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를 좀처럼 버리지 못하던 사람이다. 요리보다 정리가 더 어려운 사람이다. 좁디좁은
인간관계에서마저 마음이 시릴 때 주섬주섬 정리를 시작한다.
발버둥 쳐도 빠져나오지 못할, 숙명의 굴레인지라 대신 뭐라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 다난한 마음을, 분류해 보고 더 이상 신경 안 써도 될 고민거리들을 정리해 본다.
<감정 분리수거장>
1. 비난
상대방의 기대에 못 미쳐, 받아 들게 된 비난들은 버린다.
거침없이 버리지만 음식쓰레기통 곳곳에 잔여물 남듯, 죄책감이라는 과제를 남길지라도.
2. 기대와 추측
동의한 적 없는 기대 설정과, 비단 그럴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도 돌려보낸다.
가져가든 말든, 일단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건 아니므로 내 몫이 아닌 것이다
3. 조언
응당 해야 하는 거라고 일러주는 인생의 조언은 내게 유익한 것만 받아 들고 일부는 버린다.
값진 조언도, 내 실정에 맞지 않으면 오지랖일 뿐이고
응당 해야 하는 '나의 의무'도 남이 설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지 않더라도, 혼자 쓰레기장 안에서 분풀이할 뿐 반박은커녕,
'네네' 힘없이 대답할 때가 많다.
어쭙잖은 대답들로 뒷걸음쳤던 때를 속상해하며 뒤늦게 분통을 터트릴 때가 많다.
자신의 조언이 정답이라도 되는 듯 너무 훅 들어오니 멘탈이 털렸던 탓이다.
그러나, 섣부른 반발이 가져올 후폭풍도 감안해야 했던 거라며 스스로 마음을 다져본다.
숙명의 관계에서 약자의 굴레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한다.
4. 노파심과 동정
진심 어린 걱정과 괜한 노파심, 위장된 동정을 구분하여 버린다.
위하는 마음은 감사히 받아들인다.
없던 불안으로까지 번지게 만드는 상대의 노파심은 과감하게 제낀다.
겉으론 걱정하며 속으론 자신에게 없는 나의 불행을 다행이라 여기는 알량함과 동정은
캔맥주 부피줄이듯 지근지근 밟아버린다.
적당히 분류하고 야무지게 버리고 나왔지만 어쩐지 개운하지 않은 건,
타인에게 받아 들어 버거운 감정들이
가끔 또 다른 폭력으로 느껴져서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훅 치고 들어와 어퍼컷을 날리고선,
정작 '내가 너무 심했다, 내가 선을 넘었나'_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상대의 공격은
나만 감내해야 하는 아픔일 때가 많다.
어제도 반박하지 못했고 오늘도 무시하지 못했는데
내일을 넘어서 상당 기간 마음의 생채기를 남기고 간 공격.
손을 탈탈 털고 분리수거장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재활용도 안 되는 것들을, 뭐 하러 분리해서 버렸담.
받아 드는 즉시,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채 폐기했어야 할 것을.
빙빙 돌려서 말하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웃으며 날려 보냈어야 할 것을.
제 몫은 아닙니다만, 반사해야 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