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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pr 03. 2024

2화. 오늘도 계획을 세운다.

늘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다.

"오늘은 이걸 할 거야."

"이제부터 이걸 하려고!"

말뿐인 계획들이 대부분이다.

아쉽게도 그렇다.


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늘 익숙하게 무언가를 벌리는 일을 잘하곤 했다.

이룰 수 없는 것들의 계획은 빼곡했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부족한 시간을 탓해야 할까, 무리한 계획을 탓해야 할까, 욕심이 많은 나를 탓해야 할까.

여전히 그것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하는 날이 오면 멍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라며 허공을 바라볼 때가 꽤 있다.

그러면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계획을 세우고도 왜 하지 않는 거지?

.

무기력한 나 자신에 혀를 차기도 한다.

한심스럽기도 하고, 원래 그런 인간이었을지도?라고 단념하기도 한다.


번아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게으름일지도 모르겠다.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은 늘 새롭지도 않다.


일을 그만두고 난 다음의 나의 시간은 한없이 가볍고 변동이 짙다.

한 번은 집안일에 매몰되어 있다가,

다른 것을 시도해 본다면서 몇 시간이고 날려버릴 때가 있다. 

허망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도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거면 잠이나 자고, 게으름이나 피울걸.'

이게 속마음이기도 하다.


횡설수설하면서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을 끄집어내고 나면 

집도 엉망, 마음도 엉망이다. 

횡설수설했던 나의 시간도 엉망이다.


그럴 때 있지 않나? 막 이것저것 내가 지금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난 다음의 허무함,

그 허무함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허망하다 못해 진한 분노도 함께 남는다.


젊은 패기로 세우던 계획은 행복했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에 행복함을 느꼈다면

지금은 나의 혈기가, 나의 열정이 식었다라는 세월을 알려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나에게 행복을 주었던 계획은 이제 나의 모자람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지-라고 말하는 입버릇처럼 흘리던 계획은

입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계획은 내 머리, 입속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그렇다면 나의 계획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에 수십 개씩 처리하던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루에 하나씩도 버거울 때가 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딱히 드는 생각도 없다.


오늘도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해야겠어!'라고 외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오늘.

이 못난 나를 어떻게 용서를 해줘야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무얼 해야 하는 게 좋을까?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이 어리석음을 어찌 용서해야 할까?

 

운동도 해야겠고, 공부도 해야겠고, 집안일도 해야겠고,

아이도 신나게 놀아줘야겠고, 맛있는 저녁밥과 안락한 집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을 나열하고,

해야 할 일을 어떻게 할지 풀어보고,

계획을 한다.


계획만 한다.


어지러운 머릿속 메아리를 이렇게 글로 풀어본다.

답답한 속마음을 툴툴 던져두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도 갑자기.


[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비가 오지 뭐야. 나는 비 오는 날이 너무나도 싫어. 허리도 아프고, 이리저리 쑤시는 거에, 기분이 너무 좋지 않거든. 그래서 오늘 하기로 했던 계획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더라. 다시 되짚어보면서 계획대로 하려고 했는데, 몸도 무겁고.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어. 오늘 하루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쉬지도 못하고 말이야.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그림도 그려보고, 밀린 빨래도 해보고, 집안일들도 했는데, 뭐가 다 마음에 들지도 않고 말이야. 그냥 그런 날이 있어. 뭘 해도 마음에 안 드고 무얼 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 날 말이야.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던 거 같아. 이런 날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거도 참 피곤하게 느껴지는 날이거든. 그래서 오늘도 그냥 갑자기, 낙서장처럼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싶었어. 이런 날. 만사가 귀찮아지는 날은 역시나.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대는 게 최고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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