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암 투병일기 첫 번째 이야기
아빠는 장이 예민한 편이었다. 아니, 예민하다 못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였다. 수험생 시절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탔을 때 아빠는 미안하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경우가 참 많았고, 그때마다 나는 아빠에게 화를 냈다.
아빠의 장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참 많다. 오죽하면 난 아빠의 장을 가지고 글을 썼다. 아빠의 장은 뭐랄까, 참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빠의 절친과도 같았다. 아빠, 나 저 아저씨 싫어. 맨날 술 먹고 전화하잖아. 그래도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란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는 단어가 있었으니깐. 아빠는 말랐지만 강골이었고,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위가 항상 쓰리다 했지만 위 내시경 결과도 괜찮았고, 분변 검사도 괜찮았다. 정말이었다.
나는 스무 살 이후 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아빠의 장을 잊고 말았다. 이따금씩 광주에 갈 때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의 상태는 피곤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괜찮았다고 애써 믿고 싶었던 걸까. 야근이 잦아졌지만. 아빠의 표정은 점점 피곤해 보였지만. 아빠는 점점 더 예민해졌지만.
아빠는 건강검진을 하게 됐다. 회사를 하루 빼기 싫었던 아빠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어쩔 수 없잖아. 다녀와야지. 아빠는 자꾸만 투정을 부렸다. 어쩔 수 없잖아.
대장 내시경은 참 복잡한 과정이었다. 언니는 시간마다 아빠에게 약을 섞은 물을 건넸다. 아빠는 그 물을 마시고 계속해서 화장실에 갔다. 긴 밤이었다. 정말로.
아침에 본 아빠는 핼쓱해져 있었다. 잘 다녀와 아빠. 아빠는 그렇게 병원에 갔다. 건강검진은 길었다. 검사는 오후 내내 이어졌다. 검사에서 발견된 무언가로 인해 아빠는 늦게까지 병원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조금은 겁에 질려 있었다.
아빠의 위, 쓸개, 장에 각각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중 장의 문제가 가장 커 보인다고 했다. CT 검사를 했으니 심각하면 며칠 내 바로, 괜찮으면 일주일 후에 연락이 갈 것이라고 했다.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군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듣자 언니는 울었다. 나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으로 당장 오라는 간호사의 전화였다. 아빠는 지금 회사라고 했고 간호사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는 말을 했다. 아빠는 짐작했다. 심각한 문제구나. 아빠는 묻는다. 암인가요? 간호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언니는 계속해서 울었다. 정말 암일까? 아빠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계속해서'라는 부사가 동사 앞에 붙는 순간, 그 동사는 반복된다. 그 반복됨 속에서 우리는 지쳐간다. 그렇다.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그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 가족을 맴돌았고, 우리 가족은 벌써 지쳐버린 것이다.
금요일, 아빠는 회사를 가지 않고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간호사는 꼭 보호자를 데려 오라고 했다. 그 보호자는 바로 내가 되기로 한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빠는 자꾸만 초조해했다. 나는 한 가지 말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실은 알고 있었으면서. 실체가 없는 그 무언가가 우리를 집어삼킬 거라는 것을.
아빠에게 당장 오라고 했던 간호사를 만난다. 보호자가 나인 것을 밝힌다.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의 어깨는 굽어있었다. 어느새 아빠는 작아져버린 것이다. 아니다. 아빠는 천천히 작아져왔다. 당신의 젊음을 우리에게 나눔으로써.
당신의 스물셋은 어떠했을까. 감히 두려워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단어들. 당신의 스물, 스물 하나, 스물둘, 그리고 스물셋. 당신의 이십 대는 어떠한 감정들도 가득 찼을까. 어쩌다가 이렇게 불혹의 나이에 여기에 와 있는 건지.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채 지켜볼 뿐이다.
