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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Oct 30. 2022

쇼룸 598, 그대의 시작을 함께

나의 두려움이 그대에게 힘이 되기를

 몇 년 전 첫 발령을 받았던 도서관에는 조기출근이라는 근무 제도가 있었다. 열람실이 7시부터 밤 10시까지 열려 있기에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 일찍 출근하는 형태의 특근이었는데, 직원들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기 순서가 돌아왔다.


 발령받은 시기가 1월이었기에 내 생애 첫 조기출근은 새벽별이 창창한 겨울 새벽에 이루어졌다(?). 평소라면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 겨우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하던 그날. 바람이 얼마나 차던지 숨 쉴 때마다 얼 거 같은 코를 머플러에 파묻고 종종걸음으로 도서관 안에 들어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계절이 조금 더 바뀌어 금세 날이 밝아지는 시기가 돌아왔지만, 조기출근 때마다 만난 새벽의 공기는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끝내 집 밖으로 나서는 게 두려워지는 그 기분.




 종달리에서 만난 독특한 이름의 소품샵 ‘쇼룸 598’은 젊은 사장님이자 작가님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엽서, 달력, 패브릭 포스터, 블랭킷 등등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림들이 너무나도 취향저격이라 여기서도 관광 전쟁의 승리자(과연 승리자였을까...)가 번뜩이며 나타났...다는 슬픈 후문이….


 한적한 오후 시간. 혼자서 작은 가게 안 이곳저곳을 서성이다가 보니, 소품샵 이름의 유래(?)와 소품샵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보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내려오게 된 제주도.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작가님의 방이 598번지였고,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 보잔 마음이 그 방에서부터 여기까지 이어져 ‘쇼룸 598’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지나오셨을까. 어두움 속에서 웅크린 작가님의 불안이 보이는 것만 같았던 건 아마도, 그 이야기가 내 얘기인 것 같아서였을 거다. 안정감을 가장 큰 미덕으로 하는 직장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괴로운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좋아하는 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세상의 논리. 거기에 무릎 꿇어 순응하고 싶진 않은데, 그렇다고 용기 있게 나서볼 자신도 잘 생기지 않는 날들. 한 번쯤은 부딪혀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햇살이 비치는 듯한데,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덜 흩어진 어스름으로 마음을 어지럽히는 시간들.


 어쩌면 어른들의 말처럼 안전한 집 안이 나을지도 몰라. 옷을 갈아입기엔 아직도 눈이 다 떠지질 않잖아. 그렇게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분명 후회할 것만 같아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아쉬움이 늘 마음속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나.


 그래, 모든 시작은 설레고 두렵다. 동틀 녘의 어스름이 다정하지만은 않듯, ‘시작’이라는 말은 늘 그 속에 흐릿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길을 나서는 건, 그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안전한 곳을 벗어나 길 위에 서야만 비로소 우리는, 성공이든 후회든 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이게 맞는 거야.'하고 되뇌었던 길 위에서 넘어진 어느 날. 홀린 듯 여행 온 제주도에서, 누군가가 용기 내어 내디딘 첫 발걸음 위에 서 있다는 사실에 뭉클해졌던 어느 하루. 그가 불안하고 흔들렸던 만큼 나 또한 내가 꿈꾸고 있는 길이 두렵지만, 그의 고백 앞에 이유 모를 위안을 받아 용기를 내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제주도에 찾아와 이 장소를 만난 것도, 용기 내어 시작의 발자국을 내디딘 어제가 있어 가능했던 건 아닐까. 언젠가, 이 발자국 또한 내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는 다시없을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며. 그대와 공유하고 싶었던 나의 진심어린 애정을 담아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우리의 낯선 시작을 응원할 내 마음의 쇼룸 598을 찾아 나는 다시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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