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내가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른다고 믿는 감정선 때문에 삶이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앞섶을 여미게 되는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구를 곁에 둘 것인가,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내 둥지는 좁고 북풍한설이 부는 겨울엔 지난 이야기들을 화로에 넣어 온기를 채워야 하니까.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 어떻게 당신을 대하고 어떤 시간들을 공유했느냐에 따라 겨울, 나의 집에 채워질 따스한 불쏘시게의 양이 정해진다면 긴긴밤, 나는 얼마만큼의 추위를 녹일 수 있게 될까.
바람이 가을을 돌아 빛나는 색들을 쏟아낸다. 빨강, 노랑의 낙엽들이 휘몰아치는 계절에 휩쓸려 다시 땅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어느 만큼 걸어온 걸까, 뒤를 돌아 가늠해 본다. 여전히 제자리 인지, 아니면 조금은 이정표 대로 몇 걸음 걸어온 것인지. 낙엽 따라 오늘도 조금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