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려앉는 기분이 이런 걸까?
아이들과 방학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 부랴부랴 준비한 일본 여행이었다. 새 학년 새 학기 시작 전에 재미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설렘을 안고 준비했던 여행인지라, 우리 가족은 많이 들떠있었다. 여행 온 지 만 24시간이 안 되던 차에,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는 걸 확인하고,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야겠다 싶어 폰을 확인하는 순간, 문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여행 중에 연락해서 미안한데, 아빠가 쓰러지셨어. 의료 파업으로 수술할 의사가 없나 봐. 아들 통해 병원 좀 알아봐 줘. “
내가 문자를 몇 번 더 확인하는 사이에 남편은 부재중 전화가 왔다며, 평소에도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 장모님이 여행 중에 있는 우리에게 전화가 온 게, 뭔가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바로 전화를 걸어 통화 중이었다. 난 잠시 내 눈을 의심하는 사이, 엄마와 남편의 대화를 들으며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뭐라고?? 나 무슨 말을 보고,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분명 여행 가기 전날에도 아빠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화해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고, 사고 싶은 거 있음 다 사라고 용돈을 보내주시고, 아이들과 신나는 통화를 했었다. 여행하는 날도 수시로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한껏 들떠있던 우리 가족은 시시때때로 사진을 보내었는데, 부모님은 우리가 여행 중에 있으니 딱히 내색하지 않으셨나 보다. 그러고 보니 단톡방에 아빠는 말씀이 쭉 없으셨는데, 난 내 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며칠 전부터 아빠는 배가 살살 아프고 설사를 했다고 하는데 심각성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 나이가 먹어 몸이 예전 같지가 않구나 정도의 자기 연민정도만 느끼셨나 보다. 아빠는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데 2등이라고 하면 기분 나쁠 정도의 건강 챙기기 마니아이시다. 일 년 365일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 운동을 하시고, 끝나고는 사우나를 즐기신다. 매 주말이면 전국방방곡곡 등산을 다니시고 산이 그냥 좋은 분이라 산악회 활동을 하기보다는 혼자서 산을 즐기며 다니는걸 더 좋아하신다. 홀로 펜션을 예약해 1박을 하시고, 다음날 새벽 일출산행을 떠나시기도 하셨다. 두 명의 사위와도 여러 번 한라산 등반을 했지만 어느 정도 오르다 보면 사위들은 서서히 나가떨어지고, 초다툼을 하며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의 체력을 소유하신 나름의 산부심을 가지신 분이 우리 아빠인데, 아빠가 쓰러지셨다니 머리가 멍 해지고, 우선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옆에서 우리가 하는 통화내용과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어느새 외할아버지를 끔찍이 여기는 둘째는 할아버지 돌아가시는 거냐며,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한다.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아이를 달래며 내 마음도 함께 달래었다.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데, 이겨내실 거라고 우선 기다려보자고…
아빠는 소장괴사가 일부 진행 중이었고, 소장과 연결된 동맥에 쌓인 혈전으로 동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라 수술이 일분일초가 급하다고 했다. 그런데 의료 파업으로 전공의들은 부재이고, 병원에서는 아빠가 탄 구급차가 못 들어오게 막는 상황이란다. 일하고 있던 동생은 아빠가 다니던 병원에 연락해, 급히 그곳 응급실로 모시고 갔고 응급실에서는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대기가 떨어졌다. 현재 수술할 전공의가 없으니 기다리던지 말던지의 모르쇠와 함께…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고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을 집도해 주실 교수님이 나타나셨고, 파업으로 인해 비어있던 수술방에 아빠가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5시간의 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우리는 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티켓을 찾기 시작했다. 티켓이 있긴 한데, 어찌 왕복이용료 보다 더 비싸다. 뒷 일정도 모두 취소해야 해서, 속상한데 티켓마저도 비싸다니 이 상황에서 돈 생각하는 나 자신이 밉지만 또 얄팍한 지갑의 현실을 무시하진 못했다. 친한 지인에게 사실을 알리고 부탁해 밤 9시에 떠나는 비행기 티켓 네 장을 간신히 예약했고, 남편은 렌터카를 반납하기 위해 아침에 떠나왔던 후쿠오카로 다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조만간 다시 올 거니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하필 속상한 내 마음처럼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시리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라운드 원도 못 가고 여행이 끝났음을 못내 아쉬워하는데, 엄마로서 어제 가자고 할 때 못 가준 게 마음이 쓰였다. 때마침 신기하게도 눈앞에 라운드 원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고, 그래 이왕 시간도 붕 뜨는데 너희들 한 시간이라도 즐겨!! 라며 인심을 썼다. 아빠가 쓰러지셔서 마음은 아프지만, 또 아이들이 아쉬워하는걸 보기에도 신경이 쓰였던 지라, 바로 앞에 나타나준 라운드원이 반갑기만 했다. 아이들은 신나게 인형 뽑기를 즐겼고 난 의자에 앉아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온통 신경은 대구에 엄마와 동생에게로 향해 있었다.
아이들의 인형을 뽑고 신나 하는 표정을 보면서도, 아빠가 무사해야 할 텐데 내심 걱정을 하며, 이게 바로 인생이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와바라. 나를 흔들 수 있나 싶으면서도 흔들리는 이 나약한 마음…'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듯 희로애락이 가득 찼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신나는 한 시간을 선물해 주고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에서 대기를 했다. 9시까지는 한참이나 남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면세점도 들락날락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동생이 생각보다 빨리 아빠의 수술이 끝났다며, 연락이 왔다. 우려했던 것보다 수술이 간단히 끝났다며 교수님도 다행이라고 하셨단다.
