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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Mar 13. 2024

'삼성전자 통번역 계약직'에서 건져 올린 시간.

나의 열렬한 응원자가 되는 시간

계약직(契約職)은 일정한 근로 기간 내에만 근로하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이다. 정해진 기한이 명시된 계약직 근로계약서에 도장 찍고 시작하는, 냉정하지만 깔끔한 노동의 형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통번역 업무를 하는 동안 나는 '혹시나'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계약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나, 만약에, 행여나...)


점. 점. 점.으로 끝나는, 희박한 가능성의 단어들을 늘 머리 위에 동동 띄워놓고 다녔다.


막연한 희망에 목메고, 계약직이라는 색깔 다른 목줄에 대한 자격지심을 양 어깨에 한가득 얹고.


출근 지문을 찍기 전, 아침 거리를 준비해 오던 구내식당에서부터,

분주하게 오가는 '진짜' 삼성전자 직원들을 힐끗거리던 공장과 사무실에서,

(똑같은 컴퓨터와 책상이었지만) '진짜' 자기 자리에 앉아 일하던 정직원들 사이를 지나 화장실을 가는 통로에서,

점심시간.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약직 직원들만을 찾아 삼삼오오 모이던 카페테리아에서,

오후 세시, 종이 울리면 저마다 커피를 손에 들고 산책을 하던 회색빛 공장 주변에서,

검색대를 거쳐, 카메라에 붙여놨던 보안스티커를 떼고 문을 나서던 순간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진짜' 정직원과 '가짜' 계약직을 구분하고 있었다.


실제론 아무도 관심 없었을 테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일 뿐.


계약직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곤 몽글몽글 실체 없는 단어를 부풀리고 또 부풀린 건 나뿐이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안되려나...?" 은밀히 소망했다.


(저 울타리 안에 속하게 해 주세요. 진짜 목줄을 걸고 일하게 해 주세요.)



열렬히 바라던 와중에, 오후 3시의 산책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요." 어느 정직원의 고백을 들었다.


강원도가 고향이던 조용하고 착한 정직원은 삼성전자 선임 연구원이라는 빛나는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도 우울한 빛이 감돌던, '이상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 기준엔 그랬다.


(제가 이 회사를 다니는 선임 연구원이라면, 전 날아다닐 것만 같아요! 제 하루하루가 영롱하게 빛날 것만 같아요!!! 그 회사, 제가 다니고 싶어요!!!!!')


회사에서의 일이 즐겁지 않고, 타지에서의 생활이 외롭다했다. 더 이상 이 조직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했다.


연구원의 한탄은 내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 못난 사람아. 배부른 소리는 그만하시고 이곳에서의 즐거움을 찾으세요.') 내 마음이 말했다.


"그래도, 힘내서 다녀봐요.... 전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잖아요..." 내 입이 말했다.


내 신세 한탄을 실어, 점. 점. 점으로 끝나는 매가리 없는 문장으로 건넨 위로.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 나의 고문님 Mr. Johann은

홀가분하게 삼성전자를 나섰다. 늘 하던 것처럼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중지를 펴 들고 시크하게 마지막 인사를 날렸다.


나는 내 아쉬움이 들킬까 봐, 행여 나를 불쌍히 여길까 봐,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선임 연구원도 반짝반짝 빛나던 그의 책상을 비웠다.



전업주부의 시간을 걷다 보니, 계약직으로 일하던 그 챕터마저도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던가.. 그립다.


이른 아침, 출근 지문을 찍으면서 경쾌한 기계음을 듣던 순간. 아이들 틈바구니가 아닌 공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종종걸음으로 다채로운 하루를 보내던 그때. 진짜 직원은 아니었을지언정 삼성전자라는 울타리 안에 잠시 속함이 살짝 자랑스러웠던 시간들.


이제 다시는 겪지 못할 그 챕터를 왜 나는 오롯이 즐기지 못했던가. 왜 미리 걱정하고 한계를 규정지었던가. 다가오는 만료 시점을 세 알리며 스트레스로만 채워 넣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시간들을 가끔 그리워한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자기 자신이 전부여서 '나는 모든 재산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유익한 행복일 것이다.


​따라서 '행복이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자주 되뇔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에서 온갖 어려움과 경쟁, 위험과 불쾌한 일들을 피할 수 없는데,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말고 즐기도록 하라.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괴로워하는 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고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쉽게 한탄하지 않는다.


- 쇼펜하우어,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진짜'와 '가짜' 금을 긋고 그 사이를 오가며 한탄하던 나는 고상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것. 어떤 자리에, 어느 위치에 있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의 열렬한 응원자가 될 것.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적어도 현재 나의 챕터를  예전의 나보다 더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가끔 지나간 시간을 들춰보더라도,  그리워하더라도. 그 속에서 좀 더 나은 나로 살기 위한 시간을 건져 올릴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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