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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화 Nov 05. 2021

말 더듬는 아이

생후 40개월의 아이가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은 유치원을 다닌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엄마, 아빠빠빠빠빠, 오늘 유치원에서 말이야~"


아이가 갑자기 '아빠'라는 단어를 버벅거리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순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아이는 '아빠'라는 단어를 돌이 되기 전부터 말했으며 이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같은 반에 말을 더듬는 아이가 있나?'

'아이들과 장난치다가 배운 건가?'

'새로운 유치원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가?'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이 주변에는 내가 아는 한 말을 더듬는 사람이 없었다. 언어지연이나 말을 더듬는 증상 때문에 진료실을 찾아오는 아이의 사례를 본 적은 있으나 이것이 내 케이스가 될 줄은 몰랐다. 또래 친구들이 아이가 말을 더듬는다고 놀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아이에게 말을 더듬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은 소용없었다. 아이도 부끄러운지 말을 더듬게 될 때는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가 말을 더듬는 것은 매번 나타나지 않았다. '아빠'를 짧게 부를 때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말 더듬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분명했다. 아이는 문장을 말하다가 막히는 곳에서 자음을 반복적으로 말했다. 때로는 아이가 말을 더듬는 것이 귀에 거슬려서 아이의 말을 끊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내가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1주일이 지나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말을 더듬었다. 아이의 말 더듬는 습관을 인정해야 했다. 아이에게 천천히 말하는 법을 알려줬다. 아이에게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할 때는 소리부터 내지 말고 "음..."이라는 말을 꺼내라고 했다. 아이가 천천히 말하더라도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아이가 말할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내가 아이에게 말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도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부모로서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찾아보고 말더듬이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성장기 유아에게 나타나는 말더듬이 증상은 주로 자음이나 음절,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흔하다. 생각이 많아지는 머리와 그것을 표현하려는 말의 부조화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어른들도 가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말이 입에 맴도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아이가 말을 더듬더라도 그것을 크게 지적하거나 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쓰여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흥겹게 부르거나 짧은 문장을 말할 때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큰 소리로 말하거나 고함을 칠 때도 말을 더듬는 경우는 없었다. 친척 중에 수다쟁이처럼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는 아이는 기분이 몹시 좋아서 재잘댔다. 이럴 때는 하루 중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은 날도 생겼다. 


그리고 3개월이 흘렀다. 


'오늘은 아이가 말을 더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날이 왔다. 아이가 언제 말을 더듬었는지, 어떤 단어에서 막혔는지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말이다. 정말 신기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빨리 말해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당연히 천천히 말해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아이에게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또 있었구나를 느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참 많다. 사실 부모도 알고 있다. 기다림이 필요한 것을.... 하지만 그냥 기다려야 할지 빨리 전문의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 아이가 말 더듬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면 언어치료를 고려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부모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의 말 더듬는 증상에 대해 걱정하고 인터넷 글을 찾아보는 부모가 있다면 내 경험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아이는 오늘도 나에게 살아있는 교과서라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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