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일과성 빠른 호흡)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산모는 산부인과를 자주 방문하게 된다. 병원에 가면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다리 길이를 재고 그것으로 아기의 몸무게를 추정했다. 아기의 예상 몸무게는 많이 나갔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아기와 내 골반 크기를 비교하셨다. 아기가 이렇게 계속 커지면 자연 분만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38주 이상이 되면 아기를 낳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소아과 전문의 시험일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했고 내진을 받았다.
산부인과를 다녀온 뒤 배 뭉침이 심했다. 소변볼 때 작은 핏덩이가 두어 개 보였다. 진통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3일 뒤 평소처럼 저녁 걷기 운동을 30여 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집 천장과 벽에서 물이 쏟아지는 꿈을 꿨다고 했다. 갑자기 양수가 터지고 진통을 느꼈다. 산부인과에 입원했다. 자궁경부가 3cm 정도 열리자 무통주사(경막외 마취)를 했다. 통증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가려움증이 심했다. 나 스스로가 만든 긁은 상처가 몸의 곳곳에 생겼다. 밤새 나 홀로 38도의 열감과 오한을 견뎌야 했다.
꼬박 만 하루의 진통을 겪었다. 아기의 머리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제왕절개를 권했다. 출산 전 요가와 걷기 운동을 하면서 오로지 자연분만을 생각했었다. 나에게 너무 큰 좌절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따랐다. 다행히 아기의 심박수는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전공의 과정을 통해 '저산소 허혈 뇌병증' 같은 출생 전후기 이상 사례를 많이 알고 있었다.
"응애~"
소아과 의사는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아기의 건강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 병원 창문 너머로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우리 아기는 재 태기 간 38주 5일, 몸무게 3.15kg, 키 51cm 몸으로 세상의 빛을 봤다. 척수마취를 했기 때문에 내 귀로 똑똑히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처음에 들렸던 아기 울음소리가 나중으로 갈수록 작아졌다. 아기가 울지 않는 분만실이 너무 고요하게 느껴졌다. 회복실로 옮겨지는 중 남편을 만났다.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게 흘렀다.
아기는 뱃속에서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출생 직후 늘어진 상태로 호흡을 얕고 빠르게 했다. 작은 몸에 산소포화도 및 심박수, 호흡수를 체크하는 모니터링 장치를 달았다. 코에는 산소를 주는 장치(high flow)를 연결했다. 의료진의 처치가 빨랐던 덕에 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태가 좋아졌다. 다음날이 되자 아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호흡수를 비롯한 활력징후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전형적인 '신생아 일과성 빠른 호흡' (Transient tachypnea of the newborn)이었다. 양수가 터지고 오랜 시간 진통을 겪는 동안 열이 났기 때문에 세균 감염도 의심되었다. 5일간 지켜본 아기의 혈액 및 소변검사에서 이상 소견은 없었다. 아기의 폐 사진도 시간이 흐르니 깨끗해졌다.
만약 아기를 낳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위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맡기고 싶다. 직접 겪어 보니 인위적으로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아기가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릴 것을... 언제나 그렇듯 자연스러움이 제일인 것 같다. 갓 태어난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로 입원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전공의 시절 만났던 부모들이 생각난다. 모두들 처음에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기가 출생하자마자 입원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보호자들의 여리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했다. 부족한 소통 능력이 아쉽다. 그 점이 안타까워 이렇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읽는 사람들을 달래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힘든 과정을 우리 아기는 이겨냈다.
내 옆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것 하나로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가야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