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있을 때는 한인마트가 한국이나 다름없어서 아쉬울 게 없겠다 싶었는데....
우리 동네에 와보니 이런..
잔뜩 쟁여올걸.. ㅠㅠ 바로 후회했지만
그럭저럭 적응하면서 넬슨에 있는 마트들을 샅샅이 살피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여러 가지 마트들이 있는데 우리나라 한살림처럼 협동조합 Kootenay co-op이 있다.
여기는 출자금을 내고 회원 가입을 하면 지역 사회에 있는 자조 모임에도 참석할 수 있고 물건에 따라 할인이 되는 혜택도 있다. 유기농이라 다른 마트보다 비싸지만 싱싱한 채소랑 유기농 우유, 계란, 고기 등 질 좋은 상품이 많다.
여기서 발견한 당면이랑 김치랑 김이 어찌나 반갑던지..
잔뜩 장을 봐와서 냉장고를 채우고.. 당면을 본 김에 난생처음 아들이 좋아하는 잡채 만들기에 도전했다.
예전 브런치의 어떤 글에서 캐나다에 사는 분이.. 집에서 삼겹살을 굽다가 화재 감지기가 요란하게 울렸다는 걸 읽었는데....
잡채 좀 만들겠다고 돼지고기를 볶다가...
고막이 얼얼할 정도의 사이렌이 울렸다..ㅠㅠ
길을 가다 보면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그릴이 하나씩 있던데....
집 안에서는 고기든 소시지든.. 구우면 안 되겠구나.. 싶다..
육안으로도 연기가 별로 없고.. 창문도 환풍기도 켠 상태였는데
순식간에 울려대는 알람으로 멘붕이 되어 정신없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ㅠㅠ 너무 당황했는데 창문이랑 문이랑 다 열어보라고 해서 열고 잠시 기다리니 꺼. 졌. 다..... 휴...
한국에서는 웬만한 연기에도 끄떡없는데..ㅠㅠ 적응이 필요할 것 같다..
아들이 한식을 이렇게 좋아했었나.... 한식당에서 조금 나온 잡채를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며 맛있게 먹어서 실컷 먹으라고 푸짐하게 만들어 줬다. 늘 잘 먹긴 했지만 캐나다에 오고 나서 뭘 만들어줘도 감격하며 먹는 아들을 보며 더 신이 나서 요리를 하게 된다. 나도 먹고 싶고..^^;
단무지랑 김을 본 김에 김밥에도 도전해 보고..
전력이 많이 필요한 가전인 압력밥솥은 차마 가져오지 못하고... 쿠쿠 캐나다 사이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왔는데 아직 주문을 못 해 가지고 있는 무쇠솥에 밥을 하고 있다.
오.. 그런데 꽤나 잘 된다. 압력밥솥만큼의 맛은 아니지만 빠른 시간에 잘 되어 편하게 밥을 지어먹고 있다.
쌀을 불려놓고.. 강불에서 끓으면 중불로 7분, 약불로 3분 뜸 들이면 완성!
이렇게 해보니 한국보다 2배는 비싼 전기밥솥보다 압력밥솥을 써보려고 아마존에 주문했다.
그걸로 다른 찜 요리도 도전해 봐야지..
그동안 에어비앤비에 있느라 해 먹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었는데 집에 오니 참 좋았다.
집이 주는 안정감이 이렇게 크구나... 싶었던 날.
한국에서는 집 근처에 애정하던 분식집에서 아무 때나 쉽게 먹을 을 수 있는 김밥이라 직접 싸본 적이 거의 없는데..
김밥이 이렇게 귀한 음식이라고 느껴질 줄이야...ㅎㅎㅎ
여기 와서 크게 느껴진다.
한국의 배달, 택배... 정말 편리하게 살았었구나 싶으면서도 나름 이렇게 저렇게 직접 해서 먹는 기쁨과 보람이 크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사 먹었을 때의 맛과 가격을 생각하면.. 직접 해 먹는 게 너무너무 뿌듯해지곤 한다.
다음 날, 1일 캠프에 빈자리가 있어서 아들이 가보기로 했다.
준비물은 점심 도시락, 간식 2~3가지, 생수 2병, 수영복, 여벌옷.
영어도 잘 못하는데 처음으로 캠프에 가보겠다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괜스레 내가 더 긴장돼서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길다...
몇몇 아이들이 모여있고, 봉사활동을 하는 걸로 보이는 형, 누나들이 있었다. 그리고 친절한 캠프 직원(?)이 걱정 말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있는 아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는데..
