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는 내내 마음이 바빴다. 내일은 어디를 갈까, 이 근방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돌아보려면 일정을 어떻게 짜야 할까. 아점을 먹고 느지막이 출발해 해가 지기 전까지 원하는 목적지를 다 다녀올 수 있을까.
아침에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부터가 이미 늘 예상 밖이었고, 초행길이면서 뚜벅이, 버스로 여행을 다녔기에 소요시간 예측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게다가 가고픈 곳은 매일같이 얼마나 많은지. 카카오맵 즐겨찾기 폴더 '제주'는, 내가 등록해 놓은 색색깔 별표로 빼곡히 차 있었다.
마음속으로 늘 '대충하자 대충', '이거 일 아니야'를 외쳤지만, 성격은 어디 가질 못했다. 빡빡한 일정을 짜 놓고 모두 다 돌아다닌 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했고, 애당초 늦게 일어나 그 전날 밤 계획했던 일정 중 겨우 반만 지킨 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찝찝했다.
게다가 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제주도의 가게들은 공지된 기존 휴일이 아니라도 언제든 유동적으로 쉬는 날이 생긴단 점이었다. 원래도 가게마다 쉬는 요일이 조금씩 달라서, 가까운 곳들을 한꺼번에 가야 하는 뚜벅이는 이미 조금 실의에 빠졌는데 말이다.
그래서 여행 초반, 한동안은 늘 다음 날 여행 일정을 짜다가 머리가 아파 넉다운되곤 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열심히 짜 놓은 일정도 그다음 날 늦게 일어나면 수틀린 대로 그냥 제일 가고 싶은 곳 먼저 골라 가게 된다는 거였다.
한 달 살기라는 거창한 이름은, 그 기간 동안 제주도의 모든 곳을 다 가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나를 빠트렸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의 몸은 하나고, 심지어 나는 차도 없고, 게다가 혼자 잠드는 밤이 무서워 새벽녘에 겨우 잠들고 대낮은 되어야 깨어나는 혼여족이란 사실을 망각한 대가였다.
결국 한 달이나(!) 제주도에 있는 나조차도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러니 그 지역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우선순위의 상위권에 들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않았을까.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여행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한참 동안 계획을 세우고, 완벽한 계획을 보며 뿌듯해 하는 우리지만, 그 계획에 비집고 들어오는 돌발상황이 얼마나 많던가.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고, 사고는 내가 일으켜야만 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러니 어떤 상황이든, 그저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걸 먼저 선택하고 남은 것은 맡겨버리자는 다짐.
그게 가장 후회가 적은 방법이라는, 32년 동안 깨달은 진리는 매일이 순탄치 않은 뚜벅이 여행객일 때도 마음의 쿠션이 되어 자주 나를 지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