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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Apr 21. 2021

영어 문법, 방학마다 특강비 써야 할까요?

[최고의 문법 특강은 OO이다.]


고2 하반기, 고3 시기가 되어서도 문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바로 이 범주에 속하는 그룹들, 이들의 상당수가 매 시즌, 매번 방학마다 인강, 혹은 여러 학원의 문법 특강을 수강해 온 학생들이다. 문법을 공부하지 않은 친구들이 문법을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 수업을 많이 수강해 온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아래의 <간단 한국어 문법 능력 평가>를 해 보고 싶다.

약돌OO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1. 를
2. 을
3. 가
4. 이가
5. 는

위 빈칸에 들어갈 적절한 대답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은 모두 빈칸에 들어갈 적절한 답을 알고 있다. 답은 4번. "약돌이가"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럼 다음 문제, 왜 4번인지 설명할 수 있는가? 이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먼저, 앞 뒤 따질 것 없이도, 그냥 입에 "약돌이가"가 착착 달라붙는다. '약돌를', '약돌가' '약돌는' 는 전부 한국어에 없는 표현이고, '약돌을'는 한국어로 말할 수는 있지만, 주어진 문장의 자리에는 어쩐지 부적합하다. 반면, 이보다 좀 더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도 있을 것이다. 주격 조사 이/가, 목적격 조사 을/를, 앞말이 자음으로 끝나는가 아닌가 등의 문법적 설명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말하고 접해온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다. 후자의 방식과 같은 '문법'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전자의 경우처럼 '용례'로 접근하는 방식이 훨씬 쉽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굳이 한국어 문법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어떻게 쓰는 지의 체계가 내재되어 있으니, 한글로 읽고 쓰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다.




영어 문법은 (우리말과) 다를까?


문법 교육에서의 접근 방식 중, 귀납적 접근 방식(Inductive Approach)과 연역적 접근 방식(Deductive Approach)이 있다. 예시를 통해 규칙을 도출하는 것이 전자, 규칙을 설명한 후 예시를 보고,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후자이다. 당연히 전자의 방식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언어를 언어로서 받아들이는 데에 유리하다. 영어를 상대적으로 어린 시기에 접한 학생들, 문법 위주가 아닌, 영어 듣기나 읽기 위주로 접한 학생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가령,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언어로서 접했고, 영어 학원이라는 곳을 따로 다녀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문법 용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다. 초등 6학년 무렵, 아빠가 나와 여동생을 양 옆에 앉히고, 당시 초절정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던 맨**, 성* 등의 교재를 접하게 해 주셨고, 아빠의 설명 자체는 귀에 쏙쏙 들어왔으나, 돌이켜보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나갔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도 자동사, 타동사라는 개념을 정확히 몰랐다. She disappeared.라고는 말을 하고, She disappeared it.이라고 쓰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disappear가 영어의 자동사(intransitive verb)이고, 자동사란, 동사 뒤에 명사 목적어를 직접적으로 취하지는 않는다는 식의 설명 말이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영어 성적은 어땠을까?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시험 문제가 쉽기도 했었지만, 학교 시험이나 수능 영어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왜냐? 문법 용어를 써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팝송과 영화 등을 통해 쌓아 올린, 적지는 않은 양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당시에 완벽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영어 문법에 완벽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문법의 체계가 큰 틀에서 정리되었다고 느꼈던 시기는, 따로 있다. 이 시기는 원서로 공부했던 대학 시절도 아니요, 앤드류 래드포드나 카니의 통사론(syntax) 교재들을 파고들었던 시기도 아니었다. 영작 교재를 만들기 위해 몇 달간 몰입했던 적이 있다. 만나는 대부분의 단어들을 영영사전으로 이중삼중으로 확인하고, 영한이 아닌 한영으로 영작을 하고, 첨삭을 하고, 눈 감고도 관련 예시 및 용례들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해당 어법에 대한 '백지 인출'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실수, 학생들이 자주 틀리는 문법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영어 문법을 배울 필요는 없을까?


의미 중심이냐, 형태 중심이냐를 놓고서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갈린다. 형태에만 초점을 맞추는 Focus on Forms의 접근법, 스펙트럼의 반대편에서 의미 중심의 Focus on meaning을 주창하는 축과, 세 번째 입장, Focus on Forms와 Focus on Meaning의 입장을 보완하고자 나온, 의미에 초점을 두되, 필요에 따라 형태에 초점을 맞추는 Focus on Form의 접근법이 그것이다.  

