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를 치고 살아도 가족이 함께한다면 행복할 거에요.

초보아빠 가이드북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골에서 스무 살에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리어카를 끌고 배추장사도 하고, 백과사전 방문판매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서른 살에 서울과 인접한 변두리에 아파트를 장만하셨다. 그리고 10년이 지나기 전에 서울 안에 2층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태어나고 얼마 안 지난 시점부터 우리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월세, 전세라는 개념을 잘 몰랐다.


어느덧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지금 서른두 살 제주도에 와서 살고 있다. 처음 신혼집은 부모님의 집안 방 한 칸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았다. 나야 아들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며느리인 아내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이 하나라서 불편했다고 한다. 그렇게 1년을 살고 서대문 홍제동에 10평 다가구주택으로 전세로 이사를 갔다.


이화여대부터 시작해서 계속 북으로 북으로 부동산을 몇 군데나 돌아다녔었는지 모르겠다. 3천만 원부터 1억까지 다양한 금액대의 집들을 많이 봤다. 어떤 집은 25평에 3천만 원밖에 안 했는데, 알고 보니 옥상을 불법 개조한 집이었다. 계약서는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 건지, 집에 가서는 무엇을 봐야 하는 건지도 잘 몰랐다. 그렇게 이사를 간 집은 세탁기는 둘 곳이 없어서 거실에 설치해야 했고, 베란다가 없어서 빨래는 방안에서 말렸어야 했다. 빛은 오전에 잠깐 들었다가 앞, 옆, 동서남북 가득한 서울의 건물들에 가려서 빛 볼일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밤에는 사방에서 가로등 불빛, 앞집 TV 불빛 등등이 들이쳤고, 아침이면 집 앞 도로에 차들이 시끄럽게 달렸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홍제동 집으로 이사 간 첫날 침대에 누워 방 천장을 보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천장이 진짜 넓다."


홍제동에서는 거북골 사랑방이라는 이웃공동체 분들을 알게 되고, 홍제천에서 자전거도 타고, 독립문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경복궁 나들이도 수시로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개미집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집들의 골목이 있었는데, 골목마다 감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홍제동에서는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다시 이사를 갔다. 바로.


제주도로.


내가 제주도를 꿈꿨던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집값이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집값이 얼마인가 검색해보았는데, 서울에서는 도저히 집을 살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그러다 호기심에 전국의 집값을 검색했었는데, 제주도의 집값은 섬이라서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싼 가격이었다. 2009년 제주도의 집값은 누구나 성실히 일하면 10년 안에 2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을만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제주도로 이사 오는 시점에는 이미 집값이 많이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서울보다는 많이 쌌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제주에서의 첫 집은 18평 신축빌라였다. 창밖으로는 바다전망이 펼쳐지고 남향이라서 집 안으로 하루 종일 햇살이 가득 찼다. 주차장도 건물 안으로 있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밤이면 하늘에 별이 가득 보였다. 어느 날 밤에는 눈이 부셔서 잠이 깼었는데 그 빛의 정체가 달빛이었다. 그날 제주도로 이사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골목길에는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날아다녔다. 종종 뱀이 지나다니기도 했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94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3층 아파트의 24평 집으로 이사 왔다. 이제 더 이상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지는 않고, 베란다에 빗물이 새고, 청소를 안 해서 바닥장판에 때가 지워지지 않는 낡은 집이다. 우리는 열심히 쓸고 닦고 고치면서 살기로 했다. 비록 2년일지라도.


결혼하고 지금까지 6년 동안 총 3번의 이사를 했다. 전세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했다. 유랑생활을 접고 싶어서 제주도에 왔것만 지금 나는 디지털노마드라는 허황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내가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자 아내가 내게 말했다.


"텐트를 치고 살아도 우리 가족이 함께한다면 행복할 거예요."


2년마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다닌다고 생각하자며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나도 긍정적이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또 2년 후에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언제쯤 나는 이 유랑생활을 마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 아주 작은 원두막 같은 집을 짓고 짐이란 짐은 다 버리고 아내와 단 둘이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 우린 항상 물건에 집착하지 말자. 소유하지 말자라는 말을 서로에게 한다. 집도 소유에 개념이라면 소유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집을 산다면 여러 가지로 얽매이게 될 테니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사 걱정 없이 평생 살 수 있는 "우리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오래된 집 셀프 인테리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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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기 전 집의 상태. 바닥에 오래된 누런 장판이 묵은 때가 져서 걸래로 닦아도 닦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판을 다시 깔기로 했고, 벽지는 그대로 두대 도톰한 단열벽지를 한번 두르기로 했다. 앞 뒤로 베란다가 있는데, 베란다에는 회색 타일 카페트를 깔고, 현관문에는 코일 카페트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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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흔적들을 지우고, 전동드릴을 빌려와서 베란다에 배수구도 뚫고, 벽지도 붙이고 하다 보니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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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날 아침. 이사는 일반이사로 했었는데. 포장이사는 100만 원 견적이 나왔고, 일반이사는 33만 원이 나와서 우리가 더 고생하고 돈을 아끼기로 했다. 일반이사는 짐을 직접 다 싸야 하는데, 우리는 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짐을 싸기 시작하니 정말 많았다. 그래도 이사 당일 오전 11시 30분 만에 이사가 다 끝난 걸 보면 보통 평범한 집들보다는 짐이 적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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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집 창밖으로는 벚꽃 한그루가 예쁘게 피어있다. 그래서 종종 일본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베란다에 타일을 까니까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햇살이 좋을 땐 의자를 가지고 나가서 일광욕을 한다. 집 크기가 커진 만큼 여유공간이 많이 생겨서 작은방은 깨끗하게 정리해서 손님방을 만들었다. 이사 오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욕조가 있다는 것이다. 난 욕심이 별로 없어서 갖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데, 굳이 하나 정하자면 욕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금방 이뤄졌다. 그런데 사실 아빠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매일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려고 해서 난감하다.


엄마, 아빠가 집 때문에 무슨 고민을 하는지. 이사 준비를 하면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와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해맑다. 그리고 그 맑은 웃음 덕분에 나도 미소 짓게 된다. 계속 이사를 가게 되든지 혹 우리 집을 사게 되든지 어찌 되었든...


아빠가 너희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항상 만들어 줄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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