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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알 20만 원 타그리소로 버티는 아버지의 시간

앙상한 아버지에게 봄날이 깃들길 바라며 모으는 시간

폐암 표적 항암제 타그리소의 보험 급여 확대 적용 소식을 모두가 기다렸건만... 우리 집엔 보험 적용의 은혜가 허락되지 않았다. 기다림이 무색하게, '1차 치료제에 국한'이라는 매몰찬 말만 되돌려 받았다.


​2019년 1월, 1차 치료제로 급여 확대를 신청한 후 60개월이 넘게 걸렸다는데... 혜택을 누리지 못한 건 비단 우리 집뿐만은 아니었다.


"왜 보험적용이 안 되는 건가요. 왜 1차 치료제만 국한되는 건가요."


애먼 의사 선생님을 잡고 물었지만


"그래도 약값이 할인돼서 부담이 많이 줄었을 거예요."


무미건조한 대답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3개월 분의 약 값에 1,700만 원이 고스란히 찍혔다.

몇 개의 카드로 나 부산스러운 결제를 하면서 무안한 마음에 괜히 의사 선생님의 대답이 떠올렸다.


'할인된 게 이거라는 거야...?'


'많이 힘드시죠...', '안타깝네요...' 이왕 나오는 기계적인 답변이었더라면 대충 이런 어감 정도만 됐어도 괜찮았을 텐데. 정작 약값 할인과는 상관도 없는 사람이 애꿎은 답변 하나로 원망을 듣는 꼴이다.


어찌 됐건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마저 1,700만 원어치의 약들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 몇 개를 꼭 안고 왔다. 손에 쥔 그 어떤 물건이든, 잊고 그냥 나와 다시 찾으러 가는 일이 빈번한 내가 못 미더웠던 탓이다. 그날 저녁, 비닐봉지 손잡이 덕에 팔목엔 한참 동안 빨간 줄이 선명했다.



하루 1알 20만 원짜리 약 이외에 여러 약들로 버티는 아버지의 일상은 그렇게 견고하지 않다. 24시간 중 20시간은 누워계시는 듯, 활동적이지 않다.


저렇게 잠만 자다가 아빠가 영원한 잠에 빠져드는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가. 아빠의 인권에 무색하게, 홈캠을 설치했다가.


하지만 3개월씩 1,700만 원 이상의 약값을 꽤 오래 지불하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이 약에마저 가성비를 계산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카드 결제와 동시에 공중으로 1,700만 원의 돈을 몇 달 주기적으로 흩뿌린다고 하더라도 그저 하루하루에 넙죽 감사할 일이었지만. 비어 가는 통장 잔고에 한숨이 새어드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는 나는, 너무도 이기적인 걸까. 효녀가 아닌 걸까.

여태 애지중지 키워준 은혜는 생각지도 않고, 배은망덕한 걸까.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 Henry ward Beecher

여러 개의 알약들을 받아 든 앙상한 손이 덜덜 떨리는 가운데, 어렵사리 약들을 삼키는 아버지를 보며

날마다 여러 감정들이 몰아쳤다.


어느 날은 마냥 안쓰러움이,

어느 날은 왜 이런 몹쓸 병이 담배도 안 피웠던 우리 아빠에게 찾아들었을까 억울함이,

어느 날은 담배 대신 술을 많이 드셔서 그런 건가_ 원망이,

어느 날은 그렇담 나에겐 새로운 가족력이 생긴 건가,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털어 넣는 약 앞에 긍정적인 생각은 단 한 자락도 없었다. 이 혁신의 알약으로 꿈꿀 수 있는 희망찬 미래 따위 없었다.


하지만 그저 버티고 견디기에 너무나도 값비싸게 얻는 시간 앞에, 유익함을 찾는 건 애초에 무의미했다.


1알 20만 원 타그리소와 그 외의 알약들로 버티는 아버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끌어모아야 할 뿐.



어느 날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피꼬막으로 잠시나마 쫄깃한 식감의 시간을,

어느 날은 선홍빛이 선명한 생고기만큼이나

알찬 색감의 하루를,

어느 날은 김이 모락한 도가니탕으로,

속이라도 따듯한 날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무채색의 날들에 여러 맛들을 입혔다.


누워있는 시간 동안 얼마 남아있지 않는 근육들이 다 새어나가 버리지 않도록 자연 속에서 걷게 한다.


눈길의 낙상을 걱정해 꽁꽁 싸메두다시피했던 겨울이 가고, 새 싹이 푸릇하게 빼꼼한 봄이 오면

아버지기력도 활기를 돌런지.



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던 아버지에게 이제는 내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예상외로 아버지를 위한 시간들을 값지게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걸 매일 깨닫는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미안함과 애처로움 사이를 오가며 반성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막 학교에 입학한 쌍둥이들이 불쑥불쑥 내미는 손들도,

당신은 전업주부, 큰 며느리, 장녀이지 않느냐며, 집안 대소사 관련, 모든 일들을 건네는 손들도,

힘 빠진 아버지의 앙상한 손들도,

동시에 날 향하는 때가 많아 간간히 가슴이 벅차오르는 탓이다. 


유리병 안에 엄마로서 쌍둥이들에게 쏟는 사랑으로 얻는 큰 구슬들을 몇 알 담아 넣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다하는 진심으로 뽑는 구슬들을 몇 알 넣고... 시댁에서 며느리로 받는 구슬들을 또 몇 알 넣고... 그러다 아빠에게 쏟는 시간과 정성으로 받은 작은 모래알들은 한꺼번에 무심히 쓸어 담아 털어 넣는 격인 게다.


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정적이지만 빠르게 흐를 아버지의 시간이 점점 더 희망의 색들로 채워지길 바라며. 온기와 활기를 되찾길 바라며. 긴 겨울이 어서 가고 아버지의 봄이 찾아들길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은 바로 우리 가족이다.
H.G. 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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