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형 엄마가 초등맘이 되면

by 김여희

ENFP형으로, 계획적이라기보다 유연하게 흐름을 잘 타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규칙을 안 지키는 건 아니지만 큰 틀 안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허용적이라고 생각했다. 때로 영감에 따라 즉흥적인 것도 일상의 낭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9시부터 13시나 13시 50분에 돌아오는 일상 속 쳇바퀴 속에서 돌고 돌다 보니. 평일 5일, 하루 4-5시간 주어지는 자유시간을 계획적으로, 규모 있게 써야 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리려니, 루틴과 짜임새 있는 구조 안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저러나 일단 나는 아이들이 학교 가는 시각에 맞춰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E형 엄마. 하지만 자유시간 안에 속옷과 양말을 분리해 손세탁을 해 세탁와 건조기를 돌려야 했다. 아침에 먹은 해독주스와 남편용/ 아이들용 두 가지 버전의 아침식사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언제 치웠냐는 듯 더러워진 집도 정리해 달라고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싶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싶고. 운동도 해야 했으니. 운동만 해도 산책에, 바레, 필라테스, 달리기를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빼곡함이었으니. 한정된 시간 앞에서 자유를 꿈꾸던 나는 늘 안달이 났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분주한 시간 속을 달렸다. 시간이 나를 좇고 빼곡한 스케줄이 나를 메었다.


엄마가 독일에 가기로 한 출국일을 앞두고 어느 날 오전, 엄마와 근교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광주에서 담양의 한 식당까지 30분 남짓 달려 도착한 식당. 대통령을 비롯 여러 유명인사들이 왔다 갔다던 호젓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엄마에게 제법 갖춰진 대접을 한 양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그런데


(무등산 정상이 보이는 절이 있는데, 거기 좀 들렀다가자.)


담양에서 식사를 마치고선 갑자기 무등산 정상을 보러 원효사 절에 들르자던 엄마. 매번 타이트하게, 미리 일정을 짜놓는 평일에의 내 시간 앞에 엄마가 툭 던지던 즉흥적인 장소 하나. 집까지 1시 30분 안에 도착해야 하거늘, 엄마는 왜 굳이 돌아가는데만 한 시간짜리 코스를 갑작스럽게 제안하는 걸까.


곧 있으면 스위스의 알프스 산을 마주할 엄마가, 독일을 떠나기 전 무등산 정상을 보고 싶다는 게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즉흥성과 유연함을 자주 장점이라 생각해오지 않았던 터라 엄마의 그것마저 나는 도발로 느끼고 있었다. 부루퉁한 입을 내밀고도, 엄마에겐 별 말없이 원효사로 향하 나였지만 못내 불편해하던 마음은 운전을 하는 내내 불쑥불쑥 내 마음을 비집고 나왔다.


(왜 엄마는 자주, 내 시간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흔들어놓는 걸까.)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유연함을 모른 채 몸을 굳히고 긴장하는 것. 그건 내가 답답해하던 남편의 단면이었거늘 어느새 나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돌발 상황 앞에 말수가 적어졌다. 방앗간처럼 들르는 절 앞에서도.


쌍화차 한 잔을 시켜 들고 원효사 정자 위에 앉았다. 하교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30여분. 뜨끈하게 데워진 쌍화차를 훌훌 불어 단숨에 들이켜야 하나.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한 여름에 굳이 쌍화차를 왜 시켰담.)


차를 시키는 와중에 수제 쌍화차인지, 시중에 파는 유리병에서 녹인 레몬청 차인건지 따져 들었던 건 나였으면서. 작은 티스푼으로, 동동 떠있는 잣과 대추 편을 휘휘 저으면서도 난 괜한 심술이었다.


이제 15분 남았다...!


머릿속에서 시간을 세알리고 있었다. 단 몇 분이라도 늦으면 아이들 일정이 엇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 엇나감이 남은 하루 전체를 뒤흔들어놓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을 달리고 있었다.


쌍화차 잔 너머로 바라보는 정자 밖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무심하게 평화로웠다. 숨 막힐듯한 더위 속에서도 초록의 나무들은 청아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산중의 바람결은 상쾌했다. 하지만

그 풍경 안에서도 일을 삼는 자의 자발스러운 심사란. 쌍화차 한 잔의 여유와 식사 끝의 쉼을 숙제처럼 여기는 마음. 쉴 때조차 그 쉼을 계획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


그러던 찰나, 어디선가 더듬더듬 어수룩한 영어 발음이 들렸다. 늘 마음 벅차하던 무등산 등산 코스를 마음껏 설명해내지 못해 답답함이 실린 듯한 익숙한 목소리와 억양이었다. 먼발치의 무등산 정상을 감상하던 엄마는 어느새 옆 테이블로 가 있었던 걸까. 엄마는 레게 머리의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억양은 영어인데, 단어는 한국어이고 손짓, 발짓으로 유창함을 말하던 엄마의 대화. 프랑스에서 왔다던, 콩고 국적의 흑인과 갑자기 등반 코스를 이야기하는 엄마는 과연 우리 엄마가 맞았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람. 성근 계획과 준비 속에서 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꽉 채워오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나의 단면을 엄마에게서 발견할 때만 난 엄마의 딸이라고 말하는 걸까.


쌍화차의 마지막 고명까지 입 안에 털어 넣고 나서, 알싸한 쌍화차 내음을 풍기며 옆 테이블로 넘어갔다. 구원투수라도 나타난 양, 나에게 무등산 등반 코스를 영어로 설명해 주라고 말하던 엄마.


더듬더듬한 영어 실력이지만 구보다도 무등산을 속속들이 잘 아는 엄마의 생생하고도 열정적인 설명은 전달하기 어려웠다. 뼛속 깊이 광주 시민이건만 토끼등과 서석대에 오른 적이 있었나, 가물가물한 머릿속에서 내 기억과 단어와 지도는 온통 뒤엉켜있었다. 서툰 통역자가 되어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학교 앞까지 제 시각에 돌아가야 하는 엄데렐라가 되었다.


(이거, 내 번호야. 내일 전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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