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라는 농작물을 보며…
"엄마, 내년에는 방울토마토, 수박, 땅콩, 고구마, 옥수수, 애호박, 고추, 상추, 깻잎 모종들 많이 심어보고 싶어." 우리 집 둘째 아이는 유난히도 농사꾼 기질이 있다. 조개를 캐고, 밤을 줍고, 농장일을 하는 것을 즐기며 좋아라 한다. 한때, 꿈이 유튜브 하는 꼬마농부였을 정도로, 힘든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흘린 땀방울을 보며 스스로 뿌듯해하는 아이다. 주말농장을 몇 년째, 아이들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왔다.
주말농장을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자연관찰책에서만 보던 과일과 채소가 열리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하겠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림책으로 접하던 내용을 직접 체험하며 오감으로 느끼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아이들은 열매가 열리는 과정을 보고 느끼며 그것을 그리고, 만들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곤충에는 관심 없던 아이들이 달팽이나 개구리, 땅속에 자리 잡고 있던 곤충알들을 접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들이 직접 키운 건강한 작물을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초록색 야채라면 질겁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키운 다양한 채소들을 함께 요리해서, 즐거이 먹어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하지만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두 아들은 키우기는 좋아해도, 먹는 건 몇 되지 않았다. 토마토, 어린잎상추, 그 외 딸기, 고구마, 감자, 오이 이 정도가 전부였다. 먹어보라고 권유는 하지만 강요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입맛이 당길 때가 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느지막에 야채의 참맛을 아는 나처럼 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아이가 스스로 키운 작물들을 친구들과 학원선생님들께 나누어주며 느끼는 자존감이 쑥쑥 올라가는 경험들 때문이다. 아이가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채소들을 직접 분류하고, 나눠 직접 배달까지 완료하면 우리 아이는 입이 귀에 걸려서 돌아온다. 행복감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그 모습은 흡사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는 장군의 모습처럼 기세등등했고, 하루일을 마치고 양손 가득 간식꾸러미를 들고 퇴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뿌듯해 보였다.
주말 농장이라고 해서, 주말에만 가는 건 아니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봄이 되는 4월 말 5월 초쯤엔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의 텃밭을 수시로 다니며 비료를 주고, 멀칭( 검은색 비닐을 밭고랑에 씌우는 것)을 하고, 날이 더 포근해지면 아이와 고른 모종을 심고, 여름이 되어가면 열매 맺기를 기다리며 사랑과 정성으로 가꾸어준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수시로 가서, 작물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어야 한다. 물을 줄 때는 잎보다는 줄기아래, 뿌리 쪽으로 조심히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잎이 햇볕에 타지 않는다고 배웠다. 농장일을 햇수로는 5년을 넘게 했지만, 아직은 생소하기만 하고, 농장 대 선배님들이 보기엔 어수룩한 초보임은 분명하다. 배워야 할 것들을 유튜브로 배우고는 있지만, 부지런한 텃밭이웃 선배님들을 따라가기엔 갈길이 구만리다.
아이들과의 소소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텃밭은 실로,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오이를 따자마자 물로 헹궈내 한입 크게 베어 물며 쌍따봉을 날리던 아이의 해맑은 표정과, 남자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삽질로 빼내어주며 땀방울을 흘렸을 때의 잊지 못할 쾌감. 집에서 도시락을 챙겨가 힘든 일을 마치고 먹는 도시락이 이렇게 꿀맛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줬던 점과 코로나로 실내외 활동이 힘들었을 때도 농장에 나가 두 아들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아이들은 긴 호스로 물을 주면서도 깔깔거리며 즐거워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음속 추억의 방엔 켜켜이 이야깃거리들이 쌓여갔다. 아이들과 함께 봤던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행복한 기억들이 가득 자리 잡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농장일의 핵심은 두 번 말해도, 세 번 말해도 부족한 잡초 뽑기라고 할 수 있겠다.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수시로 농장에 들러 제거해주지 않으면 어마어마하게 자란다. 우리 집 텃밭처럼...
한여름 농장일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끝내놓고 농장으로 출근한다. 잡초를 뽑고, 뿌리 쪽으로 물을 주고, 텃밭을 정리한다. 틈틈이 농장에 들러, 정리한다고 해도 갈 때마다 잡초는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 있다. 뽑아도 뽑아도 며칠뒤면 같은자리에 또 자라나 있는 무서운 녀석!
이래서 잡초를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라고 하는구나!
한여름의 잡초는 며칠간 게으름을 피운다면, 어디 보란 듯 숲을 이루어 자리를 잡고 있다.
어떻게 잡초가 숲처럼 자라? 하겠지만 진짜 잡초가 밀림이 되는 경험을 여러 해 해온 나로서는, 여름에 휴가라도 다녀올라치면, 농장일이 걱정될 정도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쩌면 텃밭에 농작물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농작물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말처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은 부모가 사랑과 정성을 다했을 때와 비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건강한 농작물을 얻기 위해서 수시로 농장에 들러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주고, 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잎이나 가지를 미리 제거해 주고, 말 못 하는 식물이지만 정성을 쏟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하니 말이다.
여름철, 드러나온 발이 민망해 어쩌다 한번 가는 네일숍 사장님과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이다. 줄곧 SNS에서 소통하는 사이다 보니, 내가 아이를 키워가는 모습 또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장님이 아이들의 모습을 칭찬을 하면서도, 엄마의 내 삶은 어떻게 하냐며, “잃어버린 10년이네요”라는 말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한 것 같았다.
한 번도 내가 아이를 키웠던 그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난 그때 "아.." 하고, 어떤 말도 대꾸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낮에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난 차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분명 엄마인 나의 희생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나는 그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단단하게 잘 커주고 있고,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하고 철없었던 지난날들의 나와 아이들을 키우며 노력하고 인내하며 갈고닦아져 현명한 생각과 지혜들로 가득 찬, 지금의 나를 보았을 때,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기에 가능했던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밭설거지를 끝낸 땅은 겨우내 조금은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내년에 키울 농작물들을 유튜브로 찾아보며 노트에 정리해 놓은 둘째를 보며, 올겨울도 체력관리를 열심히 해서 내년에도 텃밭 가꾸기에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겠다 다짐해 본다.
내 아이를 건강하고 단단하게 키워나가는 것처럼
농작물도 그리 키우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