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새벽 오케스트라, 토요일의 라이딩

by 김여희

음악을 좋아하지만 듣는 것만 가능하고 연주는 불가능하다. 피아노를 안 배운 것은 아니었다. 바이엘, 하농 그리고 체르니 30번을 넘어 모차르트 초반부에 이르기까지 쳤던 10대 때의 피아노는 40대에 이르러 모두 증발해 버렸다. 풍족하지 않던 살림에, 엄마가 피아노 학원에 투자해 준 것치곤 형편없는 가성비다. 멋들어지게 칠 수 있는 피아노 곡이 한 곡도 없다니. 손가락이 기억하는 음들이 하나도 없다니. 엄마한테 미안할 일이지만 자주 듣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마음 따로, 재능 따로.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최소한 좋은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삼고 있다. 일상에서 자주 좋은 곡을 꺼내어 듣고 거기에서 위안을 삼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심비 좋은 일인가. 내 손 끝에서 떠나간 음악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거라며. 그런데 음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아이들은 평일엔 피아노 학원에 가고 일주일에 몇 번 드럼과 바이올린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마다 딸은 오케스트라 활동 연습에 참여한다. 아이의 지보다 엄마의 욕심이 앞섰던 발걸음이었음을 고백한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통해 취지를 듣고선 '꼭 이 수업에 아이가 참여하였으면 좋겠다' 확신이 섰다. 내게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내가 한번 도전해 보면 좋으련만. 나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업을 허락해 줄 경제적 지원 등은 내 현실에 없어서. '유소년, 청소년'이라는 자격 요건에서부터 해당사항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해 준 아이 하나만 데리고 매주 수업엘 간다. 가끔 늦잠이라도 자고 싶어지는 게으름이 돋는 토요일. 주말치곤 이른 아침을 먹고 바이올린 수업을 향해 가는 길.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서는 발걸음일지 모르지만 점차 아이의 열정이 피어나가길 바라면서 오래 전에 꾹 눌러두었던 내 마음을 대신 몽글몽글 피워낸다.


이름도 예쁜 새벽 오케스트라. 아무도 깨지 않는 잠잠한 새벽녁에 동이 트길 기다리며 낮게 틀어놓은 음악소리란. 고요 속에서 사부작사부작 넘기는 책장 소리란. 적 속에서 또렷하게 만나는 활자와 음악만큼 내 마음을 건드리고 감싸주는 것들이 또 있을까. 하루 중 어느 시간대보다도 작은 떨림으로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시간. 세상의 소리가 멈춘 틈 사이로 미세한 자극이 마음에 큰 파동을 주는 시간. 바글바글 내린 커피 한 잔이 더해지면 한 커피 향이 어느 때보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 같은 그런 시간이다. 내게 새벽은.


하지만 새벽 오케스트라 앞에 5.18이라는 숫자들이 더 붙었다. 5.18이라는 단어가 생경할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손 끝으로 5.18을 기리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은 오케스트라 활동. 의미도 모르고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크나큰 숫자를 앞세운건 아닌지 싶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그날에만 기리는 것보단 무겁지 않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픈 숫자가 지니는 무게를 억지로 쥐어주기보다 음악으로, 그 해의 5월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지고 일상의 곁에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오케스트라는 과거 5.18 시민군 출신이면서, 광주 시청 공무원이기도 했던,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도 수업에 함께 만난 적 있었던 단장님이 창단하셨다. 다도 수업 때 시 쓰기와 차를 좋아하시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던 분을 오케스트라 오리엔테이션 때 다시 만나니 다도 수업을 건너, 오케스트라에서 우연히 이어진 인연이 신기하기도 하고 차 수업 때는 못 느꼈던 경외심이 일기도 했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때 신군부의 강제 진압에 맞서 싸우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는 단장님. 공직에서 은퇴한 후 악기를 기부해 주시는 어느 대표님과 더불어 창단을 했다고 하셨다. 민주화 시위에 참여해 시민군으로 5월 27일 '새벽'을 맞이했던 그 기억을 담아 창단한 '5.18 새벽 오케스트라'. 매주 토요일 오전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은 단장님과 대표님의 기부와, 총 8명의 음악인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5.18 공동체 정신을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좋겠다.
- 채영선 5.18 새벽 오케스트라 단장


2000년대 태어난 아이들이 1980년에 이 청년이 맞이하였다던 새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5.18이라는 단어로 으레 짐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비록 진압당할지라도 저항했던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광주가 너무 초라해지지 않느냐'라는 생각으로 도청에 들어갔다는 청년일 때의 단장님을 떠올릴 수나 있을까.


집에 있는 데 잠이 안 왔다. 내가 인간으로서 나의 품위를 지키는 게 어떤 방법인 지 생각했다. 도청에 들어갔다.

청년의 결심은 1980년대에 태어난 나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가족이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결의.


그날 밤 누구 목소리였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가슴 아리게 방송을 했다. 그 목소리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저 소리가 끝나면 우리는 이제 죽든지 진압되든지 하겠구나.'

죽을 것을 각오하면서 새벽을 맞이하는 누군가의 심정을 말이다. 그 무모하고도 단단한 결심을.


그런데 그 결심은 시간을 넘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겠다 생각했던 의지 이어졌다. 구타와 가혹 행위, 고문을 당했던 상무대 영창에서의 경험을 트라우마로 고스란히 안고 살면서도 굳이 이어진 시도.


5.18을 직접 가르치는 것보다 음악을 통해서 하니까 아이들 만족도가 높아요. 아이들이 어떤 자부심도 갖고. 달라요. 친구들 도움도 받고 공무원 후배들 도움도 받고, 이렇게 해서 오케스트라 운영을 하고 있어요. 부족한 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내고. 그냥 공무원 연금 받아서 편하게만 살면 배만 더 나오죠. 어렵더라도 뭔가 시도는 해봐야잖아요.


두렵더라도 도망가지 않았고 고문당하더라도 그 시점을 넘어서면 또다시 나를 추스를 수 있었다는 단장님의 기억을 대신 반추하면서.


5.18 새벽의 공기, 피비린내, 두려움을 모르면서, 숭고한 희생으로, 결의로 오늘을 누리고 사는 지금

나는 가볍디 가벼운 마음으로, 토요일의 라이딩 5.18 새벽 오케스트라 연습 현장에 나선다.


모든 게 덕분입니다, 감사하면서. 이 평범한 토요일이 얼마나 특별한 날들 위에 서있는지. 아이들이 울리는 음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프고 힘든 기억을 치유해 주길, 어루만져주길 바라면서.


사위어가는 잔불의 주황빛 불꽃 사이로 나는 스며들어가 보았어. 세찬 불길 속이서 몸들의 탑은 무너져, 뒤섞인 뜨거운 유골들을 더는 구별할 수 없었어. 고요한 새벽이었어.

-소년이 온다, 한강 작가



P.S. 채영선 단장님, 홍의현 대표님 뿐만 아니라

토요일마다 귀한 시간 내주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518새벽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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