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언니와 대만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3박 4일이란 빠듯한 일정 속에 내가 꼭 가고 싶다며 집어넣은 목적지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리락쿠마 카페라는 카페 겸 밥집. 리락쿠마는 아직 카카오 프렌즈와 니니즈, 춘식이 등등이 나오기 전이었던 중고등학생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해 마지않았던 캐릭터였다.
눈 닿는 모든 곳에 캐릭터가 있었던 그 카페는 들어가는 것도 번호표를 받아야만 했는데, 음식과 후식들도 ‘비주얼’ 값인지 금액이 만만치 않아서 우리를 더 당황케 했다. 맛도 모르는데 이 비싼 걸 많이 먹을 순 없다 싶어 우리는 각자 식사 한 개와, 둘이서 디저트 하나를 겨우 고르고 골라 주문했다. 그러고는 사진을 찍으며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음식들.
홈런볼 포장지에 속은 것 마냥 메뉴판 속 사진과는 달리 목이 심하게 굽은(!) 리락쿠마 밥을 보면서 우리는 숨 넘어가게 웃었지만, 결론만 얘기하자면 그 카페에서 먹은 밥이 3박 4일간의 식사 중에 가장 맛있었다. 둘 다 할 수만 있다면 귀국하기 전에 한 번만 더 가고 싶다 말할 만큼.
나는 유독 제주도의 동쪽 작은 마을 ‘종달리’에 대한 기대가 좀 있었는데, 그건 제주도를 자주 다녀본 대학 동기가 해준 추천 때문이었다. 사실은 신경쓰지 않아도 됐을 추천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담 그곳에서 어디를 들러볼까. 혼자 지도를 검색하다 ‘릴로’라는 프랑스식 오픈 샌드위치 집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음식 이름이었지만, 평이 워낙 좋았고 가는 경로도 다른 목적지들과 가까웠기에 슬며시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고 계획을 짰다. 인기가 많아 12시쯤 가면 웨이팅을 오래 해야 한다고 하니, 혼여족인 나는 점심시간을 피해 최대한 혼자여도 방해가 아닐 늦은 시간에 방문하도록 일정을 짰다.
조심스레 들어선 식당 안, 2인석에 앉아 조금 기다리다 받아 든 식사는 리락쿠마 카페와는 달리 사진과 꼭 같은 비주얼이었다. 일행이 없어 감탄사를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비주얼과 음식 냄새만으로도 이미 기대감이 충분히 일 정도로 말이다. 보기에만 예쁘고 맛은 덜 한 거 아닐까 싶어 침이 꿀꺽 삼켜지던 그때. 그러나 이곳 또한 결론만 얘기하자면, 어떤 놀라운 반전도 없이, 내 한 달짜리 제주도 여행을 통틀어 꼭 다시 가보고픈 1순위 밥집이 되었다는 사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얼마 뒤, 제주도로 여행을 가게 된 언니에게 슬며시 릴로를 추천해 주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할까 봐, 추천도 아닌 언급을 해 준 정도였다. 시간이 되고, 경로가 맞으면 한 번쯤 들러보라며 슬며시. 그 말에 언니는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샌드위치를...?’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기회가 닿아 다녀온 뒤로는 릴로에 가지 않았더라면 큰일났을 뻔했다며 웃었다.
여러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저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서, 혹은 마음이 가는 대로 했던 선택들은 모두 감칠맛 나는 인생의 경험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더불어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니라도 가보는 용기 끝에 내가 얻은 건, 누구도 아닌 ‘나’의 최선을 선택해 본 경험이었다.
‘굳이’ 여행을 가서까지 들러야 할 이유는 없는 곳. 여기가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맛볼 수 있는 메뉴. 어쩌면 그렇게 삶의 계획에서 빼버린 무언가 중에 내 ‘인생 장소’, ‘인생 맛집’이 있지는 않았을까.
‘굳이’라는 누군가의 반문에, 스스로의 검열에, 이유 없이 한 번쯤 해봤어도 좋을 ‘나의 선택’들을 놓치며 살아온 건.
누군가의 인생 맛집도 내겐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배우고, 그저 가보고 싶어 들른 곳에서 나만의 인생 맛집을 찾는. 이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곳에, 분명 너와 나 각자의 최선을 응원할 용기도 생기리라 믿으며. 이제는 일상의 릴로를 찾아 나서는 용기를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