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11시 30분, 목욕탕에 가장 가기 좋은 시각. 평일의 목욕탕은 사우나를 주기적으로 다니시는 분들에게 핫플이자 사교의 장이다. 난 이 뜨거운 핫플레이스 인플루언서들의 입김을 피해 간다. 탕 사이로 오고 가는 얼음 믹스 커피를 피해서. 찐 계란의 정을 넘어서. 아침 식사 후, 디저트처럼 마시는 믹스커피일 수도 있겠고 점심 전, 빈 속에 먹는 찐 계란일 수 있을 테지만. 어찌 됐건 목욕탕의 두 가지 메인 메뉴만으로도 무수한 수다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수다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야기 속에 노출되고야 마는 울림 속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탕 인플루언서들의 패턴을 파악하자 싶었다. 목욕탕 반신욕과 사우나 회담 뒤에, 대부분 목욕탕 앞 메밀집이나 동네 인근 밥집 점심으로 코스가 이어진다는 것을 목격했다. 11시 30분 즈음 점심장소로 발걸음이 향할 시간 즈음 목욕탕에 들어선다.
나에게 목욕탕이란, 따뜻함 속에, 몸이 이완되는 시간. 하루 중 유일하게 핸드폰을 내려놓는 시간. 내 몸 구석구석 매만져보는 시간이다. 물을 한껏 받고 욕조 목욕을 1시간 이상 즐기던 나를 못마땅해하던 캐나다 홈스테이 파더와의 분쟁 이후 몸에서 나오던 때는 끊겼다. 때를 밀지 않으니, 물속에서 온전히 내 몸뚱이 하나만 남는 셈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물속에서의 시간. 여러분들은 하루 중, 아님 일주일 중 그런 시간을 얼마나 가지시는지? 요가 중 명상하는 몇 분의 시간에도 떠오르는 이 생각, 저 생각들을 잡아 끌어내리느라 힘들었었는데 목욕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한 시간이라...처음엔 너무도 힘이 들었다. 물속에서 방치되는 몸, 멈춘 생각들, 허비되는 시간들을 견딜 수 없어서 잔머리를 굴려봤다.
1. 핸드폰 방수팩을 준비해서, 탕 밖으로 팔을 뻗어 핸드폰을 해봤다.
-> 구차하다. 이렇게까지 핸드폰의 노예가 될 일인가.
2. 종이 신문을 준비해 가서, 역시나 탕 밖으로 팔을 뻗어 신문을 읽어보았다.
-> 번거롭다. 종이신문을 접고 접어보지만 물로부터 보호되지 않는다. 종이신문 펼쳐 접는 소음이 무색하다. 3. 눈을 감고 명상을 꾀한다.
-> 눈을 감으니 귀가 더 커져서 점보 코끼리 귀로, 그나마 없는 인원들 속에 오고 가는 대화들을 굳이 듣고야 만다.
몇 가지 시도들 끝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향의 나는, 물속에서 운동을 해보기로 한다. 처음, 들이쉬고 내쉬는 심호흡을 한다. 목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주기도 하고 턱을 위로 당겨 목을 뒤로 젖히는 운동을 해본다. 양 어깨를 손으로 잡고 어깨를 돌려준다. 머리를 감쌌던 수건을 다잡고 라운드숄더에 좋다는 w자 어깨 운동도 10회 × 3세트로 진행해 본다. 목과 어깨 운동을 하고 있다 보면, 옆에 눈을 감고 있던 분들이 힐끗거리며 서서히 목과 어깨운동을 시작하신다. 틀어진 골반을 바로잡는데 좋다는 나비 자세도 해보고 햄스트링을 늘리는 다리 운동, 말린 골반을 다잡는 운동을 거쳐 발목운동까지. 탕 안, 나에게 허용된 범위 안에서 가능한 맨손 운동을 하기. 느낌으론 온수풀 안에서 신체적 부담이 적어 뻣뻣한 몸의 가동범위가 조금은 넓어지는 기분이다. 실제로 수중운동은 부력에 의해 관절 압박이 적어 통증이 없고 움직임이 더 자유롭다고 한다. 물의 저항으로 근육과 조직을 균형 있게 발달시킬 수 있다는 장점까지.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 생각들을 비우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느낌도 들었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전제되는 극히 소극적인 행위이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갖는 이 시간들이 내게 몸과 마음의 큰 이완을 가져다주는 건 확실했다. 나는 찾았다!
굳이 목욕탕이 아니더라도_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도는 생각들을 꺼트려보는 시간.
몸을 이완시키며 힘을 쭉 빼보는 시간.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들로부터 귀를 막고 SNS 속 사진들로부터 눈을 감고...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슬그머니 찾아드는 비교를, 차단하는 시간.
하루 중 다만 몇 분이라도, 일주일 중 한 시간만이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나만 온전할 수 있는 시간. 쉴 새 없이 떠도는 자극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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