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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Mar 15. 2024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기.

삶이라는 긴 여행을 대하는 마음가짐

 이번 주말은 또 어디를 가볼까? 내 기준에서 주말에 집에 있는 건 우선, 반칙이다. 여행을 가든 가까운 곳을 가든 우선 나가야만 하는 가족. 아닌가? 어쩌면 엄마인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까지 남자 셋이 협조를 잘해주는 편이어서 우리는 빨빨거리고 열심히 다닌다.


일정이 없는 날이 좋은 주말에는 가까운 곳으로 종종 등산을 가는데, 둘째 아기띠를 할 때도 남편과 내가 번갈아 가며 아기를 안고, 업고 등산을 하곤 했다. 등산만큼 돈도 들이지 않고 건강도 얻을 수 있으며 아이들이 해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백해무익한 여가활동은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처음으로 파주 감악산을 등산했다. 우선 "악"이 들어가는 산은 심사숙고하고 올라야 한다. 감악산은 바위가 많은 산으로 등산 초보자가 오르기엔 좀 버거운 산이긴 하다. 매번 가던 집 근처 파주 심학산, 강화도 마니산, 김포 가현산 같은 낮은 산 말고 새로운 산으로 가보자고 해서 도착한 곳이었다. 감악산의 출렁다리를 시작으로 아이들과 그곳을 건너며 아찔하게 뻗어있는 출렁다리 아래쪽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오히려 남편은 무서워하는데 아이들과 나는 재미있다. 까마득한 다리밑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흔들림이  발의 움직임에 달린 게 신기해서 우리는 살살도 걸어보고, 세게도 달려보았다.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면 범륜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이 절을 지나 등산로로 오르다 보면, 작은 돌멩이부터 큰 바위까지 "악"자가 들어가는 이름에 걸맞게 악악 소리를 내지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른다. 등산초보가족인 우리는 여러 갈래길 중에 감악능선계곡길을 선택했다. 2,100m를 천천히 올라가면 해발 675m의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사진을 찍어 지도를 익히고 저장해 대충이라도 동선을 파악했다. 처음 감악산을 올랐을 당시 두 아이의 나이는 8살 6살이었다.


발걸음만 봐도 알 수 있다. 첫째 아이의 발걸음은 매우 신나고 가벼운 반면, 둘째 아이의 발걸음은 한걸음 한걸음이 썩 즐거워뵈지 않는다. 나도 안다. 아이의 마음을... 어릴 적 주말마다 산행을 하는 아빠가 미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나고 나니 그때 열심히 따라다닐걸... 아쉬움만 가득하지만 어린 나이에 등산은 왜 이 힘든 일을 사서 하냐? 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오게 함은 너나 나나 다름이 없다. 남편과 첫째가 한 팀이었다가, 다시 남편과 둘째가 한 팀이 되기도 한다. 주거니 받거니 걷기 싫어하는 아이를 서로에게 토스하며 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한발 한발 나아갔다.

5분도 안 올라가 쉬고, 또 5분도 안 올라가 쉬어야 하는 지루한 산행이었음에도 우리의 산행은 중간에 포기란 없다. 잠시 쉬며 초콜릿을 하나 까먹고, 평상이 나오면 눕기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산을 올라갔다. 초반 능선길은 주위를 둘러봐도 나무와 돌 뿐이라 즐거운 산행은 아니었다. 정상에서의 다른 코스로의 산행이 정말 장관이라고 들었는데, 우리 가족은 정상까지 오르는데만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간 쉽지만은 않은 산행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엄두를 내지 못했다. 유독 책을 보거나, 앉아서 소근육을 발달시키는 활동들을 좋아라 했던 둘째 아이. 첫째 아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둘째 아이는 더 그러했다. 영유아 검진을 가면 대근육발달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기질적으로 몸을 쓰지 않는 아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울며 불며 올라가지 않겠다는 6살 아이를 달래, 힘들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다리가 더 튼튼해질 수 있는 기회라 여기자며 아이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을 법한 꼰대 같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결국 우리는 정상에 올랐고, 한잔에 3000원 하는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었던 소중했던 잊지 못할 추억. 아이들에게도 나와 같은 기억으로 자리하길 …

이 날 총 7시간의 산행을 했고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어느덧 주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산행하면서 발견한 하트 잎과 하트 돌. 이마저도 소소한 행복!


실로 인생은 그러하다. 힘들다고 짜증 내고 군소리하며 내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더니 결국은 해냈더라!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아이가 등산을 통해서,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가 깨닫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어 손을 잡고 끌어주고 엉덩이를 밀어주며 결국은 정상에 올랐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 그 후로 감악산을 몇 번이고 더 올랐다. 만약 첫 산행에서 우리가 포기했다면 그곳을 또 기분 좋게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해냈다는 기억이 있기에 그곳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다시 한번 더 도전하고자 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유난히 많이 걷고 힘들었던 여행일수록 지나고 나니 더 선명한 기억과 함께 이야깃거리가 흘러넘쳤다. 아이에겐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더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일상 속 수많은 여행이 그러했다. 쉽게 만들었던 작은 눈사람의 기억보다 160센티인 엄마 키만큼 컸던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이 더 선명했고, 차를 타고 편하게 다녔던 여행보다 걷고 또 걷고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려야 했던 삼만보 걷기 일정이 기억에 더 오래 자리했다. 지나고 났더니 찐한 여운을 남겼던 여행 안에는 힘듦과 고됨이 함께 자리하고 있더라! 마냥 웃음만 넘치는 여행은 그저 그런 여행 중 하나이더라!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기! 이 말은 내 인생모토이기도 하고, 우리 가족 여행규칙 NO.1이기도 하다.

삶이란 겉으로 보기엔 즐겁고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안을 비집고 들어가서 보면 그 안엔 비극이 더 많다. 그만큼 힘이 들고 괴로워 내가 이 여행을 왜 했나 싶은 여행지와 일상 속 선택들이 의외로 많았다.

아이들이 힘들어도 힘들다고 입 밖으로 꺼내지 말고, 이 힘듦이 나를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고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들어도 해내는 사람이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삶의 방향이라고 하겠다. 힘드니까 마냥 투덜대는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한발 한발 내디뎌 저 멀리 정상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 입 밖으로 힘들다고 군소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 힘듦은 두 배가 되고, 세배가 되어 내 어깨를 더 짓누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어린 시절. 내 키 절반 만했던 커다란 배낭은 힘듦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설렘으로 다가왔다. 가방의 무게까지 더해져 한발 한발 나아가기가 버거웠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고 생각하니 마냥 행복이었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기억이 내 마음속 한켠에는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의 삶이 한 끗 차이의 생각으로 조금 더 행복해지길.
마냥 달달한 음식보다 소금 한 꼬집을 넣었을 때 감칠맛이 나는 음식의 맛처럼!
삶도 그러하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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