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17. cookie)
베이킹을 좋아하는 이유
빵을 좋아한다.
흔히 구움과자라고 말하는 까눌레, 휘낭시에, 쿠키류를 좋아한다.
겉바속촉 혹은 단짠.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최고의 디저트.
순간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 하고 입 속에 가득한 달콤함으로 행복을 느낀다.
물론 부드럽고 쫄깃한 결이 느껴지는 빵도 좋아한다.
빵에서 풀풀 풍기는 향기로운 버터 냄새를 좋아한다.
좋아하다 못해 나는 직접 만들어 먹기에 이르렀다.
사실 베이킹을 시작한 건 단순한 계기였다.
첫 시작은 이 년 전 회사를 다니고 있던 무렵이었다.
멋쩍게도 나는 그 나이 먹도록 취미생활이란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취미가 뭐예요?
-없는데요.
핑계도 좋지, 나는 평일에는 출퇴근하느라 힘들다며 취미를 뒷전으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떠한 계기도 없이, 그냥 갑자기, 주말에 멀뚱히 있느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어 무작정 시작했다.
베이킹 선생님은 단연 블로그와 유튜브였다. 본격적으로 배우고자 학원을 다닌 건 아니고 말 그대로 가볍게 시작한 거였다.
다행히도 이 취미는 나와 퍽 잘 맞았다.
블로그와 유튜브의 여러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쉬운 레시피로 온갖 디저트를 만들었다.
베이킹은 참 신기하다.
계량이 정말 중요하다. 숫자가 별 것 아닌 거처럼 보여도 1, 2g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예민하다면 예민하고, 정직하다면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베이킹 첫날, 예상과는 다른 결과물을 보고는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역시 돈 주고 사 먹는 건 이유가 있는 거야.라고 말이다.
실패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계량하는 과정에서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다음번 시도는 성공이었다.
뿌듯함과 즐거움이 밀려왔다.
베이킹을 좋아하는 마지막 이유.
반죽을 만들면서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구워지는 빵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결과물을 기대하며 버터냄새를 맡고 있으면 세상 온갖 잡념은 사라지고 그 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베이킹을 찾게 되는 이유다.
개중 내가 정말 사랑하는 디저트는 쿠키다.
쿠키는 구움과자류 중에서도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지 않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을 하고 나면 크기만 조금 커질 뿐 그대로 구워진다.
내가 원하는 맛으로 그대로 나온다. 초코면 초코, 녹차면 녹차, 치즈면 치즈.
가끔 함께 넣은 견과류와 초콜릿 청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증폭된 고소함 혹은 달콤함으로 말이다.
이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인생의 방향을 잡고 원하는 바, 이루고자 하는 일 그대로 할 수만 있다면.
견과류나 청크 같은 동반자(companion)를 만나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쿠키가 구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삶의 방향성에 대해 절로 생각이 나는 거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빚을 순 있다.
살아가다 보면 본인의 선택 혹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인생의 지향점이 굳건해지거나 바뀔 수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순리다.
처음 원하는 바처럼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
살다가 또 다른 지향점을 찾아도 된다.
질타받을 이유는 없다. 부끄러워할 이유 또한 없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 보자면,
쿠키가 이미 구워졌다 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다.
각기 다른 생김새의 쿠키가 존재할 뿐이다.
오븐에 넣은 쿠키가 내가 원하는 바였지만 금세 마음이 바뀐대도, 다른 모양의 쿠키를 반죽해 다시 구우면 그만이다.
서른 살을 기점으로,
나는 또 다른 나를 위한 결정을 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지향점을 찾는 중이다.
혜성리가 부릅니다.
내가 만든 쿠키,
우리를 위해 구웠지.
내가 쿠키를 좋아하는 만큼, 당신도 쿠키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삶을 너무 무겁게 혹은 두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나의 베이킹으로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생김새의 쿠키를 반죽하고, 굽고, 즐기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