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희 Oct 13. 2021

제주일기 그 시작에 대하여

제주일기 첫번째


나는 지금 제주도에 있다.


2020년 8월 말, 내가 제주도에 있을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나는 현재 제주도에 와 있다.



어느 무더운 밤 침대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룸메이트 d에게 외쳤다. 나 제주도로 갈래.

어느 때와 같이 그녀는 그래 다녀와.라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고.



서울에서의 삶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했다. '정리'라기보다는 일시정지라는 말이 더 맞겠다.

신문사, 대외활동, 그 이외에 서울에서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논문을 쓰고 있기 때문에 휴학은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비대면, 비실시간 수업을 들으며 제주도에서 지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그 여름밤의 한마디로 인해 나는 제주도로 가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처음에는 제주 살이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서 애를 먹었다. 그리하여 나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첫 번째, 바다가 가까워야 할 것. 두 번째, 스텝 방이 따로 있을 것. 세 번째, 그냥 내가 끌리는 곳.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으며 특히 세 번째 조건은 정말 부합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시행착오가 계속되자

다시 d에게 "나 제주도 갈 수 있을까?"

요 며칠간 나 자신에게 묻고 있던 의문을 털어놓고.


d는 스텝이 아니더라도 너는 어떻게든 제주도를 가게 될 거라고 말했지.



맞아, 나는 어떻게든 제주도에 갈 거야. 7월의 나는 1월에 홀로 갔던 제주도의 바다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바다가 보고 싶었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n도 똑같은 말을 했다. 너는 어떻게든 제주도를 갈 거야. 그들의 말에 조급했던 마음들이 다시 가라앉았음이 떠오른다. 그렇게 천천히 서울의 여름이 지나가다 소낭에서 연락이 왔다.



토익 스터디를 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친구의 생일 기념을 위해 식당부터 가기로 하고 지하철에서 막 내린 참이었는데 알림 설정을 해놓은 스텝 구인 글이 올라왔다. 소낭에서 다시금 스텝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글을 썼다. 소낭에 가고 싶다고, 소낭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그날 밤 소낭에서 연락이 왔다.

 반장님과 통화를 했고 반장님은 바로 같이 일해 보아요,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찰나에 d가 기숙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비행기표를 결제하게 된다.



제주도를 가기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진짜 가는 거야?"

d는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나중에는 보지도 않고 답했다. 너 가는 거야 정말로.



무언가에 대한 날짜가 정해지는 순간,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흐른다.



8월 19일. 제주도로 떠나기 하루 전, d랑 가만히 기숙사에 앉아서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았다.

한 달 전 7월 19일. 내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 내가 이렇게 제주도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나를 제주도로 이끈 것일까. 제주도로, 월정리로, 소낭으로.

d와 약속을 했다. 제주도에서 어떤 지민으로 있을지. 그리고 내가 왜 제주도로 가는지 생각하기.



제주도로 떠나게 된 계기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어이없을지도 몰라도, 중요한 사실은 어쨌든 간다는 것이다.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고, 서울을 떠나고 싶었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애들아 잘 다녀올게. 그렇게 나는 제주로 떠났다. 바다를 보러.


즉흥이 인간화된다면 그건 나일 거야. 아이들에게 장난 삼아하던 말이었고, 그 말은 정말로 현실이 돼버렸지.





소낭과의 첫 만남





소낭에 도착했다. 8월 20일부터 9월 20일. 한 달 동안 일하게 될 나의 게스트하우스.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야. 내가 이곳에서 지내게 된다는 것이. 일하게 된다는 것이.







첫날은 이제 막 도착했으니 편히 쉬기. 둘째 날은 선배 스텝분을 따라다니며 일 파악하기. 셋째 날은 본격적으로 일 배우기. 넷째 날은 진짜로 혼자 근무.



소낭은 조용하다. 동시에 여러 소리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야옹이의 하품 소리, 스텝 방 문 열리는 소리, 카운터 스텝의 키보드 딸각거리는 소리. 여러 소리들의 존재. 그 모든 소리들이 태어나는 소낭.






소낭 2호점




소낭은 월정리 해변과 10분도 채 안 걸리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낮에 내려간 월정리는 뜨거웠으며 밤의 월정리는 짠내가 올라온다.



소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로비에 있는 나무 탁자와 의자. 그곳에서 나는 기사를 쓰고, 책을 읽으며 밥을 먹고 스텝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소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해 가지는 시간과 밤. 

반장님께서 지는 해를 보고 오라고 하셔서 1호점 옆에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달과 해가 함께 떠 있는 시간.






카운터 스텝의 하루는 9시 30분에 시작된다. 밤새 보내주신 예약 확인과 문의 전화들 확인. 그날의 소낭 식구 차트 정리와 함께 청소할 객실 정리. 여러 가지 업무를 보다 보면 어느새 10시가 넘어간다.



1호점의 로비 청소와 함께 야옹이의 밥그릇, 물그릇 청소해주기. 그 밖의 조그마한 일들.



소낭의 점심은 12시 반. 놀랍게도 나는 점심을 먹고 있다. 아이들이 밥 너무 안 먹는다고 걱정하는데, 월정리에서 나는 열심히 밥을 먹고 있다. 걱정하지 마 애들아 나 건강해!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카운터 스텝이 하는 업무 중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였다. 원래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잘 쓰지 않는데, 음, 원래라는 것은 없다. 원래 나는 그래.라는 말은 그 틀 속에 나를 가둬 놓는다. 그냥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다. d가 말해줬다. 보고싶어 d.



스텝 친구가 카운터 스텝은 근무날, 카운터폰이 자신의 분신이 되야 한다고 했다. 언제 어떤 예약과 문의가 들어올지 모른다.


오후 근무는 3시부터 시작된다. 소낭의 체크인은 4시부터 10시까지인데 게스트 분들을 맞이하기 전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소낭에서는 철저한 열체크, 방역을 하고 있다.


7시 20분은 바베큐 파티가 시작되는 시간. 처음으로 파티 사회를 보는 날, 스텝 친구가 영상을 찍어줬는데 발표 처음하는 새내기 같았다.


10시 50분, 포틀럭 파티까지 끝나고 정리를 하면 소낭에서의 업무는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그렇게 월정리에는 밤이 찾아온다.






월정리의 밤은 조용하다. 어제는 월정리 해변에서 새벽까지 전화를 하다가 소낭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길을 잃었다. 아직은 월정리가 낯을 가리나 보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급박하던 시간들이 제주에서는, 월정리에서는, 소낭에서는 천천히 흘러간다. 서울의 12시와 월정리의 12시는 너무나도 다르며 놀랍게도 나는 이곳에서 알람없이 아침에 일어난다.



오후에는 수시로 아이들과 통화를 한다. 어김없이 아이들은 나를 걱정한다.






소낭 앞에서 찍은 구름 사진. 저날은 유난히도 구름이 예뻤다.



오늘은 광주에서 n이  날아오는 날.

현재 나는 n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보기 위해 태풍과 코로나를 뚫고 제주에 온다.


그리고 제주에는 지민이 있다.






이전 01화 제주살이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