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차가운 바람을 뼈저리게 느낀 건 교복을 벗고부터다. 다 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사춘기 시절엔 아무리 여유가 있는 집이라도 교복 이외의 것들로 부를 과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교복을 벗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와 빈 시간을 관리하게 되면서 없는 사람들의 사계절은 다른 이들보다 더 고달프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대학 1학년때 자취방은 후미진 골목 끝 구멍가게 위 옥상창고를 개조한 원룸이었다. 잘 때마다 망치를 곁에 두고 위급할 때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를 몇 번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잠들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 습관적으로 잠을 깊이 못 잤던 것 같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느꼈고,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수많은 새벽을, 처음 빛이 세상을 적시던 아침을 뜬눈으로 밤을 새운 채 맞이하곤 했다.
두 번째 자취방은 도심외곽 변두리 계단 밑 쪽방이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겨울 방학 동안엔 스티로폼을 깔고 겉옷을 켜켜이 입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너무 추운 날은 문을 꼭꼭 닫고 소주를 마시고 잤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누추한 곳에 놀러 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친구들이 있었다.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스티로폼 침대에 누워 길고 긴 동지섣달 밤을 이야기를 나누며 지새웠다. 그때 그 따스함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어쩌면 따스함도 경험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경험들이 살아가는 동안 시린 계절을 맞이할 때 작은 불씨로도 가슴을 데울 수 있는 군불이 되어주는 게 아닐까. 그러니 없는 자일 수록, 마음이 가난한 자일 수록 어쩌면 꺼지지 않는 불을 안고 살아가며 다른 이들을 데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끄럽고 추운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어떤 때보다 마음이 시린 사람들이 추운 골목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의 온도를 가진 이들과 시린 계절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