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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Nov 17. 2024

희망


오랜만에 광주에 갔다. 얼굴살이 이게 뭐야. 영례씨는 3개월 만에 본 딸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6월 이후 처음이니, 그래 3개월 만이다. 20살 서울로 상경한 이후 이토록 이들을 보지 못한 적이 없다. 쏜살같은 시간의 속도에 놀랍기만 하다. 재강씨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살이 쪘다고. 암 수술 이후 60초반까지 떨어진 그의 몸무게가 다시 오르고 있다. (참고로 그의 키는 180이다.) 모두 그의 아내 덕분이다. 여전히 시끄러운 막내. 가족이 모두 모여 좋은 첫째까지. 나의 상경으로 집은 비로소 평안을 찾았다.

주말 나들이 갔을 때 발견한 펜션이 좋았나 보다. 저기 가보고 싶다. 수차례 청유를 빙자한 조름 끝에 재강씨는 섬진강 근처로의 여행을 얻어냈다. 면접 때문에 못 갈 것 같은데... 내 망설임에 영례씨는 말한다. 그냥 1박 2일 다녀오고 하면 되지. 마음 편하게. 그래. 올해 가족과 제대로 된 여행을 거의 가지 못했다. 아니 재강씨가 아팠던 그 이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 지금 놓치면 다시 오지 못할 기회임을 안다.

섬진강은 생각보다 더 좋았고. 나는 비로소 서울에서 가져온 짐들을 훌훌 털어낸다. 아무렴 어때. 살아남았잖아. 생존이라는 목표를 이뤘음에도 그리 기뻐하지 않다니. 드디어 배가 부른 게 틀림없다. 그토록 기다리던 여행에 재강씨는 어린아이처럼 신났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간다. 아빠 왜 이렇게 잘 걸어. 재활이 효과가 있었네. 병원에 다시 입원하자. 이런저런 이야기들. 아빠 사진 찍을게! 하면 재강씨는 기계적으로 브이를 들어 올린다. 아 진짜 웃겨. 흩어지는 웃음들. 

우리 집 냉장고엔 이런저런 목표가 적혀 있는데, 단연 1위는 아빠의 건강이다. 아빠의 암 판정 이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하워가 무지개별로 떠난 지도 3년이다. 숨죽여 울던 지민은 어느새 스물여섯이 됐고. 아빠는 그 이후로도 다른 병을 판정받았지만, 씩씩하게 일어섰다. 희망이란 뭘까. 사촌 오빠네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와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아이의 손을 쿡-하고 찔렀다. 손은 생각보다 더 부드러웠고... 뜨겁지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희망이 별거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 그 미지근함을 맛봤을 때 느끼는 안도. 그 안도 같은 것. 

아빠. 파킨슨 이겨낼 수 있어? 당연하지. 암도 이겨냈는데. 

지민아 하워는 지금 잘 있을까. 지금 강아지별에서 우리 지켜보고 있을 걸 

그런 안도 같은 것.

그 안도를 머금은 채 오늘도 살아간다. 


2024.09.17에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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