“아, 감사합니다. ” 감사 인사가 절로 나왔다.
둘째 아이는 "할아버지가 착하셔서 수술이 잘 된 거야." 라며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랑 목욕탕을 가면 바나나 우유를 사주시는데, 할아버지는 꼭 한 개 더 사셔서 청소해 주시는 할아버지께 드린다고 한다. 아이들은 안 보는 거 같아도 할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를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었구나. 아이 덕분에 아빠의 새로운 모습 하나를 더 알게 되어 그 마저도 감사했다.
얼른 대구로 가서 아빠를 직접 내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거 같았다. 비행기가 지연되며 우리의 출발시간은 조금씩 늦어졌고, 그렇게 집으로 도착하는 시간도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5시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던 하루가 점점 멍하니 길어져만 간다. 집에 도착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짐을 다시 챙겨 대구로 향했다. 삼일절 연휴 때문인지, 방학 끝무렵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차량행렬 때문인지 일찍이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차가 막혀 가까스로 면회시간에 도착했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1번, 인당 15분이 전부였다. 중환자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는 힘없는 아빠를 보는 순간, 그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빠의 크고 거칠어진 손 마디마디를 쓰다듬으며 "많이 아팠죠"라고 물었더니, 넌 여행 중인데 어떻게 온 거냐며, 아이들이 아쉬워했을 텐데라고 운을 띄우던 아빠의 첫마디… 여행이야 또 가면 되는 것을 자신 보다 손주들 마음이 더 쓰이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어찌 딸인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와중에 입이 너무 찝찝하니 칫솔 좀 사다 달라는 아빠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간다. 위생관념이 철저하신 아빠는 누워계시면서도 입안이 신경 쓰이신 거다. 양치질을 도와드리니 그간 참았던 것이 폭발하듯 폭풍 양치질을 해내시던 아빠를 보며, '우리 아빠 금방 낫겠구나!' 했었다.
곧 일반병실로 옮기신다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병원생활을 해보지 못한 우리의 안일한 생각이었나 보다.
옆에서 아빠를 간병하는 엄마는 원래가 허약체질이셔서 아빠를 돌보기엔 힘에 겨우셨고,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날 거 같은 아빠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인지 기력이 없으셨다.
아빠! 힘을 내세요!! 제발 부디 일어나 걸어주세요.
일반 병실로 가면, 바로 걷기부터 시작하며 몸을 움직여야 배속에 차 있던 가스도 배출되고 장기가 제 자리를 잡아가는데 아빠는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하셨다. 교수님이 이러다 요양병원으로 들어갈 거냐는 호된 쓴소리에도 잠시 뿐, 나약한 모습을 내비치셨다. 그렇게 강하고 건강했던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니 용기를 드리는 편지를 써보자며 편지를 쓰고, 할아버지의 빠른 회복을 염원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들을 되새기며, 아이들도 기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다 보니 적응이 중요한 시기라, 만사 내팽개치고 달려갈 수도 없고 허약한 엄마가 몸살이라도 와 몸져누울까 봐 걱정도 되었다. 일상을 보내면서도 마음은 붕 떠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주말만 기다렸다. 아이들을 금요일에 조퇴시키고, 후다닥 대구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시어머니께 부탁드리고, 난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이제 집에 가서 사우나도 좀 하고 잠시 자신을 돌보며 쉬시고 오라고 하고 난 아빠를 간호했다. 독서를 즐겼던 아빠에게 책 대신 오디오북에 아빠가 좋아할 만한 책을 검색해 들려 드리고, 금식인 아빠에게 따뜻한 물을 수시로 떠다 드려 입안을 헹구게 도와드렸다. 딱딱하게 뭉쳐버린 코끼리 다리를 꽉꽉 주물러 드리고, 뜨거운 물로 수건을 꽉 짜서 얼굴과 몸을 닦아 드렸다. 아빠는 좋다. 좋다. 하며 연신 아기가 된 듯한 표정으로 기운 없게 늘어져 계셨다.
그 외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도와야 했다.
하루빨리 아빠가 벌떡 일어나, 튼튼했던 다리로 다시 예전처럼 전국방방곡곡을 날아다니시길… 부디 이젠 가족걱정은 넣어두시고 자신의 인생 2막을 시작하시길… 평생 가족들 친척들 챙기시느라 바쁘셨던 아빠가, 이젠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자신의 건강만 챙기시길.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했지만,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었기에 진심으로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막상 부모님이 편찮으시고, 내 나이도 먹어가다 보니 당장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와 이런저런 생각들로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새삼 건강에 대해, 인생에 대해, 노후에 대해 이런저런 끝도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도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는 게 새삼 피부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도 군데군데 희끗희끗해지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아빠가 얼른 건강을 되찾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셨던 캠핑카를 타고 시간에 쫓김 없이 자유를 만끽하시길...
이 글을 쓰며 진심으로 바라본다.
왜 모든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사랑하는 아빠! 올해는 봄꽃구경도 못 가고 3월을 병실에서만 있어야겠다며 못내 아쉬워하던 아빠를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어요. 얼른 회복하셔서 우리 꽃구경, 나들이 많이 함께 다녀요. 아빠가 곁에 있을 때 더 잘해야 하는데 소중한 걸 놓치지 말라고 하늘이 한번 더 주신기회인 줄 알고, 앞으로 제가 더 잘할게요.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아빠. 너무너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