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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Mar 09. 2024

날씨 따라, 계절 따라, 맛있게 채우는 시간

일본영화 앙, 단팥 인생이야기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유일하게 마음 한편 아쉬움이 남던 건, 곧 붕어빵 파는 노점상 없어질 거라는 사실이었다.


"저는 까만색이요."

(팥이란 말이다...)

"저는 하얀색 주세요."

(슈크림이란 말이다...)


고작 붕어빵 하나씩, 어묵 하나씩 먹는 7세 동전 주머니 살림이지만 아이들은 하루하루 바삭하게 갓 구워진 붕어빵을 사고 기분 낸다. 작은 입 가득 꽉 채워, 어묵 오물오물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래, 붕어빵 가게 문 열 때, 많이 즐겨라"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는데


"엄마, 왜 붕어빵 가게 문 안 열어?"

"왜 붕어빵은 겨울에만 만날 수 있어?"


벌써부터 붕어빵과 이별할 생각에, 아쉬운 모양인지 눈이 동그래져서 질문을 쏟아냈다.


(글쎄... 날이 추울 때, 호호 불어서 먹으라고 그러나...)

애매하게 대답했다.



문득, '단팥에 담긴 인생 이야기', 영화 '앙'에서의 아담한 도리야키 가게 생각이 났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아래_

반죽을 덜어 노릇노릇하게 작은 원 모양빵을 굽고,

그 안에 앙, 소를 넣어

도리야끼를 만드는 구멍가게.


다섯 명의 사람들이 앉기에도 비좁을

그 공간에,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나선

만 76세의 할머니, 도쿠에가 찾아온다.

300엔의 시급만 주어도 된다며, 통사정을 하던 할머니를 도리야키 가게 사장, 센타로는 도리야키를 하나 쥐어주며 돌려보낸다.


하지만 결국 몇 평 남짓 좁은 공간에서 젊은 사장과 90대 할머니 아르바이트 생과의 도리야끼 장사가 시작된다.


센병 환자로, 과거 격리대상이었던 만 76세 할머니와

출소한 후 막대하게 진 빚 때문에 그냥저냥 장사를 이어나가던 30대 사장의 협업.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

어떠한 바람들 속에서 팥이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 이야기들을 듣는 일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어.

(...)

사장님만의 특별한 도리야키를 만들어낼 거라 믿어.


하굣길, 아이들과 한달음에 달려가, 먹는 붕어빵에서  팥의 여정을 숭고하게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일테다.


하지만 7세 일상에서 하루 끝자락에 먹는 붕어빵 루틴은 그날의 즐거운 이벤트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겨울이 가기 전, 한껏 누려야 할 계절 이벤트.


나에게 음식을 사 먹는 일도, 음식을 요리하는 일도,  번거롭고 수고로운 일이라기보다 즐거운 이벤트일 때가 많다. 


부침가루, 튀김가루 반반 넣어 해물을 송송 썰어 넣고 바삭하게 부친 파전에,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비 오는 날.


육수에 된장을 약간 풀어 도다리에, 쑥 넣고 도다리 쑥국을 먹는 봄날.


갓 삶은 국수에, 아삭아삭 채 썬 오이와 약간 신 열무김치, 비빔장을 넣고 비비적해 먹는 여름의 열무 국수.


알이 꽉 찬 꽃게에, 무를 성근성근 썰어 넣고 된장, 고춧가루 풀어 푹 지져먹는 가을의 꽃게 된장 지짐.


굳이 제철 방어회 하나만 보고 제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따뜻한 방구석에서 김이 모락한 고구마 한 입, 적당히 익은 시원한 물김치 한 입 먹는, 겨울날.


날씨 따라, 계절 따라먹는 음식만으로도 어느덧 맑은 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제철의 재료로, 갓 만든 음식을 먹는 일상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365일, 풍성한 식감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맛있게 챙겨 먹는 습관이 무료한 삶에 색다른 풍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먹으며 위안을 얻고 요리하며 기분을 내는 것처럼

내 아이들도 비 오는 날이든, 맑은 날이든 맛있게 꾸려나가길 바란다. 날마다 맛있게 요리하고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들을 그때그때 즐겨보길 바란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과 날마다 열심히 먹고 아이들을 위해 요리한다. 실은 나를 위한 음식들이다.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FM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로시니의 '도둑 까치' 서곡을 따라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기에 더없이 좋은 음악이었다.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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