드디어 의사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단어를 듣고야 말았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나의 아빠는 50대 후반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게 됐다. 이때 3기는 림프절이 전이된 것으로 무조건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기수이다. 아빠는 깊은 탄식을 토해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 했다. 한편에 안도한 것도 있다. 조직검사가 나오기 전부터 최악의 수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결코 이것보다 더 좋은 상상은 하지 않았다. 나에게 최선은 3기였으며 최악은 4기와 말기였다. 최악을 상상하며 살아야 해. 그래야 실망하지 않으니깐.
4기는 다른 장기까지 전이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그건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얼마나 마음이 놓였던지. 의사는 광주에서 가장 가까운 화순에 있는 대학 병원을 추천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수술 이전에 일상생활은 할 수 있는 건지, 생존율은 어느 정도인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진료실을 나오고 바로 앞 소파에 쓰러지듯 앉는다. 울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간호사가 자료를 가져다준다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무슨 말이 더 나오랴.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내가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떡하겠니. 별다른 수가 없는 걸. 아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병원 복도를 돌아다닐 뿐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암 카페에 가입했다. 한시라도 더 빨리 관련 정보를 찾아야 했다.
차가 좌우로 크게 흔들린다. 핸들을 잡은 아빠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빠, 여기서 죽을 거예요? 전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요. 애써 목소리를 밝게 내 본다. 아빠는 일하고 있는 언니와 엄마에게 일단은 알리지 말자고 했다. 그들이 당장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아빠의 회사에 들려 휴직 처리를 하고 온다. 나는 계속해서 병원에 예약 전화를 건다.
아, 그때 새삼 깨닫는다. 세상엔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구나. 예약 전화 하나 하는데 이렇게나 많은 대기 인원이 있다니. 그렇게 화순에 있는 대학 병원에 간신히 예약을 넣는다. 그리고 대장암 수술로 유명한 병원들을 검색한다. 당연히도 그 병원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다시 그 병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빠가 서울에서 수술을 받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동안 수십 번의 전화를 하고 나서야 두 병원에 예약을 넣을 수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빠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서울에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걱정 말아요. 이미 다 예약을 해놓았어요. 아빠는 희미하게 웃었다. 아빠를 붙잡고 희망에 가득 찬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요즘 대장암 3기 생존율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고. 심지어 4기 생존율도 높다고. 대한민국에 대장암 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 암은 옛날 암과 달라서 치료법들이 잘 나와 있더라고.
아빠 걱정마요. 내가 반드시 아빠를 살릴 거예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언니를 마중 나갔고 언니는 길가에서 펑펑 울었다. 나이도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언니는 그렇게 길에서 울었다. 나랑 아빠는 그런 언니를 보며 웃었다. 아빠는 아직 하지도 않은 항암 때 머리가 빠질 걱정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 (나중에 차차 말하겠지만 아빠의 항암 약은 머리가 빠지는 부작용은 없었다.) 그 미용실은 아빠의 머리를 우스꽝스럽게 잘라놓았고, 그 머리를 한 채 나와 아빠와 언니는 산책을 갔다. 울음을 그친 언니는 나와 같이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참 우습게도 언니는 아빠의 소식을 듣자마자 암 카페에 가입을 했으며 나의 게시글을 발견했다고 했다. 우리는 킥킥댔고 아빠는 그런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동생이 돌아왔고, 그 아이가 했던 가장 첫 말은 아빠 그럼 대머리 돼요? 였다. 우리 집은 이런 곳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 집. 그런 집.
마지막으로 엄마가 부리나케 달려왔으며, 절대 울지 않는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녀가 좀 진정되자 나는 그들을 모아놓고 병원 예약 근황을 읊었다. 알고 보니 암 상담 예약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으며 나는 가장 어렵다던 병원 중 하나를 다음 주 월요일 예약으로 잡은 공을 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아빠를 둘러싸고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간절함과 눈물로 이루어진 마법의 주문을.
괜찮아, 괜찮을 거예요. 다 괜찮아요. 제발
* 아빠의 암 투병일기- 첫 번째 이야기
딸이 쓰는 아빠의 암 투병일기. 우리 가족은 오늘도 이겨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