나는, 고요히 혼자일 수 없어 병이 났던 건 아닐까.


 생각을 멈추고, 일을 잠시 놓고,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온전히 숨을 들이쉬는. 그런 ‘나 자신’이 될 시간이 없어서, 그게 주어지지 않아서, 그걸 쟁취하지 못해서. 그래서 그렇게 부산스러운 마음이 마지막까지 탈탈거리며 뿌연 먼지를 뿜어내다 마침내, 주저앉아 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다 혼자 온 내게 사진을 찍어줄까 물어보시던 노부부, 자식 손주들과 함께 길을 걷던 할아버지, 그 외에도 참 다양한 사람들을 숲속 길에서 만났다. 평소 같았다면 누군가와 함께인 사실이 마음 편히 여겨져 부러웠을 텐데, 그날은 누구도 나만큼 좋아 보이지 않았다.


 햇살과, 나와, 숲과, 적당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거리만 있다면 거기가 바로 내 마음의 욕탕이었던, 그 충만함을 전세 낸 기분은 아무나 느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비자림을 뒤로하고 나서는 내게, ‘너는 이제 괜찮아질 거’라고, 햇살을 한 줌씩 끼얹으며 깨끗이 목욕을 마친 마음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이전 10화 곽지, 난생처음 만난 나의 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