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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Jun 03. 2021

영어 유치원이 수능 영어와는 무관한 이유

[한국어 유치원 졸업하면, 수능 국어 1등급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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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


전통적인 입시, 전통적인 성공의 방정식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부만이 길이라던 시대, 대기업, 공사, 이름을 알만한 공기업 등에 입사하는 것만이 정도인 듯 강요하던 시기도 많이 지난 듯 보인다. 어디에서나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미래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자식에게 뻔한 길을 강요하지 말 것을, 현행 대치동식 교육이 정답이 아님을 외친다.


그런데, 현실의 부모들 변했을까? 고개를 돌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을 살펴보면, 마음으로는 미래 세대가 곧 맞게 될 변화의 바람을 느낄지언정, 실질적 행동의 영역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자율성, 창의성 다 좋고, 미래에는 그렇게 될지언정, '현재 내 아이는 우선은 시키고 본다.'가 대세로 보인다. 이 대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Q.
수능 영어 1등급이 목표입니다. 수능 잘 보려면, 어렸을 때부터 '영어 유치원'이나 '어학원'의 커리큘럼을 부지런히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엄마표 혹은 아빠표 영어'는 '입시'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데요? 또, '해외파'의 경우, '수능 영어'에 유불리가 있을까요?




영유, 어학원, 해외 경험 유무, 그리고 수능 영어


대한민국 입시에 대한 비판이나, 수능을 주축으로 한 현행 입시를 둘러싼 변화의 바람, 이러한 변화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전의 우리 부모님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자녀의 입시를 향한 부모의 욕망 우선은 논외로 하고,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부터 하려 한다.


A.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없습니다. 애초에 범주가 다른 영역들을 묶어 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왜냐? 영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이 주로 수강하는 어학원에서 초점을 맞추는 분야를 살펴보자. 어린 시절에는 주로 신체 활동을 병행한 듣고 말하기와 가벼운 읽기, 간단 생활 영어부터 시작해서, 영유나 초등학생 대상의 어학원에 따라서는, 4 영역(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을 배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법을 병행하는 학원들도 있다.


그런데, 수능 영어는,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수능 영어가 문법, 독해 위주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수능 영어에 사용되는 어휘의 종류(정제된 문어체 어휘, 비문학 서적에서 마주치는 어휘)와, 일반 청소년용 원서 혹은 회화식의 영어에서 마주치는 어휘의 결을 논하고자 한다.


BICS와 CALP


BICS와 CALP라는 용어를 언급한, 커민스 교수의 분류를 살펴보자.


짐 커민스(Jim Cummins) 교수는 영어권으로 이민해 온 아이들의 언어를 연구했다. 기본적인 영어회화는 큰 문제가 없는데, 학업 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민자의 자녀들을 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연구 결과, BICS와 CALP의 개념을 구분해 제시했으며,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인 BICS에 비해, 학습에 필요한 언어 능력인 CALP를 달성하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인지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라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BICS의 경우 목표 수준까지 달성되는 데까지의 소요 시간을 6개월에서 2년가량, CALP의 경우 최소 7년가량으로 언급했다.


BICS(Basic Interpersonal Communication Skills) :
- 기초 대인간 의사소통 능력
- 사람과 사람 간 대화를 하고,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요구되는 기본적 능력
- 구어체 맥락

CALP(Cognitive Academic Language Proficiency)
- 인지 학습 언어 능력
- 학업 성취에 필요한 언어 능력
- 높은 문해력 필요
- 언어 사용역(register)은 격식체 및 각 학문 분야와 관련된 전문적인 어휘



이 지점부터는, 커민스 교수의 분류를 바탕으로, 의견을 덧붙이겠다.


커민스 교수의 연구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였지만, 외국어로 영어를 접하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는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修學)', 즉, 학문을 닦을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CALP를 측정하는 시험에 가깝다. 반면, 흔히들 영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대상 어학원에서 실시하는 커리큘럼은 BICS에 가깝다. 수능에 사용되는 어휘는 추상적인(abstract) 개념을 다루고 있는 어휘가 대부분이며, 단순 어휘의 문제를 떠나,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일상의 메시지가 아닌, 학술적 분야(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에 관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자녀 영어 학습의 방향 설정을 어떻게 안내할 수 있을까?


우선, 목적이 분명해야겠다. 내 자녀에게 바라는 점이,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주는 것인지, 아니면 학업 능력을 키워주는 것인지를 말이다.


단, 우리 아이가 영어 스피킹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학업 성취도가 높은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학습 영어'부터 들이밀지는 않으실 거라 믿는다. BICS 능력을 바탕으로 CALP가 형성되는 것이지, BICS 없이 CALP로 가지는 못 한다. 또한, CALP 능력을 향상하는 데에도, 중요한 것은 '모국어 문해력'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제로에 수렴할 정도로 현저히 낮은 반면,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은 상당히 저하되어 있다. 올해 3월에 방영한 EBS 문해력 관련 프로그램 핫이슈였다. 프로그램 방영 이후로, 문해력에 대한 관심도 많이 올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요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어림잡아 짐작만 할 뿐일 테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요즘 아이들은 단지 '우리말 단어'를 알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 문단을 읽고, 필자의 주장을 헤아리는 능력 자체가 현저히 낮다. '필자의 의견을 파악하지 못한다'라는 말은 곧 '독해가 되지 않는다'와 동의어가 된다.


