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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May 20. 2021

82년생 김지영이 엄마표 영어를 하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아키텍키즈]

욕망이라는 이름의 아키텍키즈(Architec-kids),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올해 내 아이는 만 5세(한국 나이로 7세)이며, 주변 동갑내기 또래들의 부모는 3분의 2 이상이 1980~90년대생이다. 80~90년생 엄마들은 과거 그 어느 세대보다도 고학력자들이다. 전례 없이 높은 대학 진학률의 스타트를 끊은 선두주자격 세대이기도 하고, 상당수가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영위하다가 육아를 위해 일을 중단했거나, 혹은 현재도 고군분투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세대이다. 고도성장기에 태어난 이 세대는, 1958년생 개띠 부모의 기대를 듬뿍 받으며 치열하게 공부해 왔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육아하며 자아 성찰의 과정을 거쳐 왔다. 따라서 자녀 학습에 대해서도, 육아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체계적이고, 적극적이며, 동시에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려고도 한다.


물론 82년생 김지영씨 역시, 아이의 인생에 있어서, 공부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가 내/외적 치열함을 겪으며 성장했고, 사회생활을 경험했으며, 상황적 요소에 의해 전업이든, 반업이든, 워킹맘의 유지든, 스스로의 포지션을 선택한 지영씨다. 따라서, 엄마표든, 학원표든, 내 아이의 육아에 있어서도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큰 그림을 품고, '자기계발'하듯 자녀양육 및 자녀교육에 접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내 아이만은 뒤처지게 할 수는 없다.'라는 슬로건 하에, 8090 어머니들은 각종 육아서적, 정보의 보고 인터넷과 맘카페 등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과학적/체계적으로 아이 양육의 로드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1980년대생 부모들의 '엄마표 영어', 혹은 '책육아'는 내 아이를 위한 것이 맞을까? 학원 뺑뺑이 돌리지 않겠다며, '엄마표 영어'를 선택했다면, 그것이 소위 '의식 있음'으로 일컬어질 수 있을까? '엄마표 영어'를 한다는 명목 하에, 어린 자녀들의 '영어 노출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했지만, 내 아이의 소화량 고려 없이, '하루 책 읽기 몇 권', '하루 집중듣기 및 흘려듣기의 비중 몇 분 설정' 및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 역시 어쩌면 '부모의 욕심', 혹은 '아이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화두 1. 엄마표 영어, '다독' VS. 양치기', 같은 듯 다른 뉘앙스


이어지는 본론에서는, 우리 아이 영어 노출에 있어서, '콘텐츠 다각화의 이점' 및 '이해 가능한 영어 입력'에 관한 생각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그전에, '양으로 승부하기'에 관한 생각을 적어보겠다.


스스로는, 평생 영어를 공부해 왔고, 영어와 함께해 온 사람이다. 또한 많은 영어 학습자들을 만나 왔고, 그들의 히스토리를 역으로 분석해왔다. 고등학생, 성인이 되어서 이렇게, 저렇게 영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영어를 접해 왔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관찰하고, 자료 정리를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영어 학습에 있어서 '밀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영어책 및 영어 영상, 영어 환경에 많이 노출되고, 사용해 볼수록 언어 실력은 상승한다. 그러나, 그 '밀도'에 못지않게, '제대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어책 백 권을 읽었어도, '눈 운동'에 불과했다면,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우리말을 배울 때도 그렇지 않았는가? 우리가 어렸을 때, 그림책, 한글책 백 권을 읽었더라도, 제대로 읽은 책과, 대충 책장만 넘긴 책은 그 결과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소위 '양치기'를 시키지 않는다. 다독은 바람직하며, 권장하며, 독려되어야 할 행위이지만, 양치기는 자칫 부모의 욕심, 혹은 아이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내 아이의 소화량과 상관없이, 영어 노출을 시켜 주겠다는 명목 하에, 무작정 많은 양을 들이미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가령, 하루 몇 권 읽히기, 일 년에 몇 권 읽히기와 같이, 특정 양을 정해 놓고, 아이에게 노출시켜 주는 것은, 어떤 아이에게는 바람직한 '다독'이 될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어떤 아이에게는 무의미한 '양치기'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동일 영상 반복 시청, 반복 독서를 선호하는 내 아이의 경우에는' 양치기 방식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내 아이가 '소화'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까?


