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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Oct 14. 2021

제주일기 여섯번째 이야기

월정리, 그리고 과거


월정리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또 다른 태풍은 이렇게 제주를 지나친다.





소낭 1호점

소낭 밖에는 비 바람이 몰아친다.




내가 머물 동안의 제주는 한없이 덥기만 할 것 같아서 여름 옷만 가져왔는데, 벌써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추운 바람이.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편이다. 고등학생 시절 겨울이 찾아오면 수면양말과 보온팩은 필수였다. 실은 계절에 상관없이 손발이 차다. 수족냉증이 심해 항상 손이 차갑다. 작년 겨울 뚝섬유원지를 갔을 때 오들오들 떨었던 적이 있다. 온몸이 추운데 특히 손이 너무 추웠다.  내  손을 만져보았던 이들은 모두 그들의 손으로  데워주려 했다. 지금은 여름인데도 내 손은 차갑다.  









어젠 참 여러 사람과 전화를 한 날이었고, 수시로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해야만 했다. 




오랜시간 통화를 했다. 아이들과 전화를 할 때 지민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기분이다. 수면 위에 가만히 떠서 파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휩쓸리는 거지. 목적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나는 물고기 떼를 볼 수도, 커다란 파도를 만날 수도 있다. 어제의 지민은 오랜 시간 바다에 있었다. 



소낭의 터줏대감, 레오와 야옹이. 2021년에 다시 소낭에 갔을 땐 레오는 떠나고 없었다.



어제 글을 다시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은 제목은 제주 일기인데 제주 일기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조심스레 묻어놓았던 기억들을 제주에 와서 비로소 꺼내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어젯밤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스스로에게 다시 해본다. 그리고 아이들의 대답 역시 꺼내어보고. 






이번학기는 수업을 들으러 회기에 갈 수 있을까. s가 복학을 했다. 그녀와 돌아다녔던 회기의 식당들. 문과대 앞 벤치, 정경대 안 휴게실, 회기 곳곳에 우리가 숨겨 놓은 우리의 기억들. 그녀가 다시 회기에 돌아온다. 스물두살의 우리는 더 짙은 흔적들을 회기에 묻혀놓을 생각이다. 어른이 되어 돌아왔을 때 확인할 수 있도록. 우린 아직 어른이 되는 중이고, 어른이 됐을 때 잊어버리고 말 비밀의 공간을 열 단서를 남겨놓아야 한다.  







바람은 점점 거세진다. 신호등이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린다. 제주가, 월정리가 흔들리는 중이다.



마침내 신호등이 부러졌다


열네살, 볼라벤이 온다며 학교에서는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도 회사에서 돌아와 엄마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냥 해맑게 학교 빨리 끝났다고  좋아했지 그리고 문어춤을 췄다. 다섯살 시절 만든 문어춤은 해산물 3종 세트 중 하나로 첫번째로 탄생한 춤. 짱구를 따라한 건 아니니 오해하면 안돼. 그렇게 문어춤을 췄다.    





고등학생 때 프랑스 판 미녀와 야수를 봤다. 그렇게 레아 세이두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의 영화를 모조리 찾아본다. 분명 수험생이었는데 그렇게 그에게 그대로 빠지고 만다. 프랑스인 특유의 벌어진 앞니에 풍덩, 그의 파란 눈동자에 풍덩, 그가 연기한 모든 역할에 풍덩.







넌 정말 사람을 몰라, 심지어 널 사랑하는 이들 마저도. 어떻게 알겠니 나 자신 조차도 모르는데 말이야.

 인간은 평생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주위의 사람들마저도 평생 알 수 없겠지. 

끝없는 무지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날 사랑하는 너희들을 사랑하기.



해야 할 일이 많다. 미루지 말고 하나씩 끝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나는 매일 아이들과 전화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월정리의 바다를 보는 중이다. 그리고 일기를 쓰지.




오늘의 너는 열넷이었으며, 열아홉이었단다. 그때의 너를 잘 만나고 왔니? 그때의 너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스물다섯이 되고 싶다. 스물 다섯은 가장 궁금한 나이. 

내가 스물다섯이 된다면 너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땐 난 정말로 어른이 될 수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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