그렇다면, 필자의 주장이 아닌, 나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텍스트를 읽은 후, 해당 텍스트에 대한 타인의 의견/주장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은, 본인의 주장을 펼침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말이든, 글이든,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나의 말 혹은 나의 글에서도 동문서답, 혹은 논리적 모순이 배어 나올 수밖에 없다.




문해력 이슈는, 과연 특정 연령대에 국한된 문제일까?


2021년도 수능 최고난도 문제(34번, 정답률 42%, M사 통계 활용)를 잠깐 제시한다. 빈칸에 들어갈 적절한 말을 고르는 문제였다.


Successful integration of an educational technology is marked by that technology being regarded by users as an unobtrusive facilitator of learning, instruction, or performance. When the focus shifts from the technology being used to the educational purpose that technology serves, then that technology is becoming a comfortable and trusted element, and can be regarded as being successfully integrated. Few people give a second thought to the use of a ball-point pen although the mechanisms involved vary―some use a twist mechanism and some use a push button on top, and there are other variations as well. Personal computers have reached a similar level of familiarity for a great many users, but certainly not for all. New and emerging technologies often introduce both fascination and frustration with users. As long a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in promoting learning, instruction, or performance, then one ought not to conclude that the technology has been successfully integrated ― at least for that user.

*unobtrusive: 눈에 띄지 않는

① the user successfully achieves familiarity with the technology
② the user’s focus is on the technology itself rather than its use
③ the user continues to employ outdated educational techniques
④ the user involuntarily gets used to the misuse of the technology
⑤ the user’s preference for interaction with other users persists


영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래 해석(ebsi 제공)을 보면 다를까?


교육 기술의 성공적인 통합은 그 기술이 사용자에 의해 학습이나 교육, 또는 수행의 눈에 띄지 않는 촉진자로 여겨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용되고 있는 기술에서 기술이 이바지하는 교육적 목적으로 초점이 옮겨갈 때, 그 기술은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있으며, 성공적으로 통합되고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볼펜들 중) 어떤 것들은 돌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또 어떤 것들은 위에 달린 누름단추를 사용하며, 그리고 다른 변형된 방법들도 있을 정도로 그 구조가 다양하지만, 볼펜 사용법에 대해 재고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개인용 컴퓨터는 아주 많은 사용자들에게 (볼펜과) 비슷한 수준의 친숙함에 도달했지만, 분명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새롭고 떠오르는 기술은 흔히 사용자들에게 매력과 좌절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학습, 교육 또는 수행을 촉진하는 데 있어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는 한, 적어도 그 사용자에게는 그 기술이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답은 뒤에 제시하겠다. 텍스트를 조금 더 읽어 볼 시간을 드리고자 함이다.)


ebsi에서 제공한 해석본이 전문 번역가의 매끄러운 번역이 아니라, 기계적 해석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말이 더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고등학생 대상의 외국어 시험에 과도한 현학적 지문이 등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알고 있다. 문제풀이를 잘하는 아이로 양육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님에도, 대학 입시를 치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정답을 골라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토로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BICS를 바탕으로 한 CALP에 초점을 두고, '문해력'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논조를 이어가겠다. 기본 영어 실력이 있다는 가정하에, 모국어 문해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경우, 시험 영어에 필요한 전략을 배우고 나면, 이른바 고난도 문항도 곧잘 해결해낸다. 문제는, 모국어 문해력이 약한 학생들이다. 이 친구들은 우리말 해석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와닿지 않는 의미로 인해 답답함을 토로한다. 영어가 문제라기보다는, 국어가 문제인 학생들이 많다.


참고로, 위에 제시한 수능 문제의 정답은 번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장기적 자녀 양육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자 함이지, 수능 공부를 목적으로 이 글을 클릭하신 것은 아닐 테니, 해설은 생략하겠다.





고3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이라면, 마음을 졸이실 날 가운데 하나가 오늘이 아닐까 싶다. 입시가 인생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라도 밟아야 하는 경로가, 현행 입시의 경우 '수능'이다. 그리고 매해 6월, 9월은 고3 학생들의 이 수능에 대한 모의 평가가 있는 달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문제를 출제하고, 현 고3 학생들 내지 N수생들에게는 6월에 실시하는 6평, 9월에 실시하는 9평이 현 위치의 가늠자로 작용한다. 올해는 6월 3일 목요일이 바로 그날이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어느 정도는 부모의 손을 떠났다고 봐야 한다.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시는 편이 내 아이를 위해서도 더 좋다. 부모가 조언한다고 아이들이 듣는 시기도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이 시기는, 내 아이를 믿고,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며 응원해 주는 수밖에 없다. 렇다면, 부모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유효하게 미치는 시기는, 유아기, 초등학생 시절, 정말 많이 양보해서 더 나아가 봐야 중학생 정도일 테다. 이 시절, 우리말로 된 책부터 깊게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 유치원 출신, 대치동 어학원 빅3, 수능 영어 등급과는 모두 '무관'하다. 정(正)의 상관관계도 역(逆)의 상관관계도 없다. 입시를 무사히 치러 냈다고 해서, 인생의 경로가 '정'의 상관관계 그래프를 그리는 것은 아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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