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아름다움에 현실을 희망한다.
어둡고 깜깜한 마음의 병이라.
모든 감각을 부정하며
자신을 거부하는 나에게.
추계는 살아있음을 느끼기 딱 좋은 시기이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자연의 색으로 뒤덮인 단풍이란,
시간의 흐름을 알리고
나의 감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명료한 색이다.
추계의 묘미는 청량한 하늘 자락이 아닌
붉고 누런 선명한 빛의 단풍일 것이다.
이 또박하고 명확한 빛깔에 설렘을 안는다.
내가 이 세상을 부정할지라도,
한난 미물의 내가 거부할지라도,
이 아름다운 시기에는 나를 받아들이리.
이 풍류를 어찌 그냥 넘기겠는가.
근심, 걱정.
존재에 대한 깊은 생각은 잠시 버리고.
내 눈에 의지한다.
내 코에 의지한다.
내가 의심하는 모든 것에 의지하며 추계를 즐긴다.
이 경이로운 아름다움이 현실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추계. 가을의 시기가 오면 사람들은 설레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지면서 이 추운 듯 더운 듯 선선한 날씨를 즐기고, 붉고 노란 단풍을 아름다워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즐기기도, 귀찮아하기도 하는 시기이다. 새해부터 지금까지. 추운 겨울을 보내며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따뜻한 봄에서 새로운 생명과 더불어 새로운 활기를 돋아내고, 무더운 더위에 잠시 쉬어가는데- 그 더위가 너무 길어 힘듦이 만연했다. 그러다 도착한 가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가을인데,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아쉬움과, 봄여름을 돌아보는 참회의 시간이 되어버리면서 부족했던 나를 슬퍼하기도 하는 그런 계절이다. 하지만 4계를 통틀어 가장 운치 있고 깊은 색을 띠고 있는 가을은 내가 이 현실에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이 한해를 또 마무리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다.
시작보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무엇 하나 빠진 것은 없나, 하고 돌아보는 계절. 그 계절을 보내면서 괜한 울적함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러다가도 예쁘게 물든 단풍을 보고 있노라면, 이래서 내가 올 한 해도 열심히 살았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맑은 공기. 조금은 차갑지만 딱 견디기 좋은 청량한 공기가, 내 코를 통해, 내 폐를 통해 들어갔다 나왔을 때, 나의 갑갑했던 육체와 정신이 해방되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의 가을은 항상 반짝이기도 하고, 겨울만큼이나 어둡고 추울 때가 있다. 기복이 있는 계절이다. 하지만 힘을 내기도 하는 계절이다. 이 풍경을 보면서 어찌 힘을 내지 않으리. 내가 좀 더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내가 온전해지는 느낌.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잠시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는다면, 기분이 많이 좋아질 것이다.
추계. 가을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