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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Oct 14. 2021

제주일기 일곱번째 이야기

월정리의 태풍, 그리고 그 후 


태풍이 지나갔다. 식수가 끊기고 전기가 끊겼다. 신호등이 흔들리고 흔들리다 못해 부러졌다. 월정리는 암흑이 된다. 정오까지 불은 돌아오지 않고. 소낭에는 솔잎들이, 솔방울들이 쏟아졌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기. 세상에서 월정리만 섬이 된 듯 싶다. 섬 속의 섬. 신호가 가지 않아 아무와도 연락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태어나서 처음으로 꾼 악몽은 일곱살. 길가에 남겨져 집까지 혼자 걸어갔던 꿈. 집에 도착하자 낯익은 차가 나를 지나쳐 간다. 차 안에는 가족들이 있다. 차는 매몰차게 나를 스쳐 지나가고. 가장 처음으로 꾼 꿈은 버려지는 꿈. 버려지는 게 싫다. 관계를 잘 끊지 못한다. 맺어진 관계 속에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다. 너는 참 무서운 것도 많구나.







오늘은 혼자 성산에 왔다. 월정리에서 성산까지의 거리는 1시간 정도. d가 스타벅스에 가라고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씩씩하게 혼자 성산 스타벅스에 도착한다. 투썸도 주기적으로 가줘야 하는데 말이다. 남은 강의를 마저 듣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왔다 오늘도. 물론 오자마자 바로 강의를 듣지는 않고. 강의를들으려고만 하면, 할 일들이 생겨난단 말이지 참. 모르고 건조기에 돌려버려 연보라색 셔츠가 쪼그라들었다. 크기가 딱 맞게 줄어들어 좋아해야 할지 그래도 쪼그라들어서 슬퍼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월정리 해변에 미역들이 떠내려왔다


태풍이 지나간 월정리에는 미역이 떠내려 왔다. 미역들이 자꾸만 떠내려 온다. 사람들은 미역을 주워 해변가에 펼쳐놓고. 펼쳐진 미역들 옆을 지나갔다. 미역들에게서는 짠내가 난다. 그날 네가 울었던 눈물의 짠내와 같은. 이 글을 읽는 너는 지금 이 글들이어제인지오늘인지 알수 없을거야일부러뒤죽박죽 적고 있거든내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띄어쓰기가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아마 그이유.









전기가 들어오자 김녕으로 일몰을 보러 갔다. 반장님의 스타렉스를 타고 월정리에 김녕으로. 월정리에서 김녕은 차로 매우 가깝다. 해가 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해. 빠른 속도로 해가 바다 너머로 떨어졌다. 거짓말 같게도 그 순간, 2주만에 내가 제주에 온 게 실감났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니? 2주 만에 제주에 온 게 사실이 되기 시작했어




김녕에서 해가 진다



첫 타투를 할 때가 떠오른다. 

바늘이 팔을 가로지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든 생각, 나는 계속해서 타투를 하게 될거야 몸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는다는 것. 


내가 죽었을 때 이 아이들만이 내 신원을 확인해줄 거라는 믿음은 변하지 않고.











오늘 유난히도 나를 많이 찾아오는 건 일곱살 때의 지민. 일곱살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죽기 직전의 노인이고, 그동안의 인생을 회상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지금 일곱살 때의 기억에 오래 멈추어 있는 거야. 죽기 직전에 어떤 순간이 가장 강렬하게 찾아올까 어떤 기억이 가장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넬까.




김녕의 지민.


비가 정말 많이 내린 날이 있다. 밤 늦게 학원이 끝나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비를 밟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화와 양말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간 날이 있다. 아스팔트에 마구 떨어졌던 비는 발등에 같이 떨어진다. 그렇게 비를 밟고 집에 도착한 날이 있다.







여긴 다시 성산이고, 여전히 난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중. 어제 살짝 체한 게 아직도 가라앉지 않아 속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누워있지 않고 성산으로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다시 근무 날. 소낭의 가족들이 떠나는 날. 나는 또다시 이별 앞에 놓인다. 여전히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언제쯤 나는 이별과 익숙해질 수 있을까. 유독 이별이란 단어를 두려워했고, 여전히 두렵다. 진부한 말이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해준 말이 있지. 만남이 있으면 작별도 있는 법이라고. 지민아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주문과도 같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의 기억들 역시 단단해질거야.






소낭 가족들


맞아 우린 소낭에서 만났고, 언젠간 다시 소낭에서 아니 어쩌면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겠지. 

우린 모두 소낭의 가족들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을거야.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시간들을. 다시 시간이 지나면 지민은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우리 모두가 소낭의 가족이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로 남겠지.










그리고 애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 역시 불변의 진리. 

오늘도 사랑해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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