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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음 Oct 30. 2022

혼자 걷는 사람

뚜벅이 혼자 여행의 장점

 걸어서 여행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다리가 튼튼해도 믿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설상가상 어디서나 최약체로 분류되는 사람이 걸어서 여행이라니. 올레길이 아무리 황홀해 보여도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건 고생길에 진배없었다.


 게다가 4월의 제주도 봄볕은 얼마나 뜨겁고 따갑던지, 나는 새초롬한 봄바람에 손이 트는 걸 막으려고 기름진 핸드크림을 발랐다가 숯불에 구운 것마냥 새까매진 손등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으니…. 제주도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지와 검지 사이가 너무 하얘서 손이 튼 줄 알고 더 열심히 핸드크림을 발랐는데 웬 걸... 며칠 뒤 제대로 보니 손등만 심하게 타서 손바닥이랑 하얗게 경계가 진 거였다.(...!)


 그 햇볕 때문에 초반 일주일 정도는 온열질환도 생겨서 두통이랑 어지러움이 나를 꽤 괴롭히기도 했다. 제주도를 많이 다녀본 친구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였지만, 그 시간에(주로 12~6시 사이에 돌아다녔다... 또르르...) 그렇게 나다니면 큰일난다나 뭐라나. 제주도의 햇볕은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는 핀잔 아닌 핀잔에 나는 아하 하고 멋쩍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뚜벅이라 불리는 이 걷기 여행을(그리고 혼자 여행을) 예찬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조차도 걸어서 혼자 여행을 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사랑스러운 이유들이.




 먼저 걷기 여행은, 원할 때면 언제든 멈춰 설 수 있다. 3주 정도의 뚜벅이 혼자 여행과, 3일간의 렌터카 가족 여행을 연달아 해보면서 느낀 점은 그거였다. 자동차로 다닐 때는 아무리 예쁜 풍경을 마주쳐도 쉽게 멈춰 설 수가 없다. 자동차 여행은 대개 목적지를 이미 다 정해놓고 빠르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고, 더군다나 예쁜 풍경이 모두 다 주차하기 좋은 장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걸어서 하는 여행은 달랐다. 걷는다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에 애당초 목적지를 향해 가는 예상 시간 자체를 넉넉하게 잡고 다녔다. 더불어 되도록 가까이에 있는 목적지들을 모아서 다녔기 때문에 중간중간 이동하는 도중에 시간을 좀 더 잡아먹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던 내 두 발만 멈춰 세우면 거기가 바로 주차장(?)이 된다는 엄청난 이점이...! 그렇게 홀로 멈춰 선 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또 혼자 여행은, 혼자여서 어쩌면 외롭지만 그래서 충만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언젠가 지인의 자소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글에는 혼자 다녀온 제주도 3박 4일 여행의 외로움이 적혀 있었다. 맛있는 걸 먹어도 나눌 사람이 없고, 좋은 걸 봐도 함께 즐거워할 사람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그 글을 읽을 때만 해도 나그 말에 동의했었다. 외로움도 많이 타고, 혼자서는 밖을 다니는 게 힘들어서 함께 나갈 사람이 없으면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에. 게다가 혼자 다녀온 유럽 패키지여행에서 정말 뼈저리게, 지인의 말을 십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달랐다.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혼자여서 나는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목적지를 정하고, 이동하고,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혼자 했기에 오히려 어디에서든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고요가, 말 없는 평온의 시간들이, 나눠지지 않는 나만의 풍경이 모두 다 마음속에 고스란히 박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나만의 재산이 되었다.


살면서 인생에 한 번쯤은 가져봐야 할 나 자신과 떠나는 여행. 그 소중함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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