어린이집에 처음 보냈던 날이 생각나며 전화라도 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됐다.
다행히도 밝은 표정으로 나오는 아들. 아시안은 하나도 없고 전부 백인 아이들이었는데 영어도 잘 못하면서..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해 주는데 감사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얼 싸왔나 물어보니 샌드위치를 많이 싸왔다고 하니 나도 다음엔 샌드위치나 더 간단히 싸줘야겠다.
맑고 화창한 날씨.
현관문에서 내다보는 풍경이 그림처럼 예뻤다.
예뻐서 바라보게 되기도 하지만.... 밖에서도 다 들여다 보이는데...ㅠㅠ
여기는 현관문이 저렇게 유리로 된 집들이 참 많다. 굳이 커튼을 달 바에는 그냥 막아두지 왜 저렇게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 유리를 깨면 문을 열기도 쉽고..
그리고 여기는 도어록을 거의 사용 안 한다. 한국처럼 좋은 제품도 없고 대부분 열쇠를 사용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현관문 열쇠를 사용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열쇠를 가지고 다니려니 참.. 적응이 안 된다.
아무튼, 요즘 저 현관문 유리를 어떻게 가릴지 아마존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고민하는 중이다.
우리 집은 렌트니까 문에 마음대로 못을 박을 수 없으니... 못을 안 박고 해결할 수 있는 필름이나 벨크로 테이프로 붙이는 커튼을 고민 중이다.
아침에 커피랑 빵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예전처럼 집 앞에서 갓 구운 빵을 사기가 어렵다.
길을 지나가다 보니 가정집에 작게 베이커리라고 쓰인 곳이 있었는데 나중에 한 번 찾아가 보면 모를까...
빵 생각이 간절해서 찬장을 열어보니 사두었던 키트가 있어서 해봤는데..
오...! 쉽네!!!
다음 날은 스콘도 구워보고..
이미 가루들은 종류별로 파니 반죽만 해서 구우면 땡인데.. 이 쉬운 걸 이제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 있었으면 그냥 사 먹었을 것 같다.. 몇 걸음만 걸어 나가면 사 먹기 쉬우니깐..
여기 와서 참 부지런해진다..
넬슨은 작은 도시지만 나름 여러 종류의 마트들이 있다.
Walmart, Save on foods, Safe way, Wholesale, co-op 그 밖에도 수시로 Farmers market이 열려서 채소나 빵 등을 살 수 있고.. 골목에 가다 보니 International food라고 인도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로 보이는데 제법 크고 우리나라 소스, 어묵이나 만두 등등 아시안 코너가 다양하게 있었다.
무언가 한국 음식을 편히 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을 다양하게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요즘이다.
며칠 전 남편과 아들이랑 셋이 길을 걷는데 우리 옆에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서며
'안녕하세요!'라고 외쳐서 보니 20대로 보이는 잘 생긴 백인 남자!
우리가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강남에서 7개월간 살았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한국에 살다 보니 아시안 중에 한국인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ㅎㅎㅎ 우리가 너무나 한국인 같았나?
암튼, 몇 년 전부터 외국에 나가면 느끼지만 한국의 위상이 많이 올라간 게 느껴진다.
캐나다 작은 마을인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하면 반가워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 걸 보면.^^
동네로 와보니 김치를 구입하기 어려워 직접 만들어 먹어야겠구나 싶었는데... Wholesale에서 김치를 발견했다!
캐네디언 마트에 김치라니! 더 반갑다.
맛은 어떨지 모르지만 급할 땐, 사다 먹을 수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마트에 배추도 파니 다음엔 겉절이에 도전을 해봐야겠다.
캐나다에 와서 우리 집에 들어오기 전 3주가량을 이동하며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다 보니
무언가 마음도 붕 떠있고.. 종종 즐겨마시던 맥주 생각이 싹 사라졌었다.
마음이 안정되어서인지 남편과 맥주를 마시자며 마트에 갔다가 깜빡 잊고 집 앞까지 와버렸다....
다시 가려면 차로 가야 하는데.... 집 앞에 흔하게 있던 편의점이 너무나 그리웠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들어가려다 생각해 보니, 우리 집 바로 뒤에 맥주를 Brewing 해서 파는 수제 맥주집이 있었다!
오오... 낮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바에 사람이 가득가득... 뭐 하는 사람들일까...ㅎㅎㅎ
우리는 캔맥주로 집어서 사 왔는데 맛.있.다....!
처음에 동네에 왔을 때,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막막한 마음도 들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나씩 하나씩 직접 해나가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앞으로 할 일들도 태산이지만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성큼 또 나아가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