그렇다면, 내 아이가 푹 빠져서 다독을 하고 있는가, 무의미한 양치기를 하고 있는가를 어떻게 구분할까?


아이와 '대화' 해 본다. 아이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유아 수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견을 말로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이 과정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아이가 영상에서 본 내용, 책에서 그림을 보고, 읽은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해서 표현할 수 있는가, 등의 반응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만 5세 딸아이의 경우, 작년 하반기부터, 다양한 영어 콘텐츠들에 소리 노출을 시켜 주고 있. 올해 유치원(병설 유치원, 유치원 과정에 영어 교육은 전혀 없음.)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루 영어 소리 노출량이 1시간 전후로, 제대로 각 잡힌 몰입식 영어 교육을 시행 중인 가정의 사례나, 영어 유치원에 다니며 하루 종일 노출되는 경우에 비한다면, 강도나 밀도에 있어서, 설렁설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에 비해서 4월이 다르고, 4월에 비해서 5월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영어라는 언어에 친숙해지고 있으며, 입에서 내뱉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가 스트레스 전혀 없이 즐기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소득이다.



화두 2. 다양한 콘텐츠 제공의 이점


장르를 넘나드는 영어 책 및 영어 영상(영미권 동요, 영화)을 아이와 공유하다 보면, 주제가 겹치는 콘텐츠들도 있고, 동일 표현이 각기 다른 콘텐츠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가령, 지난달, 우리 가족은 같이 영화 <슈렉>을 보았고, 아이와는 <코코 멜론> 노래들을 같이 따라 불렀으며, 그림책으로는 댄 샌텟의 <Are We There Yet?>을 같이 읽어 보았다. 참고로 댄 샌텟의 그림책은 그 숨겨진 속뜻까지 파악하기에는, 아직 내 아이는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 다양한 콘텐츠들 사이에, 공통으로 나오는 표현들, 공통 주제들에서는 아이가 반응을 보였다. 먼저 <코코 멜론><Are We There Yet?>을 열심히 따라 부른 아이가, 영화 <슈렉>에서 동일 표현을 접하게 되니 열광했다. "엥? Are We There Yet? 동키도 지겨운가 보네~ 하하. 나 이 부분 또 볼래. 또 볼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코코멜론>의 Are We There Yet?
<슈렉2>에 등장하는 Are We There Yet?


댄 샌탯의 그림책 <Are We there Yet?>역시 동일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작년에 구입해서 한 번 읽어는 주었으나, 당시에는 아이의 반응이 뜨뜻 미지근했었다. 속뜻을 이해하기에는 아이가 어렸던 게고, 화려한 그림체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체가, 딸에게는 다소 어려웠나 보다. 그러던 아이가 <코코 멜론>의 동요 <Are We There Yet?>과 영화 <슈렉>을 접한 후에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열광까지는 아니고, 호기심을 보인다.



화두 3. 들쭉날쭉한 난이도의 콘텐츠들 속에서도, 얻어 가는 것이 있을까?


영화를 통째로 시청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영어 수준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렵다. 영화 <슈렉>의 경우, 슈렉 1, 슈렉 2, 슈렉 3, 슈렉 포에버까지 총 4편을 조약돌 가족 구성원(남편, 나 조약돌, 만 5세 딸)이 함께 시청했는데, 우리말 더빙판으로 보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 원어로 보기도 했다. 내 아이의 영어 노출이 목적이 아니라, 가족 영화의 개념으로 선택한 영화이기에, 언어 설정을 '우리말'로 할지, '영어'로 할지는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봤다.


