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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Feb 28. 2024

사소한 친절을 기억했다가 꺼내는 때

요새 MBTI로, MZ세대들은 16개의 성격 유형을 나눠 영문 조합으로 진단을 자주 해본다는데... MZ세대가 아닌 나로선 16개의 영문 조합이 난해하기만 하다.


내 눈엔 한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거니와, 예전에 비해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줄고 줄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세계, 그 무한한 다양성 굳이 나누고 싶지 않다. 인생에서의 소망 위태로워지니 내 살 궁리 하느라 범위가 자꾸 좁아진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보던 가락은 남아있어, 본능적으로 훑고 직감한다.


다른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의 채,

인상에서 느껴지는 온도,

말하고 쓰는 단어에서 짐작해 보는 감성과 지성,

드문드문 엿보는 일상들 속에서 한 데로 모아지는

취향. 감춘 표정 너머로도 비치는 셈 속을 가늠해 본다.


그러다 생각한다. 러는 너는 어떤 사람이려나.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비치는 사람인지

나의 언어와 눈빛의 온도는 얼마나 될는지

가 향유하는 취향은 어떤 타입으로 규정될는지.


하지만 이내, 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던 마음을 걷어차버린다. 남들이 말해주는 성격 유형 분석법 결과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 애당초 모두에게 호감 가는 사람일 수는 없으니. 적어도 남에게 피해 주는 일만, 욕먹을 짓만, 하고 살지 말자며.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서 취향을 찾고 나다움만 찾자며.


목표가 소소해졌다. 그리고 소하게 실천한다.


잘못 말하거나 더 많이 말해서 후회하지 않도록 그냥 듣기로 한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이 많으니까.


식당에서마저도 아이들과 먹고 나온 흔적들을 최소화한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다. 레스토랑 문을 열고 빛나는 아우라를 발산하며 들어와도 머물렀다 가는 뒷자리가 더러우면 그것은 빈 껍데기라는 걸.


아파트 현관문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오거든 사람이 보이지 않더라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기다본다. 애써 후다다닥 들어왔는데... 내 후다다닥 발자국 소리를 듣고 닫힘 버튼을 두두두두 눌러버렸는지. 황급히 닫혀버린 문 앞에서 받았던 불쾌함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불가피하게 이중주차할 상황이 생기더라도, 이른 아침 시각에 차에게 제자리를 찾아준다. 다른 이들의 숭고한 출근 시각, 굿모닝을 망 순 없다.


다른 이들의 쾌적한 산책을 위해, 산책길을 걷는 동안 쓰레기를 주워온다. 순순히 복을 짓고 싶어서다.


애 둘, 고사리 같은 손 네 개 잡고 걸으면서도 뒤따라오는 다른 이들을 위해 문을 잡준다.


아는 이가 아니더라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한다.  안 드는 인사에 색하고 싶지 않고 내 아이들도 누군가의 안녕을 묻는 사람이 되었음 해서다.


자주는 아니어도 택배 아저씨들을 위한 간식 꾸러미를 올려둔다. 분기별로 아랫집을 위한 과일박스를 내려놓는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성급히 조언하고 경험을 이유삼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영역을 재단하지 않고 폄하하지 않는다.


나의 즐거운 수다를 위해 다른 이의 고요함을 깨트리지 않는다.


다른 이의 시간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먼저 가서 기다린다.


저마다의 역할을 존중한다. 세상에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


비상등으로 말하는, 도로에서의 단순하고도 명료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지구 기후 변화를 생각하고,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며, 카페에서 챙겨주는 500원의 할인을 놓치고 싶지 않아 텀블러를 챙긴다.


이렇게 쓰다가 문득, 난 내 최소한의 바운더리 안에서 나만 생각하며 살자 하면서도 꽤 남들을 많이 신경 쓰고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지극히 사소하고 별거 아닌 이 노력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에게서 내가 느꼈던 친절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밤길에 전조등을 안 켜면 위험하다며 굳이 좇아와서 문을 열고 말해주던 두바이의 어느 드라이버에게서 오지랖 넓은 친절을 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에코백 안에 텀블러와 책을 넣 다니던 어느 작가님에게서 기품 있는 세련됨을 읽었며.


장황하게, 어렵게 말하지 않으면서 위트 있게, 쉽게 이야기를 전하던 명사들게서 진정한 지식인의 저력을 느고.


외국 사람들이 낯선 땅에 온 이방인에게 보여주던 친절함 나에게 또 다른 베풂의 과제를 남겼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만한 조언이, 인도인 드라이버 아나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그렇고.


내가 만난 대부분의 멋진 사람들은 애써 자신을 자세히 설명하려 하지 않았어서 그렇다.


그 와중에, 캐내려 캐묻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때론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얼마나 대단한 센스인지 알아차려서 그렇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일만으로도 얼마나 큰 빛을 내는 일인지 느껴서 그렇다.


소소한 배려와 친절들을 내 몸과 마음은 꽤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은근하게 빛이 나던 아우라와

온화하면서도 긍정의 기운이 읽히던 인상과

과하지 않는 가운데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지성과 인성의 깊이를 기억한다. 요란하지 않게 고귀하면서 세련되었던 타인의 취향을 드문드문 꺼내어본다.


우리의 삶과 영혼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선행은

곧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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