1. Focus on Forms : 과거 문법 번역식 교수법 등에서 보이는, 목표 형태(단어, 특정 문법 요소 등)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

2. Focus on Meaning : 의사소통 교수법 등에서 보이는, 의미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 우리가 모국어를 습득한 방식대로, 충분한 유의미한 언어 입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목표 언어를 터득하도록 한다.
 
3. Focus on Form : 1번 Focus on Forms 및 2번 Focus on Meaning 접근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된 문법 접근법. 의미 및 의사소통에 중점을 둔 채, 필요에 따라 의식적으로 문법 형태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식.

4. Focus on Form Instruction : 1번의 Focus on Forms와 3번의 Focus on Form을 모두 포함하는 접근법.


순수 국내파로 영어를 배웠고, 다년간 영어 학습자들을 접하면서 정립한 내 입장은 세 번째 축인 Focus on Form(의미에 초점을 맞추되, 필요에 따라 형태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에 가깝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야, 물론 2번 Focus on Meaning일 것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나고 자란 경우, 혹은 국내에서라도 다년간의 집중적인 영어 노출이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2번의 Focus on Meaning 방식으로의 언어 습득은 '이상(ideals)'으로만 그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한다. 전반적 의미 파악에는 큰 지장이 없는 듯 보이지만, 정확성(accuracy)이 크게 떨어진다든지, 문법적으로 부적절형태가 고착화(fossilized forms)되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든지 하는 문제점들이 그것이다.


누군가는 '유창성(fluency)이 중요하지, 정확성(accuracy)이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문법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아래와 같은 문장을 브런치에 올렸다면 글을 읽는 독자는 이 문장에서 어떤 인상을 받겠는가?

"어제 어의업는 일이 있어요. 엘리베이터 내리려는데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밀어."

맞춤법, 시제 등 정확성을 고려한 문장 :
"어제 어이없는/당황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고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가 저를 밀었어요."


영어를 외국어로써 배우는 입장에서, 시기의 문제일 뿐, 문법에 대한 정리는 필요하다. 일정량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였을 때, 문법적인 부분까지 정리해 준다면, 훨씬 명쾌하고, 자유자재로 문장을 쓰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를 예정인 학생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라도 한 번은 용어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쓰임새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설명하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성적에 불이익을 받고 싶은 학생은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우리가 모든 문법 요소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적 석학들이 정리해 놓은 통사론(syntax) 책들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양의 규칙과 규칙의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 중고등학교 시험에 나오는 문법은 범위가 정해져 있다. 학교 문법(school grammar)이라는 범주 하에, 실제 수능에서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어법 문제 한 문제만 출제된다. 어법을 배우는 이유는, 한 문제 어법 문제 풀기 위함이 아니라, 어법이 독해의 기초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단,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문법을 위한 문법, 시험만을 위한 문법이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방학마다, 이 선생님 저 선생님의 수업을 전전하며 수없이 문법 특강을 전전했는데도 문법이 어렵고 모르겠다는 학생들은, 문법 수업은 그만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 '듣기만' 했기 때문에, 개념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해당 문법 개념에 대해, 관련 예문을 직접 끌어올 수 없다면 모르는 지식이다. 가령, 동명사 관련 문법 설명 열 번 듣는 것보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당신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군요.)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영작 연습이나, 백지 인출 방식, 내가 직접 교수자가 되어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는 방식이야 말로 투입 대비 효율성 최고의 문법 특강이다.


규칙을 먼저 배우고 예문들을 공부하는 '연역적' 접근 방식과, 예문들을 먼저 접한 후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접근 방식 중,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나이/학년일수록, 후자의 '귀납적' 접근 방식을 추천한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입장에서 문법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초등 저학년이라면 문법 교육의 시작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번외로, 한국식 문법 용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영어 공부 초창기에 충분한 목표 언어에 대한 노출이 있었고, 문법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지만 못할 뿐,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니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단, 본인은 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쓰임에 대해 암시적, 묵시적으로나마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은, 설령 문법 용어로 설명은 못할지언정, 문제를 틀리지는 않는다. 문제를 틀리고 있다면, 의식적으로라도 형태에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일정 부분 정확성(accuracy)을 끌어올리도록 한다.


설령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도 아니요, 우리 모두가 문법론자가 될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유창성(fluency)-정확성(accuracy)의 스펙트럼에서 굳이 정확성을 포기해 가며, 듣기에 어색한 문장을 구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앞서 언급했듯이, 아래의 시제 및 맞춤법 오류 투성이의 문장이 남겨 주는 부정적인 인상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어제 어의 업는 일이 있어요. 엘리베이터 내리려는데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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