만 5세 아이는 우리말 더빙판으로 보여 주든, 영어 음성으로 보여주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분명히 이해도는 우리말 더빙판으로 시청할 때가 압도적 '승'일 텐데, 아이는 '이미지''상황적 요소의 결합'등으로 상당 부분을 처리하고 있는지, 영어 음성으로 시청하는 경우에도, 큰 투덜거림 없이 스토리의 흐름을 따라왔다.


반면, 만 5세 아이(ft. 영어 학습 한 적 없음, 아는 단어 별로 없음)에 비해, 영어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남편(ft. 아이엘츠 및 토플 고득점으로 교환 학생 자격 획득, 학점 우수로 6학기만에 조기 졸업)은, 영어 원어로 시청하면서, 중간중간 놓치는 내용으로 인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애매모호함에 대한 관용(Ambiguity Tolerance)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가 압도적 승자다.

아이와 성인 무엇이 다를까?


딸이 최근에 푹 빠진 유튜브 채널 <코코 멜론>에 <Are We there yet?>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아직 멀었어요?>가 되겠다. 차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아이들이 입에서 많이 나올만한 말이다. 아이는, 몇 번 재미있게 따라 부르더니, 이제는 이동할 때 차만 탔다 하면, 이 노래를 자동 재생한다. 굳이, 이 단어, 저 단어는 무슨 뜻이라는 것을 알려 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스스로, 그림과 영상, 이미지를 보고 의미를 연결 짓고 있었다.


가령, 딸아이가 영상을 시청한 후, 이런 말을 한다.

"엄마, what do you see? 는 밖에 뭐가 보이냐는 뜻이지? eagle은 독수리, deer는 사슴, cactus는 선인장, tumbleweed는 쇠똥구리지?"


'오~ 단어 뜻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 다 알고 있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다가, 마지막, "tumbleweed는 쇠똥 구리지?" 하길래, 살짝 개입을 했다. "응?? 쇠똥구리?? 쇠똥구리는 dung beetle인데?? tumbleweed는 잡초가 공 모양이 되어서 굴러다니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쇠똥구리랑 모양이 닮았네~!"

<코코멜론>에 등장하는 What do you see? 그리고 내 아이가 '쇠똥구리'라고 착각한 우측 'tumbleweed'의 이미지


귀로는 '소리'를 들으며, 눈으로 '이미지'를 보고, 'OO'를 '스스로' 연관 짓는 아이


이런 식으로, 아이는 '글자'에 앞서, '이미지'와 '상황적 요소'의 결합을 통해, 부단히 의미를 유추하려고 한다. 이미 많은 지식이 있고, 아는 단어가 많아서, 분석적으로 접근하려는 성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남편은 MBTI에서 '직관' 영역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나올 정도로, '분석 VS. 직관'에서 분석보다는 '직관'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아이와 놓고 본다면, 갑자기 분석가가 되어 버리는 거다.




나 역시 1980년대생 부모다. 무작정 밀어 붙이기 보다는, 내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부모, 소위 깨어 있는 부모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 내가 그렇게 성장했듯, 내 아이에게도, 정교한 시스템을 제공해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주조'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즐기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멈추거나, 우회할 필요도 있다.


다음, '아이 영어 노출 환경 조성'에서의 '방법론적' 부분에 대하여.


제공하는 콘텐츠는, '이해 불가능한 인풋'이 아닌, 당연히, 내 아이의 수준에 맞는 '이해 가능한 인풋(comprehensible input)'이어야 한다. 그러나, 애초에, 이해 불가능한 인풋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적 요소 및 이미지들로 인해, 아이가 귀로 들어온 소리 자극과 그 의미를 연관 지을 수 있다면, 이 아이에게 이해 가능한 인풋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설령, '이해 가능한 인풋'이라고 할지언정, 내 아이의 소화량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양을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돌아 보아야 한.


마지막으로, 영상과 그림책을 기본으로 한, 콘텐츠의 다각화연계성의 측면에서도, 반복성의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우리말 책을 읽을 때도, 연계 독서, 연계 활동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영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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