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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Apr 30. 2024

눈부신 계절이 심드렁할 때

눈부신 계절이 심드렁할 때 

나에게 봄은 벚꽃의 화사한 축제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가 화려한 철쭉이 필 때쯤엔 큰 감격 없이 지나쳐가곤 한다. 봄밤, 하얀 별무리 같은 벚꽃나무 아래를 거닐 때는 없던 사랑도 해야 할 것처럼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곤 했었다. 사월의 끝자락, 여전히 수없이 많은 꽃들로 봄 축제가 한창이건만 놀이터에 앉아서도 혼자 그림을 그릴 때도 쓴 커피만 손에 갈 뿐 도저히 마음이 달달해지지 않는다. 


조금 쉬어가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다. 꽃이 진자리에 열매가 들어앉아야 하는데 지나간 자리가 바람만 휑할 뿐이다. 그렇게 헛헛해진 마음 한 켠에 지워진 옛 친구들의 이름을 다시 되새겨보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던 인연들도 언젠가 이유 없이 소식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서로에게서 완전히 잊혀 남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그때는 모든 것이었던 추억들과 서로에 대한 이야기들도 이제 더 이상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낯설고 해진 기억으로 조금씩 삭아버린 지 오래다. 아쉬움에 여기저기 조각을 모아 겨우 누더기진 추억 한 편을 겨우 읽어볼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화려하고 선명한 계절에 나는 왜 흐릿해진 옛이야기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어느 시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낡은 기억 속에서 조차 떠오르는 이 없어 외롭고 낯선 사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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