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뚜벅이 여행자로 와서 가장 많이 만난 것은 당연하게도 버스였다. 시민의 발인 버스가 제주도만큼 ‘여행자의 발’이 자주 되어주는 곳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섬의 동쪽과 서쪽을 크게 도는 버스부터 시작해 중산간 지역을 빠르게 오르내리는 버스까지. 제주도의 버스는 종류도 다양하고 경로도 다양했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웬만한 버스는 다 공항을 통과한다...? 제주도의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여행 오는 여행지로서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바로 이 버스의 ‘공항 통과’ 경로가 아닐까 싶다. 누구든 배가 아닌 경로로 제주도에 들어오려면 공항을 거쳐야만 하니, 당연히 공항을 빼놓을 수 없는 노선들이 많은 듯하다.
둘째, 뒷문이 없는 버스가 많다...? 처음 제주도에서 버스를 타고 가장 당황했던 게 바로 이 부분인데 내가 타본 버스들은 거의 다 뒷문이 없는 좌석버스 형태가 많았다. 가장 많이 탄 게 섬의 동쪽과 서쪽을 크게 도는 201번, 202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만한 버스들은 다 앞문으로 타고 내렸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과 같은 승하차 질서는 필수였다. 내리는 사람 먼저, 타는 사람은 기다렸다가.(가끔 아무도 안 내리는 줄 알고 올라타려다 누가 나오면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셋째, 하차벨이 천장에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여행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창기, 뒷문도 없는 좌석버스인데 창가에 하차벨이 없어서 등에 식은땀 날 뻔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자리는 천장 쪽에 하차벨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모든 자리마다 다 있는 건 아니라서 그냥... 내릴 때가 되면 알아서 앞문에 가 서 있어야 했다.(그러나 버스가 정차하지도 않았는데 벨도 안 누르고 나와 서 있었다고 기사님께 혼난 적이 있다... 미리 안 서 있었다고 혼나는 손님도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흑...)
겨우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제주도에 살아본 여행자가 겪은 특징은 이 정도.(그러므로 당연히 반쪽짜리 개인적 의견이 되겠다.) 이 중에 실제와 동일하게 맞는 내용은 과연 몇 개가 있을까...? 누군가가 제주도 버스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주면 좋겠단 생각을 하는 찰나. 아, 그걸 빌미로 또 갈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내가 경험한 버스 체험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제주도에서 만난 버스는 내게 한낱 교통수단이 아니라 한 달 살기 여행을 대표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렌터카로는 볼 수 없었던 거리의 표정들을, 일상이 가진 불편함의 미덕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어렸을 때부터 바퀴 달린 것들과는 연이 없어 버스로 제주도 여행을 하다가, 정보를 찾기가 힘들어서 직접 버스 안내서(?)를 만들었다던 어느 작가님. 그분의 책을 읽으며 내 이야긴가 싶었던 나에게, 버스로 시작해 버스로 끝났던 이번 제주도 여행은,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일상에서도 출퇴근을 위해 필수적으로 타야 하는 버스조차 버거운 시대. 누군가와의 부대낌과 잘 모르는 타인과의 장소 공유가,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는 현대에 속 편한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여행지에서조차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오로지 두 발과, 때로 그 발 대신이 되어주는 버스로 이어진 시간.그곳에서 알게 된 이름 모를 지인들. 출발지와 목적지가 조금씩 맞닿은 덕에, 도망갈 곳(?)이 없었던 덕에 알게 된 이야기들. 그런 사소하고, 그러나 소중한 시간들이 겹쳐져 풍요로웠던 여행의 시간들 동안 나는, 어쩌면 '함께한다'는 불편함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